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성탄은 믿음의 용기를 요구합니다 (마1:18-25) 2024.12.22

다이나마이트2 2024. 12. 22. 13:21

성탄은 믿음의 용기를 요구합니다 (마1:18-25)  말씀: 이재훈 목사님
 
[성탼]에 우리가 자주 잊혀 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요셉]입니다.
우리는 [요셉]이 보여준 “용기있는 믿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 사회에서 여인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생존할 수 없는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육신의 아버지의 보호 없이, [마리아]가 혼자 양육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초점을 두고 기록하였고, 
[마태복음]에서는 육신의 아버지, [요셉]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마태]는 왜, [요셉]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을까요?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소개하는 복음서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에서 17절까지 보면, [족보]가 나오는데, 성경을 처음 읽어보는 사람은 당황하게 됩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 계속 이어지면서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족보를 통해서 “역사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그 족보를 통해 소개되는 인물이 누구인가?”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에서 11절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소개하고 있는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이어서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구약 역사]에 많은 인물들이 있지만, 특별히 중요한 것은
①[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과 
②그리고 [다윗]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구약 역사]에 하나님이 주신 약속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딱 두 사람으로 압축하라.”고 하면, [아브라함과 다윗]입니다.
 
①[아브라함]에게는 많은 자손을 주시고, 땅을 주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고,
②[다윗]에게는 강력한 통치, “견고한 왕권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모두 합하면, “[하나님 나라]의 약속”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 [하나님 나라]의 영토, [하나님 나라]의 주권을 이루시는 분,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소개합니다.
 
그 [다윗의 혈통]으로 오시되, 육신의 아버지는 바로 그 다윗의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인 요셉을 통해서,
세상에 [예수님]이 오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요셉]의 직업은 “목수”입니다. 
[다윗] 후손이었던 [요셉]의 가문은 “언제부터 목수의 직업을 했을까?”를 제가 추측하면,
아마도 바벨론 포로 기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이후에,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신도시인 나사렛에 정착했기에, 많은 목수들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19절에,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가정과 일터 그리고 신앙 영역에 있어서, “올바른 삶을 살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의로운 요셉]이 어느 날, 자신과 정혼한 [마리아]가 “동거하기 전에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요?
 
[마리아]가 [천사]로부터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그 하나님의 계시대로 “자신의 몸에 아기가 잉태된 것”을 느꼈을 때, [요셉]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요셉]이 [마리아]의 말을 들었을 때, [요셉]은 세 가지를 괴로워했어요?
①첫째로/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말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②둘째로/ “처녀가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③셋째로/ 그것이 다 믿어진다 할지라도, “왜 나에게?
그리고 [마리아]에게 이런 일이 있어야 하는가?”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리아]에게는 “자신이 직접 계시”를 듣고, 자신의 몸으로 그것을 체험했기에, 
더 결백하고, 더 확신할 수 있었겠지만, 
 
[요셉]에게는 마리아의 말을 믿어야 하고, ”자신에게 요구되는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요셉]에게 이러한 딜레마를 주셨습니까?
▶왜, 하나님은 [정혼]한 관계에 있는 [요셉과 마리아]를 선택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정혼]이라는 ”독특한 유대 문화를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정혼]은 무엇입니까?
당시 유대인의 결혼 문화에, 부부가 공식적인 부부가 되기 전에, 정혼 (약혼)이라고 부르는 1년을 보냅니다. 
 
우리나라에 [약혼]과 같지만, 훨씬 더 강한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혼 기간]에 서로 남편과 아내로 부르지만, 그러나 함께 살지는 않는 독특한 문화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 파혼하려고 하는 것도 이혼과 동일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따라서 정혼한 상태에서, 만일 자녀를 가지게 되면, 법적인 보호를 받지만, 사람들의 수치와 비난을 받아야 합니다.
 
▶왜, 정혼한 관계인 [요셉과 마리아]일까요? 그것은 [구약의 모든 예언] 속에서, 
①처녀에게서 태어남과 동시에, 
②다윗의 법적인 후손으로 오시며, 
③또한 적법한 자녀의 신분을 얻으며, 
④육신의 부모의 보호를 받는 자녀로 태어나게 하시기 위해서, 
이런 [정혼]이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정혼한 상태였기 때문에, 
마리아에게 임신한 것이 나타났을 때, [요셉]은 [마리아]를 파혼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율법에 근거하면, 정혼한 상태에서 부정한 관계를 맺은 여인은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로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게 됩니다.
 
만일 [요셉]이 마리아를 버리게 되면, [마리아]는 공개적으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고, 
만일 [요셉]이 마리아의 문제를 묵인하고 혼인하게 되면, 요셉 자신이 수치를 당하고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어떻게 했을까요? 처음에는 ”남모르게 파혼하려고 했다.“는 겁니다.
그것은 그 사실을 ”믿지 못했다.“는 거죠. 아무리 생각해도 [마리아의 말]을 믿지 못했으나,
그러나 공개적으로 드러내면, 마리아가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남모르게 파혼“이 최선의 태도이죠.
 
▶여기서 [요셉]을 하나님께서 선택한 이유가 나타납니다.
[요셉]은 매우 신중했고, 감정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고, 여전히 [마리아]를 사랑해서, 그녀를보호하려 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났습니다. 20- 21절에서, 
“요셉이 이런 생각을 할 때,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네 아내로 맞아라.
마리아가 가진 아기는 성령으로 임신된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가 그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할 것이다.”(마1:20-21)
 
[꿈]을 통해, [요셉]에게도 동일한 계시가 주어진 계시이기에, 사실 자신의 감정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순종하는 훈련이 안 됐더라면 꿈을 통한 계시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였고, [마리아]가 받은 계시와 동일한 계시임을 확인하고, 
24절에 보면, “주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드렸습니다.(마1:24)
 
[요셉]은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순종했습니다. 
[요셉]이 [마리아]를 받아들임으로, 일어난 [성탄]은 ”믿음의 용기“가 요구됩니다.
 
앞으로 [요셉]은 모든 수치와 비난을 받아들일 ”용기 있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 이후로 베들레헴에서 [헤롯]을 피해 도망을 다녀야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의 오심]은 이제 자신이 주인 된 삶을 살던 이들에게,
”예수님이 주인 된 삶으로 나오라.“는 [믿음 있는 용기]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왕으로 군림하던 삶에서, 예수님이 왕이심을 고백하는 삶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휩쓸리는 삶에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용기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갈 때, 요셉이 받았던 오해와 조롱과 수치와 불명예를 당할 때
필요한 믿음의 용기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을 받았을 때 아무리 큰 희생이 요구된다 할지라도
따를 수 있는 믿음의 용기가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성탄]은 ”믿음의 용기“를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게시돼 있는 것을 따를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믿음의 용기“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우리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문화생활을 즐기라.“고 하는 차원이 아니고,
역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며,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기에, 
우리 모두는 이 성탄을 맞이하는 시간에, 요셉 같은 [믿음의 결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