어린 양을 따르는 사람들[5] 루아디라교회 (계2:18~29)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요한계시록]은 해석하기가 어려운 책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환상]과 [계시]가 나오고, 또 서신이 함께 혼합되어 나타나기에,
다양한 해석들이 요구되므로, 우리에게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 말씀에 어떤 메시지가 주어졌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곱 교회에게 주신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그것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요즘,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대한 언급하심 말씀인, 2장과 3장을 공부하고 있으며,
4장부터 마지막 모든 말씀이 세계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우리의 ”시각을 열어주는 말씀“입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바벨론]이라.”고 불리는 세력입니다.
이것은 [구약] 시대의 나오는 [바벨론]이 아니라, 그 당시는 “[로마 제국]을 바벨론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죠.
▶왜, [로마 제국]을 “구약의 바벨론 제국”의 이름을 붙였습니까?
그것은 모든 시대에 “바벨론과 같은 제국”이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모든 시대에 적용할 수 있도록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만일 [로마 제국]이라고 했다면, 그것은 “로마 제국에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단정 지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바벨론]이라고 함으로써, 이 바벨론이 보여준 제국의 특징들이 로마 제국에도 나타났다는 것이며,
또한 그런 제국의 모습들은 오늘 이 시대에도 나타났고, 또한 미래에도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바벨론]은 과거에도 존재하였고, 현재에도 로마 제국이라는 모습을 통해 나타났고,
미래에도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세력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바벨론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그래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 그러니까 주님께로부터 칭찬을 받은 이유는
바로 이 바벨론의 영향력을 얼마나 잘 극복하고 끊어냈는가 반대로 주님께 책망받은 내용은
이 바벨론으로부터 얼마나 깊이 영향을 받고 있는가 그것으로 책망과 칭찬이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사탄([용])의 중심으로 나타나는,
▶[바벨론]의 이해서 이루어진 [죄]들은 무엇인가“를 샆펴보겠습니다.
①첫째는/ 우상숭배를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범하는 제국입니다.
②둘째로/ 음행을 조장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③셋째로/ 자신의 번영만을 위해 다른 나라들을 학대하거나, 이용하는 죄를 범합니다.
④넷째로/ 어린 양을 따르는 자들을 학대하고, 죽이는 죄를 범합니다.
이런 4가지의 공통적인 [죄]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바벨론의 [죄]“이고,
또한 모든 시대에 나타난 바벨론 제국의 [죄]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시대에,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도 역시 [바벨론]입니다.
사실 지난 2천년 동안 교회가 바벨론의 길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적“은 없었습니다.
비교적 자유로웠던 때가 [초대교회]였고, 그 시대는 바벨론으로부터 박해받았던 시대입니다.
이 시기에 교회는 더욱 정결했고,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여러 책망들이 있었지만,
칭찬받을 만한 내용들이 있었던 것을 볼 때, 바벨론으로부터 그들이 박해받는 시대에는
도리어 교회는 정결했고 또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바벨론과 같은 제국들, 여러 나라와 민족들을 보면
그 나라의 어떤 세계관에 의해서, 또 통치자들에 의해서, 국가 체제에 의해서 핍박받고 있는 교회들은 정결합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이 생생한 말씀일 겁니다.
도리어 이 시대에, 바벨론에 사로잡힌 교회는 [서구 교회]입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교회일 수도 있습니다.
박해 시대에는 도리어 교회는 정결했지만, 유혹의 시대에는 더욱 교회가 바벨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용]의 영양 아래에 있는 바벨론의 통치자들은 어린 양을 미워하며, 어린 양을 따르는 이들을 박해하지만,
어린 양은 이길 것이며, 어린 양을 따르는 이들도 이길 것입니다.
계속해서 우리는 이 메시지에, 핵심 메시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요한계시록 17장 14절의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그들은 어린 양을 대적해 싸울 것이나, 어린 양이 그들을 이길 것이다. 이는 그가 만주의 주시며,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이다. 또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 곧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충성된 사람들도 이길 것이다.(계17:14)
그러므로 창조로부터 새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두 진영 간의 계속되는 싸움은,
①“어린 양을 따르는 충성된 자”들로 표현되는 일곱 교회만이 아니라,
②어린 양을 따르는 이들과 그리고 [용]의 지시를 받아서 [바벨론]으로 표현되는 세력 속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어린 양들을 박해하는 자들과 “싸움이 계속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우리가 늘 기억해야 합니다.
