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성령과 주의 말씀 (행19:1-20) 2024.08.25

다이나마이트2 2024. 8. 25. 15:15

성령과 주의 말씀 (행19:1-20)  말씀; 이재훈 목사님
 
바울 일행은 이제 마케도니아 지역을 떠나,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3차 선교여행으로, [에베소] 지역으로 갈 예정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에는 놀라운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우리는 “나의 시간표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고 조급하게 생각을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역시 다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내가 당장 이룰 수 있는 것“ 보다도, 
[하나님의 계획]은 ”더 큰 열매를 계획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도착하는데, [에베소]는 인구 20만 명의 대도시이지만, 1차 선교여행 때 복음화하려고 노력했으나,
어려움이 있었던 지역으로, 다시 하나님이 그 문을 열어주셔서, 이제 에베소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전에 문을 여셨더라면, 짧게 밖에 사역하지 못했던 지역이지만,
이제 뒤늦게 문을 여심으로써, 여기에서는 약 3년을 사역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때]와 [우리의 때]는 다릅니다. 
우리는 ”바로 지금, 무엇인가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에는 ”더 풍성한 열매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계획]이 연기되면, 우리의 꿈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시간표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의 계획]과 [나의 시간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고 조급해 할 필요가 없고,
우리는 “아의 계획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절]은 영원한 거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연기]는 지연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열매를 기다리게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에서 특별한 두드러진 사역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1)첫째는/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나며, [성령 세례]의 축복이 나타나게 됩니다.
 
19장 2절에, “바울이 에베소에 몇몇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은 믿을 때, 성령을 받았습니까?‘라고 물으니,
그들이 ‘아니오. 우리는 성령이 있다는 사실도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행19:2)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에는 분명한 [성장의 단계]가 있습니다.
①처음에는 연약한 ”어린아이 단계의 신앙“이 있지만, 
②그 후에 신앙이 자라면서 ”확신 있는 신앙“으로 변합니다.
 
①처음에는 ”나 중심적인 신앙“, 그저 [나의 문제]와 [나의 필요]만을 생각하는 신앙에서, 
②신앙이 자라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생각하는 신앙으로 발전합니다.
 
이런 [신앙의 변화]가 나타나는데, 그것이 [성령님의 세례]입니다.
①과 ②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바로 그것이 [성령님의 세례]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할 때,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우리 주님께서,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성령의 세례]는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사역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사역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미 예수님을 믿고, 또 세례를 받은 성도인데, ”무슨 또 다른 세례가 필요합니까?“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 생명을 주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런데 내가 거듭나고, 새 생명을 얻은 성도임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은 자, 거듭난 자,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누릴 수 있지만, 
그 축복은 [성령세례]라는 성숙함을 체험해야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세례가 필요합니까?“라고 질문한 사람은 [성령의 세례]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성령의 세례]를 경험하지 못한 성도들은 확신과 기쁨이 없으므로,
”예수님을 온전히 주님으로 모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알레이토레이]라는 분은 이것을 설명하면서, 
①잠재적 사건과 ②체험적 사건이라는 단어로 구별해 설명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심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연합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일원이 됩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직 그것이 [확신]으로 다가오지 않을 때, 수 있습니다.
이 단계를 ①잠재적 사건이라고 비유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거듭남]을 설명하실 때,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거늘,
”[거듭남]도 이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거듭남의 신비]는 우리가 어느 한 시점, 어느 한 체험을 가지고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우리가 감정적인 체험을 하거나, 예수님 믿고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그런 것들은 다 거듭난 이후에, 우리가 체험하는 것입니다.
 
[거듭남의 신비]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연합시키는 잠재적 사건으로서의 신비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세례]가 임하심으로써, 우리가 그것을 ”체험적인 사건으로 확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믿는 모든 성도들과 한 몸“임을 느낍니다.
 
[성령 세례]는 이것을 체험하고, 실제로 느끼고, 그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그렇게 행동합니다.
 
그러니까 ”나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싶어도,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으므로, 
나 혼자서 돌출된 행동을 하지 않고, [하나 됨]을 지키기 위해서 절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의 감정]도 절제하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 다른 지체들을 배려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체험적으로 느낄 때, 그것이 바로 “[성령 세례]의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성령님의 역사]를 내가 자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은 무의식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성령의 세례]는 체험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각자가 체험해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지만, 성령의 세례가 임하지 않은 사람은 구원은 받지만, 
”구원받은 사람으로서의 확신과 증인의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세례]를 사모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성령의 세례가 온다.”는 그런 법칙이 아니지만, 
예수를 믿으면, [성령의 세례]가 약속되어 있으니까,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
 
(2)바울은 [에베소]에서 두 번째 사역을 시작합니다.
그것은 [두란노 서원]을 통해, 사역자들을 훈련하고, 아시아 전역에 파송할 계획을 세웁니다.
 
9절 10절에, “그 가운데 몇 사람은 마음이 완고해져 믿기를 거부하고, 공공연하게 그 가르침을 비방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데려다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가르쳤습니다.
이 일이 2년 동안 계속돼, 아시아 지방에 사는 모든 유대 사람들과 그리스 사람들이 주의 말씀을 듣게 됐습니다.”(행19:9-10)
 
하용조 목사님께서 설립하신 [두란노 서원]의 기원이 되는 말씀입니다.
[두란노 서원]은 [두란노]라는 사람의 개인 소원이지만,
[바울]을 비방하자 작은 서원에서 제자들을 따로 데려다가 2년 동안 가르칩니다.
 
이것이 바로 “신학교 훈련기관의 기원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는 [바울] 일행만 나뉘어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전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훈련하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렇게 [성령의 세례]와 [주의 말씀]의 역사가 서로 연결되어 순환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교회사를 통해, 나타난 모든 부흥도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에베소에서 [성령의 세례]가 임했을 때, 
[성령의 세례]가 임한 사람들은 [주의 말씀]에 대한 더 깊은 갈급함이 임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과 [주의 말씀]은 언제나 함께, 두 개의 수레바퀴처럼 같이 움직입니다.
 
우리도 ”성령 받은 사람“이니까, 언제나 [주의 말씀]을 향하게 되고, 
”주의 말씀을 향하는 자“들은 언제나 [성령의 역사]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와 같은 귀신이 판치는 도시에서, 바울은 두 가지 [열매]를 얻게 되는데,
①첫째는/ [성령세례]의 축복이 나타나고,
②둘째로/ [두란노 서원]을 통해, 많은 사역자를 훈련시키고, 파송하는 열매를 얻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열매가 맺히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