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짐을 벗고, 은혜의 힘을 얻다 (행15:1-21) 말씀: 이재훈 목사님
[사도행전 15장]은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여행을 마치고,
복음의 갈등을 느끼며 예루살렘에서 열리는 총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 [논쟁]이 일어났는데, 예루살렘교회에서 서로 합의하게 됩니다.
그것은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 진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를 맺게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방인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유대인으로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세 교회의 어두움을 지우고, 종교개혁의 3대 모토는 무엇입니까?
①오직 성경, ②오직 은혜, ③오직 믿음입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밝게 드러내기 위해서, 그들은 생명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교회가 바로 세워진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교회 역사를 보면, 이 진리를 올바로 믿고, 고백하고,
이 진리 위에 교회가 세워졌을 때, 건강하고 순수했습니다.
그러나 이 진리가 희석되고, 분명하게 증거 되지 않았을 때,
교회는 방황하고, 배교에까지 이르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중세교회가 어두운 시대를 겪었던 것은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명확하게 깨닫지 못했고,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대 교회를 보면서 “중세교회와 닮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부패하고, 목회자의 타락 등,
여러 가지 잘못된 모습들도 원인이지만, 가장 중요한 진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순순한 복음으로부터 멀어지고, 성경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종교개혁자들이 발견한 진리를 사도들이 확인하고, 경험한
”첫 번째 교회회의“이고, 예루살렘에서 열린 ”첫 번째 교단 총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사]에서는 이것을 “예루살렘 공의회”라고 합니다.
이 배경은 “바나바와 바울을 통해서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베드로]가 자신의 체험을 간증했습니다.
그가 로마의 백부장이었던 [고넬료]와 그의 일행을 만난 사건을 고백했습니다.
[베드로]가 환상을 보았는데, 환상 속에 동물들은 레위기의 율법에 근거하면, 먹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먹으라.”고 했을 때, 베드로는 “율법에 근거한 생각”으로,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내가 깨끗하다고 한 것을 네가 불결하다고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환상]이 베드로의 율법적인 사고방식을 깨뜨렸고, [고넬료]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로마 백부장이었던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그는 율법을 존중했지만 유대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체험한 것을 [고넬료]와 일행들도 체험을 했습니다.
오순절에 임했던 성령님이 고넬료와 일행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했습니다.
그러면서 율법적 유대인들에게 “여러분은 우리 조상이나 우리도 질 수 없었던 무거운 짐을
왜 이방인들에게 지우려고 하느냐”고 도전했습니다.
자신들도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면서 왜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이방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으로 [바나바]가 자신의 체험을 간증했습니다.
“온 회중이 조용해지면서 바울과 바나바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를 이야기했습니다.”(행15:12).
[바울과 바나바]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짧은 구절로 요약을 했을까요?
너무 길었기 때문에 모두 쓸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표적과 기사를 행하시고,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사건을 일일이 기록한다면 사도행전 이상으로 기록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만큼 바울과 바나바의 고백이 핵심적인 역할이었습니다.
이어서 [야고보]가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방 사람들을 괴롭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상으로 더러워진 음식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는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행15:19-20)
[야고보]의 지혜를 통해서 [안]이 결정되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의 짐을 지울 수 없다. 단, “네 가지를 멀리하라.”고 했는데,
①우상으로 더러워진 음식, ②음행, ③목매어 죽인 짐승의 고기와 ④피는
유대인들에게 너무나 혐오스러운 일들이기 때문에, 이것은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를 차원을 뛰어넘어,
“덕과 배려의 차원에서 우리가 지키자.”고 결정했습니다.
이러한 [안]이 “예루살렘 공의”에서 결정이 되었습니다. 만장일치로 내려진 이 결정은
복음으로 율법의 속박과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서 하나님의 복음이 온 세상에 순수하게 전해질 수 있도록 한
종교개혁 이전의 종교 개혁적 사건입니다.
여기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이고,
“복음의 가장 중요한 본질”인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되게 하는 진리”입니다.
이방인들도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친 사람들은
종교개혁 이전 중세교회 사람들의 생각과 가르침이 동일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직“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이것을 분명하게 고백했습니다.
[갈라디아서]를 명확하게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변증하는 중요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왜,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말씀했을까요?
율법으로 지키는 [선한 행위]는 우리의 눈에 선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닙니다.
“의롭다.”고 인정받을 육체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우리가 죄인의 상태에서 의롭게 된다.”는 것이니까,
[마틴 루터]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성경 전체에 나오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전가 받으셔서“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실 뿐만이 아니라, 부활하심으로 의롭게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의로움“이 우리에게 [전가]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의로움“이 ”나의 의로움“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예수님의 생명“이 ”나의 생명으로“ [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의로움]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은 [아담의 죄]가 전가된 상태로 태어나고,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①”우리의 모든 죄가 전가되었고,
②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생명과 의로움이 나의 의로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볼 때는 [죄인]이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보실 때는 [의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죄인인 동시에 의인”이니까,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존재”입니다.
어린양 되신 그리스도가 우리를 덮으실 때, 그분의 의로움이 나의 의로움으로 전가되었고,
우리는 오직 믿는 마음으로 이러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수십 년을 철저하게 봉사하고, 헌신해도 “그 자체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전가됨으로, 우리 모두는 죄인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우리가 아담 안에서 철저한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죽음이 나의 죄를 대신한 죽음이며, 예수님의 의와 거룩이 나의 의로움이 됐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십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예루살렘 회의”에서 결정했습니다.
모든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하지 않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를 줌으로,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의의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이 귀한 [진리]를 우리가 날마다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진리를 체험한 자는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날마다 고백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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