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기적, 구원의 초청장이 되다 (행9:32-43)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은 [베드로]를 통해서, 치유의 기적을 나타내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사역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일하시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루살렘 성전 문 앞에 앉아 있던 한 병자를 고쳤던 [베드로]가
이제는 유대 여러 도시들을 다니면서 복음이 전해지는 통로가 되는 모습입니다.
그동안 [빌립]을 통해,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였는데,
이제는 [베드로]가 온 유대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 시작됩니다.
▶이런 모습에서, “두 사람의 사역“에서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①첫째는/ 복음이 유대인을 넘어서, 유대 지역에 있는 ”이방 사람들에게도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유대 지역에는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헬라 문명의 영향으로 이방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②둘째로/ 치유의 기적을 통해서, “이방인들이 주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세상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때로는 병에서 고침을 받는 [치유의 기적]이 나타나는데,
이런 기적은 [사도]들이 행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기적입니다.
이런 기적은 주님을 만나도록 하는 “하나님의 초청장”입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9장에서 [베드로]가 두 지역에서 사역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지역은 [룻다]와 [욥바]인데, 예루살렘의 좌우에 있는 지역으로,
오늘날에 이스라엘의 벤구리온 국제공항이 있는 지역입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을 떠나 두 지역으로 가는데, 그곳에는 “이미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인데,
[베드로]는 ①믿는 이들을 격려하고, ②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방문한 것이고,
그런 사역을 하는 가운데에,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셨다.”는 겁니다.
[베드로]가 사전에 “어떤 기적”을 일으키려고, 이 지역을 여행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한 방문 가운데에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먼저 [룻다]지역에서 8년간 중풍 병에 걸려 침대에 누워 있던 [애니아]라는 사람을 만나는데,
그에게 “[애니아]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고치실 것이오. 일어나 자리를 정돈하시오.”라고
매우 직설적으로 명령을 하니까, [애니아]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1) 첫째, [베드로]는 [자신]이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 병을 고치시는 것임을 분명히 선포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병자를 만나는 순간에,
“주님께서 그에게 그 사람을 고치라.”는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순종하며 담대하게 선포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나는 고칠 수 있어, 나는 은사가 있으니까, 내가 고쳐 줄게”라는 태도가 아니고,
자신이 병자를 낫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렇게 시도한 것도 아닙니다.
또한 병자로부터 요청도 받지 않았는데, 임재 하는 [담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애니아]에게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 분명한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담대하게 선포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이 [기적]이 “주님께서 고치신 것인지, 아닌지?“는 결과가 말해줍니다.
그 결과는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지?“를 확인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모든 내용들이 ”하나님께서 쓰시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연결되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고침을 받음으로 인하여, [베드로]가 기쁨을 얻게 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베드로]라는 사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께로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행하신 결과로, “주님께로 사람들이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3)셋째로, [애니아]라는 사람이 큰 병(중풍 병)에 걸렸는데, 오늘날에도 고치기 어려운 병이지만,
그 당시에는 완전한 불치병이었기에, 큰 은혜를 체험하며 구원받게 됩니다.
육체로는 건강할지라도, 때로는 겉으로 아무 문제없는 사람들이, “[교만]이라”는 영적 질병에 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인생이 펼쳐지는 사람에게도 “교만이라”는 영적 질병에 걸립니다.
그러나 완전한 병에 걸렸을지라도, 우리 주님은 고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땅에 계실 때, 이러한 중풍병자를 고치셨던 것처럼,
하나님 우편에 계신 상태에서도 병자를 고치실 수 있으심을 믿어야 합니다.
(4)넷째로, [애니아]가 이 고침 받을 때, 필요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순하게 “믿는 것”뿐입니다.
고침을 받고, 구원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고, “단순하게 믿는 것”뿐입니다.
로마서 10장 8-9절에, “말씀이 네게 가까이 있으니 네 입 속에 있고, 네 마음속에 있다 하였으니,
이것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만일 당신의 입으로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롬10:8-9)
이 말씀은 “만일 당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마음으로 믿고,
당신의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입니다.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 그리스도께서 구원자이심을 단순하게 믿는 것입니다.
