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박해자에서 전도자로 (행9:20~31) 2024.05.19

다이나마이트2 2024. 5. 19. 23:29
박해자에서 전도자로 (행9:20~31)   말씀: 강부호 목사님
 
지난주에 우리는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이 “예수를 만난 사건”을 보았습니다.
[사울]은 예수를 핍박하던 자인데, 예수님에게 돌아 왔으니, [회심한 사건]이지요.
 
이것은 [사울]이 혼자서 체험한 사건이 아닙니다.
9장 17절에서, [아나니아]의 도움을 받아서 앞을 보지 못하는 [눈]이 낫게 되고,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도와서, [사울]이 회심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아나니아]를 보내셔서, 눈을 회복시켜 주었고, 
그가 특별히 안수하여, 성령의 능력을 충만하게 받게 하셨습니다.
 
아마 [사울]도 예수님을 체험했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셨기에,
[아나니아]를 이동시켜서 안수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오늘은 [바나바]를 만나서, [사울]이 변화된 삶을 목격하게 하십니다.
[사울]은 [바나바]의 도움으로, “그리스도 공동체에 소속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신앙생활]은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사람을 움직여서,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이끌어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게 만듭니다.
 
20절에, “그는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행9:20)
 
[사울]은 성령 충만하여, 예수를 담대하게 선포했고, 더욱 더 힘을 얻어, “예수가 그리스도(메시아)라는 것”을 선포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이 [사울]을 그렇게 만들었고, 그가 하나님을 드러내도록 믿음을 이끌었던 것이고,
그래서 능력을 주시는 자 안에서, 능히 감당해 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장 23절을 보면, [사울]을 죽이려는 음모가 두 번이나 나옵니다.
그 음모를 보면, 사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을 통해 성 밖으로 달아 내렸고,
죽이려는 음모에 형제들이 이 사실을 알고, 다소로 피신시킵니다.
 
그러니까 [사울]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바나바]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바나바]는 많은 사람을 “위로해 주는 사람“인데, [사울]이 지도자로 설 수 있도록 그를 도와주십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바나바]와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26- 27절에, [바나바]의 도움을 받아, 중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제자들과 교제하려고 했으나,
그들은 사울이 제자가 된 것을 믿지 않고, 모두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사울이 어떻게 주를 보았으며,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과 다메섹에서 그가 예수의 이름을 담대하게 전한 것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행9:26-27)
 
[바나바]는 [사울]을 직접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사울]은 변화된 사람이 맞다.
그래서 사도들이 공인하여, 제자들과 함께하게 되었다.”고 설명을 합니다.
 
말하자면,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연결을 도와준 사람”입니다.
그렇게 한 개인의 도움을 받아서, [사울]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함께 생활하게 되었고,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계속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무엇으로 시작된다고요? 
그것은 “성령님과의 교통에서” 시작되고, [성령의 충만함]이라는 단계를 지나가야 가능합니다.
 
여러분, [성령님]은 그런 분이고, 여러분의 신앙생활에서 “돌파할 능력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이므로, 그분이 나에게 능력을 주셔서, 
”나에게 맡기신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신다.“고 믿으시고, 행동을 하십시오.
 
그러므로 ”그 분(하나님)이 여러분의 곁에 항상 계셔서“, 
여러분에게 힘을 얻도록 만드셔야 합니다.
 
▶왜, [바나바]를 보내 주셨을까요?
[바나바]는 예수의 이름을 담대하게 증거 했으므로, 그를 보내어 본받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도, ”예수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하고, 
”성령님이 나를 이끌어 나가시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