지난주에, 두 부류가 계속 싸우는데, 결국에는 [어린 양]이 이길 것이며,
또한 “어린 양을 따르는 충성된 이들도 이길 것이다.”는 말씀에 확신을 주기 위해서,
[계시록]에는 여러 [환상]들이 보이는 겁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은 [용]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용과 바벨론]은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고,
결국에는 “[어린 양]의 승리”로 끝날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제가 이 말씀을 함께 읽었는데, 다음 주에도 읽을 겁니다. 그것은 계속해서 이 말씀을 읽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고, 요한계시록에 “일곱 교회에 주신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바벨론의 세력]들은 어린 양을 대적하지만, [어린 양]은 이길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양을 따르는 사람들”도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세력도 [죄]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그들이 어린 양을 따르기만 한다면, 세상 속에 무너지는 교회가 있다면 바벨론과 하나 되었기 때문이죠.
오히려 바벨론처럼 살아가려고 할 때, 교회는 사라집니다.
그러나 때로 패배하는 것 같지만, 때로는 [용]이 승리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어린 양이 이기신 것처럼” 반드시 어린 양을 따르는 이들도 이길 것입니다.
이런 [확신]을 일곱 교회 성도들과, 오늘 이 시대 성도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이런 [승리]는 먼저 어린 양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왔지만, 이제 다시 오실 때에 온전히 완성될 것입니다.
오늘은 일곱 교회 중 네 번째 교회인 [두아디라교회]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그동안 ①[에베소]부터 시작을 해서, ②서머나, ③버가모, 그 다음에 ④두아디라
이렇게 이제 북동쪽으로 돌아가는 그런 차례로 왔습니다.
[두아디라]는 일곱 도시 중에서 가장 작은 도시입니다.
작지만 여러 지역을 연결하는 교차로이기 때문에, 지리적 위치 때문에 전쟁이 자주 일어났다고 합니다.
▶[두아디아]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주님은 어떤 주님으로 소개되고 있습니까?
18절에, “너는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이렇게 써라.
‘눈이 불꽃같고, 발이 청동처럼 빛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렇게 말씀하신다.”(계2:18)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을 소개하시며, [신성]을 강조하십니다.
▶[주님]을 어떻게 소개합니까?
①그분의 [눈]이 “불꽃 같으신 분”이고,
②“대상을 꿰뚫어 보는 분이라.”고 소개하니까 “마음과 의도를 꿰뚫어 보시는 분”입니다.
③또한 그 [팔]이 “청동같이 빛난다.”고 했어요. 여기서 “청동같이 빛난다.”는 것은 “불로 제련된 청동이라.”는 것이죠.
④그 분은 “무엇을 칭찬해야 하며, 무엇을 책망하여야 할지?”를 아시는 분입니다.
먼저 책에 대한 칭찬에 대한 내용을 먼저 하십니다.
(1)먼저/ 칭찬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19절에,
“나는 네 행위들과 사랑과 믿음과 봉사와 네 인내를 알고,
너의 처음 행위들보다 나중 행위들이 더 낫다는 것을 안다.”고 했어요.
[두아디라 교회]는 “신앙의 미덕”들이 있었는데, “사랑과 믿음과 봉사와 인내”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소중한 가치들이기도 하죠.
이것은 필수적인 자질인데, 간결하게 칭찬하신 것은 “뒤에 더 중요한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하신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은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이,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소중한 모습입니다.
그들은 [과거의 믿음]에 안주하지 않고, “날마다 믿음이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에베소 교회]와 대조적인데, [에베소 교회]는 겉으로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첫사랑을 잃어버렸다.”는 평가이고,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는 처음보다 나중에,
“①그 사랑이, ②그 믿음이, ③그 봉사가, ④그 인내가, 더 훌륭했다.”는 평가입니다.
▶이 얼마나 칭찬받을 만한 모습입니까?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면,
우리 자신을 평가해 보면, “현재의 신앙보다 과거의 신앙이 훨씬 더 좋았다.“면 [에베소 교회] 같은 믿음이고,
그러나 [나의 믿음]이 과거에도 믿음이 좋았지만,
”오늘의 믿음이 더 좋다.“면, [두아디라 교회] 같은 믿음인 거예요.
[믿음]은 과거의 믿음을 우려먹을 수 없어요.
세상에는 ”소위 달인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믿음]에는 달인이 없습니다.
[달인]은 어느 한 직종에 오래 있으면, 보지 않고도 할 수가 있고,
그냥 몸에 익숙해져서 기계적으로 할 수가 있는 일들을 능숙하게 하는 사람(전문가)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어제까지 믿음으로 살았더라도, 오늘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믿음은 없는 거예요.
[믿음]은 언제나 ”현재 [영]“이기 때문에, 오늘 내가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그것은 믿음이 없는 거예요.
