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명이 남긴 이별 (행20:17-38)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우리에게 [축복된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요?
그것은 [이별]을 할 때 나타나고, 이별을 통해 더 성숙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과의 이별”에서 보여 줍니다.
사도 바울은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계획을 세웠는데,
그것은 [오순절]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의 모습이 떠올랐기에, 장로들을 초청하여, 그 자리에서
①“어떻게 사역을 해왔는지?”를 고백하고, ②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울]은 “서로 무릎을 꿇고, 껴안고 기도하며, 눈물을 흘리며,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었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모습이 “참된 교회의 모습”이고,
“살아있는 성령님께서 함께하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먼저, 36- 38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바울은 이 말을 마치고 나서, 그들 모두와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소리 내어 울면서, 바울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다시는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 때문에,
그들은 더욱 슬퍼하며 바울을 배 타는 곳까지 전송했습니다.”(행20:36-38)
이와 같이 그들은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소리 내어 울면서 입을 맞추며, 이별하는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이 모습은 “서로를 위해 기도하던 관계였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평소에 서로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관계는 이별할 때도 그런 슬픔이 없습니다.
오늘 [바울의 고백]에서, 다섯 가지 중요한 사역의 철학이 나타납니다.
(1)첫째로/ 바울은 ”겸손과 눈물로 주를 섬겼다.“고 고백했습니다.
19- 20절에서, ”내가 모든 겸손과 눈물로 주를 섬겼고, 유대 사람들의 음모로 시련도 많이 당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는 여러분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주저하지 않고 전했고,
공중 앞에서 또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여러분을 가르쳐 왔습니다.“(행20:19-20)
[바울]은 이별하면서, ”①모든 겸손과 눈물로 주님을 섬기고, ②집집마다 방문하고, 무엇이든 유익한 것을 가르쳤고,
③많은 유대인들의 음모와 시련 속에서도 인내하며 사역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겸손과 눈물로 섬겼다.“고 강조하는 것은
”자신에게 나타난 은사보다 더 중요하게 느꼈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의 눈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에베소의 영혼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비전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고,
[바울의 사역]에는 “겸손에서 나오는 눈물”이 있었습니다.
(2)두 번째로/ [바울]은 “성령의 강권하심이 계획을 이끈다.”고 고백했습니다.
22절에, “그리고 지금 나는 성령의 강권하심 가운데 예루살렘에 가려고 합니다.
그곳에서 내가 무슨 일을 당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행20:22)
[바울]에게는 늘 사역 계획이 있었는데, 그를 이끄신 것도 “성령의 강권하심”입니다.
그가 첫 번째로 예루살렘에 방문하게 된 때는 20대였는데,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60대의 나이에, “성령의 강권하심 가운데”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합니다.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은 “자신의 꿈에 의한 것”이지만,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은 “성령의 강권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3)셋째로/ 바울은 “사명을 위해 생명을 드린다.”고 고백했습니다.
23- 24절에, “오직 내가 아는 것은 어떤 도시에 가든지, 감옥과 고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을
성령께서 내게 증거해 주실 뿐입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서 내게 주신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다 완성하기 위해서라면,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행20:23-24)”
[바울]의 생각 속에는 “생명을 다할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바울의 마음속에, “①예루살렘으로 가도록 인도”하셨고,
②예루살렘에 가면, “감옥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그렇게 알려주셨지만, 그러나 [바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목숨]보다도, 내가 감당해야 될 [사명]에 충실했다“는 거죠.
▶어떻게 이런 고백이 가능할까요?
[육신의 생명]도 중요하지만, ”육신의 생명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영적 생명, 그 사명]을 위하여, ”자신을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필요한 희생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러한 희생을 하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4)네 번째로/ 바울은 ”자신과 양떼를 잘 살피라.“고 권면의 말씀을 합니다.
28절에, ”여러분은 자신과 양떼를 잘 살피고 조심하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감독자로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행20:28)
여기서 ”양떼를 돌보는 것“ 이전에, [바울]은 ”자신을 살피라.“고 합니다.
▶무엇을 살피라는 것입니까?
그것은 ”목자 되신 예수님을 따라 가는지?를 살피라.“는 겁니다.
[양]은 ”멀리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은 바로 앞에만 보고 가고, 앞서가는 양에 휩쓸려 갑니다.
이렇게 [양]을 인도하는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입니다.
교회 지도자는 ”나 자신이 목자 되신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예수님의 핏값으로 사신 양떼들을 [목자]가 지켜야 합니다.
[바울]은 ”육신의 생명“보다, ”사명이 더 중요했다.“고 고백했습니다.
(5)다섯 번째로/ 바울의 [사역 철학]으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33- 35절에, ”나는 그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는 나와 내 이름이 필요한 것을 손수 벌어서 썼습니다.
이처럼 내가 모든 일에 모범을 보였으니, 여러분도 ‘약한 사람들을 도우며,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신
주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행20:33-35)
여기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언제나 ”주는 자로 살아가기“를 희망합니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없으셨지만, [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물과 피까지 다 쏟아 부으시며“, 돌아가셨습니다.
[바울]은 많은 피로가 있었지만, [받는 자]가 아니라, [주는 자]로 사역했고,
그는 손수 생활비를 벌어서 사역할 만큼, [주는 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사람은 ①[받는 자]의 스피릿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②[주는 자]의 스피릿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①많이 가지고 있어도 [받는 자의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②평범하게 살아도 [주는 자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과 같이 ”[주는 자]의 비전“으로 살아가려는 마음입니다.
이상으로 5가지 [바울의 철학]을 참조하시고,
여러분도 바울과 같이 ”성령의 강건하심“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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