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갈등의 물결, 부흥의 파도가 되다 (행6:1~15) 2024.04.07

다이나마이트2 2024. 4. 7. 23:16

갈등의 물결, 부흥의 파도가 되다 (행6:1~15)  말씀: 이재훈 목사님

[초대 교회]에 서로에 대한 불평이 일어나, 갈등이 생겼습니다.
예루살렘교회에 성도들이 늘어나고, 또 다양한 사람들이 모임으로 인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거기에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①첫째는, 성도들의 숫자가 많아짐으로, 행정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교회가 크나, 적으나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는 언제나 문제가 발생합니다.
 
②둘째로, 다양한 문화 속에서 [한 공동체]에 생기는 문화적 긴장입니다.
거기에는 주로 “그리스파, 유대 사람들이라“고 했지만, [헬라파]와 [히브리파]가 충돌하게 되었고,
이들은 보이지 않는 문화적 긴장으로 비화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갈등]을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문제를 [사도]들이 해결했고, [갈등]을 극복하고, 
”도리어 [부흥의 촉매제]로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1) 첫째로/ 그들은 “우선순위를 재정립했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구제 대상자가 누락됨으로 갈등이 생겼으므로, “이제 그 일에 신경을 더 쓰겠다.”는 결정이 아니고,
정반대되는 결정을 했는데, 오히려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에 더 힘쓰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2- 4절의 말씀에, “그리하여 12 사도들은 제자들을 모두 불러놓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분비하는 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 가르치는 사역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형제들이여, 여러분 가운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다’고 알려진 사람 7명을 뽑으십시오.
그러면 이 임무는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겠습니다.”(행6:2~4)
 
이런 [갈등] 속에서,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입니다.
 
사도들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도 중에 7명을 뽑아서, 이 일을 담당하게 하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에 충실하겠다.”고 결정합니다.
 
이런 결정에, 모든 사람들이 이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여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테반]과 [빌립]등, 7사람을 뽑았습니다.
 
(2) 두 번째로/ 그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두 개의 표현이 나오는데, 
그것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라는 것은 
①믿음이 있고, ②현실에 대한 분별력이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믿음]은 이성적인 판단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신비]에 맡기는 것이고, 
이 두 가지가 ”성령 안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두 가지, [열매]가 있는데,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령]과 [지혜]입니다.
이것을 [교회의 리더십]으로 세움을 받은 중요한 자질인 것이죠.
 
(3) 세 번째로/ 이들은 문화적 차이가 있는 이들을 끌어안았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문제점은 [다문화 공동체]인데도,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끼리만 교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익숙한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 사람“을 [리더]로 세움으로써, 
”사람들의 소외감과 불평을 해소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그들에게는 “[이방인]을 리더로 세우는 지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원인으로, 모든 것들의 [갈등]이 해소되었고, 
“초대교회가 발전하는데 촉매제로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갈등]으로 인하여, [부흥의 파도]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스데반]인데, ”그를 중심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결정의 결과가 ”어떻게 변했는지?”가 7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널리 계속 널리 퍼져나갔으며, 이로써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도 많이 늘었고,
더욱이 수많은 제사장들도 이 믿음에 순종하게 됐습니다.”(행6:7)
 
결과적으로, 말씀이 계속 퍼져나갔고, 믿는 사람이 늘어났고,
심지어 제사장들까지도 많이 믿게 되었으니까, [부흥의 파도]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분은 [스데반]입니다.
[스데반]이 말씀을 전할 때, 수많은 영혼들이 돌아오고, 많은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스데반이 산헤드린공의회 앞에 섰을 때, [스데반]의 얼굴이 어땠습니까?
기록에 의하면,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해치려고 공격하려는 사람들 앞에서, [천사의 얼굴]을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성령 충만한 모습”이고”, 
여기서 [충만]이라고 하는 것은 “흘러넘친다.”는 뜻이죠.
 
이 모습은 [가면]이 아니도, “스스로 울어 나는 모습“입니다.
이 모습은 우리가 바라봐야 한 ”귀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때야 합니까? 우리는 [담대한 증인]으로 나서야 하지만, 
이런 스데반의 얼굴처럼, [천사의 얼굴]로 보여 지기를 소망합니다.
 
사실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미국 교회가 많은 부응을 했는데,
미국에 있는 많은 교회들의 중요한 허점과 문제는 [인종 교회]로 바뀌어 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①아프리칸 처치, ②히스페닉 처치, ③우리 한인교회에도 [코리안 처치], 
미국이라는 다인종 사회, 다문화 사회에도, 언제부터인가 같은 인종끼리, 같은 문화 사람들끼리만 어울리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그 당시에도 이런 결정은 엄청난 파격적인 결정인 셈이죠.
이것이 초대교회가 [갈등]이 일어났지만, 
”[갈등]이 [부흥의 촉매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배운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럭비공]은 ”차는 게 아니라, 가슴에 끌어안는 공이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럭비공]은 ”손에서 떨어지면, 어디로 튈지를 모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럭비 선수들은 [럭비공]을 끌어안고 한 없이 질주하며, 뛰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럭비공] 같이, 서로를 끌어안는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