그러므로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훌륭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과거의 향수에 젖는 믿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연조가 많아질수록 더 믿음이 강건하고 더 순결한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포도나무의 과실이 더 많아지듯, 금속을 제련할 때 더 재련할수록 더 순결해지듯이,
우리는 그런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2) 두 번째로/ [칭찬]은 이렇게 짧게 했지만, [책망]은 이제 다섯 구절이나 되죠.
그것은 더 사랑하시기 때문이죠.
[책망]을 자세하게 하시는 것은 ”점점 더 거룩한 교회“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책망]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거짓되고 악한 [이세벨]이라는 여인을 용납한 문제입니다.
20절에, “그러나 내가 네게 책망할 것이 있으니, 네가 이세벨이란 여자를 용납하는구나.
그 여자는 스스로 예언자라고 하며, 내 종들을 가르치고 유혹해, 그들로 음행하게 하고,
우상에 받쳐진 음식을 먹게 했다.”(계2:20)
여기에 나오는 [이세벨]은 구약 시대 이스라엘 역사에서 악명 높은 여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유약한 우유부단한 왕이었던 [아합]의 아내로서, 실제적으로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여인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이세벨]은 천 년 전에 죽었고, 그 이세벨의 악령이 선지자를 자처하는 [한 여인]을 통해 나타난 것입니다.
▶[이세벨]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가?
그 당시에, [예식과 연회]에 참석하도록 강요받았기에, 거기에 참여하면, 우상을 숭배하게 되고,
음행을 범하게 되는 성도들은 큰 고민이 되었는데,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나타나,
“자신이 [길]을 제시해 준다.”는 이유로 나타난 여인이 [이세벨]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가르침]을 전한 겁니다.
이런 [가르침]들은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버리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우상을 섬기라.”는 말은 않지만, [거짓]으로 속이며, [합리화]함으로써,
사람들이 우상에 빠져들게 만드는 거짓된 가르침인 것입니다.
마치 ①어린 양을 따르는 것과 ②용을 따르는 것이 “혼합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마치, [모세] 시대에,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 금송아지가 “애굽에서 우리를 이끌어낸 신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얼마나 매력적인 타협안처럼, 보입니까?
모든 시대 교회 안에도 이런 [이세벨의 가르침]이 항상 많이 들어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하여 배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용하여, 그리스도를 배반하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 다니게 하는 배교가 아니라,
교회를 다니면서 다른 것을 믿고 따르게 하는 것이 “[이세벨]의 가르침“입니다.
세상을 이기려면 ”세상을 알아야 된다.“고 하면서,
”타락한 문화“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신학교에서,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신학교들은 그래도 보수적인 학교가 대부분인데, 이미 유럽은 [종교 다원주의]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세벨의 가르침]입니다.
21절에서 23절에, ”내가 그 여자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지만, 그 여자는 음행을 회개하려 하지 않았다.
보라. 내가 그 여자를 병상에 던질 것이며, 그 여자와 간음하는 사람들도 그 여자의 행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큰 환란에 던져질 것이다. 또 내가 그 여자의 자녀들을 사망으로 죽일 것이다.
그러면 모든 교회가 내가 생각과 마음을 살피는 이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너희 행위대로 각 사람에게 갚아주겠다.“(계2:21-23)
이 말씀은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회개를 거부한 이세벨에게, 질병과 환란과 사망으로 심판하신다.”고 말씀이고,
또한 이세벨을 따르는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행위대로 갚아주십니다.
[주님]은 성도들의 거룩을 위해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회개가 필요한 자들에게는 무섭게 경고하시며, 충성된 자들에게는 격려와 약속을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24절에, “나는 이러한 가르침을 받지 않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들을 알지 못하는
[두아디라]에 있는 너희 남은 사람들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는 다른 아무 짐도 지우지 않을 것이다.”(계2:24)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세벨]이 자칭 자신이 “하나님의 깊은 비밀, 하나님의 깊은 것을 말한다.“고 주장했지만,
[주님]은 도리어 ”너는 하나님의 깊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너는 사탄의 깊은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거짓된 가르침“에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두 가지 약속을 주십니다.
①첫째로/ ”주님과 함께 나라들을 다스릴 권세를 주신다.“는 것이고,
②두 번째는/ 우리에게 ”[새별], [새벽 별]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새 별]은 예수님이고, 당신 자신을 의미하죠.
[주님]은 ”빛나는 새벽 별“이십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 그 자체가 우리에게 가장 큰 최고의 선물입니다.
▶어린 양을 따르는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시 오실 [샛별]처럼,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날 때 까지, 우리는 [주님]을 굳게 붙잡고,
이 시대의 거짓과 부정, 음란과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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