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돌에 맞고도 (행14:8~20) 말씀: 이재훈 목사님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이 ”자신들이 받는 고난을 마땅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고난을 당연하게 여겼을 뿐“만 아니라, 기쁘게 받아드렸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의 여덟 번째 복”이 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팔복]의 여덟 번째 복이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5장 11- 12절에, “복되도다. 나 때문에 사람들의 모욕과 핍박과 터무니없는 온갖 비난을 받는 너희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들의 상이 크다. 너희들보다 먼저 살았던 예언자들도 그런 핍박을 당했다.”(마5:11-12)
그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이런 고난을 마땅히 여길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기뻐하는 모습이고,
이것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이 그들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복]은 ”핍박과 고난이 없는 것을 복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복]은 예수님 때문에 받는 고난도 기뻐하며,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난 주, 말씀의 끝은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충만했다.”고 맺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나라의 복]은 “예수님 때문에 받는 고난”을 기쁘게 받아 드리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은 모욕하며 핍박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들이 대적하는 이유를 시기심이라.“고 지적합니다.
[이방인]들은 환영하고, 말씀에 집중했지만, [유대인]들은 시기심으로 핍박했으나,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 사람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는데,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됐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이방인이었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이라.“는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3절에,
”[바울과 바나바]는 그곳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주를 의지해 담대히 말씀을 전했고,
주께서는 그들에게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능력을 베풀어주셔서, 주의 은혜의 말씀을 확정해 주셨습니다.”(행14:3)
①첫째, 그들은 “그곳에 오래 머물렀다.”고 합니다.
그렇게 복음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 속히 떠나려고 하지 않고,
“가능한 한 오래 머무르려고 했다.“는 것은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죠.
②둘째로, [주]를 힘입어, ”담대하게 말씀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담대함]은 어디서 나올까요?
그것은 [순수함]에서 나오고, ”복음에 대한 확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지역에서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위험“을 맞게 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며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그때에, 말씀을 듣는 청중 가운데 ”태어날 때부터 다리를 쓸 수 없는 장애인“을 만납니다.
그는 [바울]이 전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열심히 들었으므로,
[바울]은 그에게 ”당신 발로 똑바로 일어서시오“라는 큰 소리로 외치니까,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이 언제 역사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항상 사모하고,
또 그 말씀 속에 “내가 끌려들어가는 듯한 체험”을 하면,
이런 때에 성령님이 개입한 것이고,
바로 그때에, 성령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의 지식과 달리, 성령님의 감동과 하나님의 영으로 기록된 말씀이기에,
①성경 말씀이 나에게 새롭게 들려지고,
②그 말씀이 나를 사로잡아 귀가 열리는 그 때에,
③바로 성령님의 역사가 시작되고,
④그러한 말씀의 능력이 임할 때,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그런 기적을 본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자신들이 믿고 있던 신들이라.”고 오해하고,
“제우스신과 헤르메스 신이 사람의 모습으로 온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들이 오해해서,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물을 바치려고 했으나,
그것은 우상을 섬기던 사회이니까, “신들의 사람이 되어 내려온다.“는 신화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잘못된 것은 ”한 가지 원칙“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이고, ”우리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에,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내게 있게 하지 말라.“는 것은
이 말씀은 ”스스로도 신이 되지 말라.“는 말씀인데, 그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청중들을 진정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과 [창조주]이심을 설명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옷을 찢으며, 분노를 느끼고 표현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음모와 모함으로 바울을 괴롭게 핍박을 했고,
결국 [바울과 바나바]는 돌로 쳐서 죽을 만큼 돌을 맞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올바른 진리를 전하면,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옳은 지도자를 싫어하고,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지도자를 좋아하게 됩니다.
이렇게 [바울과 바나바]는 올바른 진리를 전했지만, 이처럼 죽도록 돌에 맞고도, 다시 일어나,
이를 기뻐하며 소명의 길을 다시 걸었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하나님 나라의 복“입니다.
어떠한 고난과 핍박에도 기뻐하며, 이길 수 있는 복을 누리게 합니다.
그러니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축복을 누리고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일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을 내시는 하나님 (행15:36~16:10) 2024.07.21 (0) | 2024.07.21 |
---|---|
율법의 짐을 벗고, 은혜의 힘을 얻다 (행15:1-21) 2024.07.14 (0) | 2024.07.14 |
땅 끝까지 전해지는 복음. (행13:42-52) 2024.06.30 (0) | 2024.06.30 |
참된 선교적 교회 (행13:1-12) 2024.06.23 (0) | 2024.06.23 |
치유의 기적, 구원의 초청장이 되다 (행9:32-43) 2024.05.26 (0) | 2024.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