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선교적 교회 (행13:1-12) 말씀: 강부호 목사님
오늘의 말씀은 ”성령님의 보내심“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3장에 들어오면서, 예루살렘교회에서 안디옥교회로 상황이 바뀌게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수도에 있는 대형 교회라면, 안디옥교회는 지방에 있는 작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교회의 중심에는 안디옥교회가 우뚝 서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진정한 출발은 이렇게 작은 안디옥교회에서 출발합니다.
▶왜, 그렇게 바뀌게 되었습니까? 그것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1절에,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 있었습니다.”(행13:1)
안디옥교회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교사들과 영적인 지도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자기 재산을 팔아서, 남을 돕는 사람이고, [니게르]라는 사람은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으로 추정되고,
[시므온과 루기오]는 헬라파 유대인으로 양쪽 문화에 적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울]은 바리새파 사람으로, 유대인을 핍박했고, 로마의 시민권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렇게 복잡한데도,
2절을 보면, “안디옥교회는 예배드리고, 금식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내가 그들에게 맡긴 일을 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13:2)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성령이 말씀을 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무슨 말씀을 하셨나요? 그것은 “너희는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내가 그들에게 맡긴 일을 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모든 성도들은 [사울]의 설교를 계속 듣고 싶었고, [바나바]와 같이 있고 싶었어요.
그러나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고,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떠나 보냅니다.
안디옥 성도들의 기도를 받은 [바나바]와 [사울]은 전도 여행을 떠납니다.
이 내용이 사도행전 13장부터 28장까지 말씀이고, 사도행전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은 “사람을 세우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령의 인도를 받을 사람을 세우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사람에게 ”말씀을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방학을 맞이하여 어디를 가더라도
”말씀을 잊지 않고, 말씀이 마음에서 떠나지 말아야 하고,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음성을 들었을 때, 그 음성이 과연 “성령의 음성인지?“를 구별해야 합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소리가 ”①내 소리인지, ②사탄의 소리인지, ③성령의 음성인지?“를 구별 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많은 소리를 듣고 있어요.
그 소리를 구별하지 못하고, 자신의 소리로 착각하거나, 사탄의 음성에 속아서, 내 삶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 존재이므로,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이 없는 게 아니라, 그 음성을 들을 줄 모르니까, 헷갈리는 거예요.
▶ 그들이 “성령의 음성”을 들은 것은 언제입니까?
그들은 “예배드리는 도중”에, 금식한 상황에서 들었어요.
이 말씀은 “그들이 성령의 역사하심에 반응했다”는 말입니다.
“참된 예배”가운데에, 성령의 음성을 듣기에, 가장 좋은 상황입니다.
가장 듣기에 좋은 자리는 “예배의 자리”이고, 그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①교회는 성령의 음성이 들려오는 곳이고,
②교회는 하나님이 행하고자하는 말씀이 있는 곳이고,
③그 말씀을 들으려고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입니다.
④그러므로 교회는 문화적인 포용을 하는 곳이고,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장소입니다.
6- 7절에, “그들이 그 섬을 가로질러 바보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바예수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유대 사람 마술사요 거짓 예언자로서, 총독 서기호 바울 곁에 함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지성적이었던 총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바나바와 사울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행13:6-7)
[바나바]와 [사울]이 여기에 도착을 했는데, 거기서 [거짓 예언자]를 만납니다.
[거짓 예언자]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본인이 “하나님의 뜻을 알아듣고, 전달해 주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던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사람이 7절에 보니까, “총독 곁에 있었다.”는 것을 보아, “총독을 보좌했다.”는 것입니다.
지성적이었던 총독은 아마 자신이 생각할 때, 이 마술사의 조언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바나바]와 [사울]이 증거하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소식을 들었겠죠.
거기에서는 “뭔가, 논리적인 그런 매력”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지성적이었던 총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서, [바나바]와 [사울]에게 사람을 보냈다.
8절에, “그러나 엘루마라고도 하는 이 마술사가 그들을 막으며,
총독의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행13:8)
이 마술사는 “총독이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는 것은 마귀의 성품이죠.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려고, 복음의 진리를 접하게 하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는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현장에, 이런 일들은 자주 발생합니다.
이 때, 안디옥교회에서 파송한 바울이 9-10절에, “그러자 [바울]이라고도 하는 [사울]이 성령 추안한 가운데,
엘루마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이 마귀의 자식아, 너는 모든 의의 원수로다.
너는 갖은 속임수와 거짓으로 가득 차 있구나. 주의 바른 길을 어지럽게 하는 일을 그치지 못하겠느냐?(행13:9-10)
이때, 안디옥교회에서 파송한 [사울]이 이런 상황에서 나섰습니다.
[사울]은 ”이 마귀의 자식들아“라고 큰 소리로, 강하게 말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자기가 할 말을 해야 합니다.
”침묵한다.“고 좋은 게 아니고, 하나님에게 큰 소리로 말해야 합니다.
마귀 앞에서는 전투적인 말을 하면서, 외치며 나가야 됩니다.
기도 중에 늘 침묵만 유지하는 것은 [기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명하노니”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것은 [사울]이 성령 충만한 가운데 있었으므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9절에, [바울]이라고도 하는 [사울]이, 성령 충만한 가운데, 이미 사울에게 성령이 충만히 임했습니다.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명확히 인식한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성령 충만한 가운데 즉시 말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성령 충만한 순간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라는 수식어를 안 붙인다 할지라도,
여러분들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영적인 현장에서 뒤로 물러서는 자들이 아니라, 능히 제압하고 이기며 나가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결국, 승리하게 되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12절입니다.
”이 일을 보자 총독이 믿게 됐고, 주에 관한 가르침에 그저 놀랄 뿐이었습니다.“(행13:10)
[성령님의 능력]이 표현되는 일의 결과, 우리가 이 악한 자와 맞서 싸워서 승리를 거두게 될 때,
그 결과는 복음이 전달되어서, ”믿는 자가 탄생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해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믿음의 문“을 여는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 셈이죠.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종류의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구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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