[애니아]는 [믿음의 증거]로 낫게 되고, [단순한 믿음]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단순하게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육신의 질병도 치유 받게 됩니다.
[룻다]에서 “이런 기적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욥바]에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리고는 그 옆에 있는, [욥바]에서는 더 큰 기적이 일어났는데,
그곳에는 [다비다]라고 불리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언제나 선한 일을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선행을 베풀어 온 사람”입니다.
[다비다]는 신실하고 선한 제자이므로, 누가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기쁘게 섬기는 성령 받은 성도입니다.
그녀가 병들어 죽게 되자, 그 시신을 씻어, 다락방에 두었습니다.
우리 온누리교회에도 [다비다]와 같이, 남모르게 선하게 섬기는 성도들이 있기에, 제가 인사를 받습니다.
저는 제가 하지도 않았는데, “그 교회 성도님이 나를 이렇게 도와줬다.”는 말을 제가 듣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며, 그 [다비다]의 도움을 받았던 많은 분들이,
눈물 흘리며 슬퍼하고 있고, 이제 [베드로]를 청한 것이죠.
그러나 “다시 살려 달라.”고 청한 것은 아닙니다.
안내를 받았을 때, [베드로]는 그 다락방에 가서, 조문을 한 게 아닙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을 모두 방에서 다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베드로가 “무슨 기도를 했는지?”는 저는 모르지만,
틀림없이 “주님께 이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를 물었을 겁니다.
[다비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슬픔에 빠진 제자들을 위로하며, 어떻게 마무리해야 되는 것인지,
아니면, “주님께서 행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는지?“를 물었을 것입니다.
처음에 방문한 곳, [룻다]에서는 그런 기도를 하지 않았어요.
[애니아]를 고칠 때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그런 장면이 없습니다.
▶왜, 거기서는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이미 주님으로부터 어떤 음성과 확신을 받았기 때문에, 선포만 했던 겁니다.
그런데 지금, [욥바]에서는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가 없었기에,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을 묻는 시간을 가졌던 겁니다.
▶이때, [베드로]가 왜, 사람을 다 내보냈을까요?
틀림없이 [베드로]는 예수님의 행적을 함께 목격을 했고, 기억을 했을 거예요.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다시 살리실 때, 똑같은 행동을 하셨는데,
그때 예수님께서 곡하는 자들을 다 밖으로 내보내시고, 기도하신 것을 연상하여,
[베드로]는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모두 방에서 내보내시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은 방해받지 않고, 하나님과 단둘이 기도함으로써, 문제에 대한 방향을 얻고자 하는 것이고,
그 결과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시신을 향해 몸을 돌려서 명령을 했습니다.
40절에, ”[다비다]야, 일어 나거라. 명령을 하자, 다비다가 눈을 뜨고, 베드로를 보며 일어나 앉았습니다.“(행9:40)
이것은 기적과 같이 살아났지만, [진정한 부활]은 아닙니다.
[진정한 부활]은 다시 살아난 이가 예수님처럼, 지금도 살아있어야 하지요.
이것은 [일시적인 소생]인 것이고,
잠시 동안의 회복으로 살아났지만, 그녀는 다시 죽었기 때문이죠.
▶이런 일시적인 소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많은 믿지 않는 이들이 믿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기적의 결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게 되는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성경 역사에 나타난 모든 기적들은 시대마다 목적이 있습니다.
[모세 시대]에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고,
예언자들의 시대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이 택한 민족임을 보여주시고,
이 민족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도들의 시대에는 무슨 기적입니까?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셨음이 사실이며, 그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계심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기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이러한 놀라운 지혜의 기적을 허락하신다면, 단 한 가지 이유일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놀라운 기적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 더 큰 기적입니다.
이렇게 나타낸 지혜의 기적은 마중물일 뿐입니다.
▶무슨 마중물입니까?
진정한 구원의 샘물이 터져 나오는 역사의 마중물일 뿐입니다.
오늘은 두 지역에서 기적이 일어났듯이,
우리들에게도 질병이 치유 받는 기적들이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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