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겸손의 왕, 언약을 이루시다 (막11:1~11)

다이나마이트2 2024. 3. 24. 18:25

겸손의 왕, 언약을 이루시다 (막11:1~11)  말씀: 이재훈 목사님

내일부터 금요일까지, [고난주간]이므로, 새벽기도회가 시작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을 소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대부분의 시간을 [갈릴리] 주변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루살렘으로 입성한 후, 최후의 일주일의 시간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3년간의 공생애도 중요하지만,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후에, “최후의 일주일의 삶”은
[십자가 사역]을 완성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으로 오해를 하지만,
예루살렘에서 보낸 시간은 “단 [일주일]”이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유대사회에서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이전에, [일주일]을 “종려주일이라”고 부르면서 교회력으로 지켰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은 공생애에서 보여주셨던 모습과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것은 [공생애]를 사실 때는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지만,
제자들에게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셨듯이, 대중들의 관심을 피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는 “도리어 자신을 드러내시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본문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모습”은 예수님께서 직접 연출하셨는데,
그것은 “구약의 예언된 메시아”, “구원의 언약을 이루는 메시아”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바로 [메시아]임을, 
“이제는 사람들에게 나타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절에,
“예수님이 저기 보이는 마을에 가서, 아직 아무도 타지 않은 새끼 나귀가 있을 테니, 이리로 끌고 와라.
만약 누가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주께서 필요하시니, 쓰고 제 자리에 갖다 놓겠다고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의 [주인]이시니까, 또 나귀의 주인이기도 하십니다.
예수님이 나귀가 필요하시니 쓰시겠다.“고 하면, 되는 일인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고, ”쓰고 제 자리에 갖다 놓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날,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려고 합니다.
▶왜, 갑자기 [나귀]를 타려고 할까요? 예수님은 그동안 [배]를 타는 경우는 있어도, 나귀를 타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나귀]를 타셔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갑자기 [나귀]를 가져오도록 하신 근본적인 이유는 
”구약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 때문입니다.
 
[스가랴]서의 9장 9절에,
“시온의 딸아, 마음껏 기뻐하여라. 예루살렘의 딸아, 소리쳐라. 보아라.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다. 그는 겸손하셔서 나귀를 타시니,
어린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왜, “마음껏 기뻐하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구원의 왕]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겸손하시기에, ”어린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신다.“고 예언했습니다.
 
▶대부분의 [왕]들이 [말]을 이용합니다.
왕이 출정을 하거나, 전쟁에서 돌아올 때, 빨리 달릴 수 있는 [말]과 다닥다닥 웅장한 [말발굽] 소리를 내면서,
왕의 품위와 권위를 상징하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 새끼 나귀“를 타고 입성하려고 합니다. 좀 우스꽝스러운 거죠. 
[나귀]는 싸우는 동물이 아니고, 빨리 달릴 수도 없습니다.
평화로울 때, 그저 터벅터벅 천천히 걸을 수 있는 동물입니다.
 
▶이것은 무얼 의미하나요? 그것은 ”겸손한 왕이라“는 겁니다.
거기에 [높은 깃발]도 없고, [큰 나팔]도 없고, 군사들의 호의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데,
군중들은 ”우리를 구해줄 메시아“라고 기대를 하고, 지금 환영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 겉옷을 깔아 주었고, 어떤 사람은 나뭇가지를 꺾어와 길에다 깔고, [호산나 호산나]를 외치며,
주님을 환영하였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구원]이 아니고, ”로마로부터의 구원“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유대민족은 정치적으로 해방시켜줄 것을 간구할 때, 종려나무를 흔들었습니다.
이것은 ”민족주의적인 열정“을 의미하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언제부터 [종려나무]를 흔들었을까요? [종려나무]는 지도자를 환영할 때 사용했는데,
주전 175년에, 예루살렘이 [시리아]에 함락된 적이 있었는데, [마카비우스]가 승리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환영하는 도구로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흔들었던 것입니다.
 
한편/ [유다]의 배신으로,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님을 잡으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군중들이 환영하는 ”바로 [그 사람]이라.”고 확실하게 표적을 찍어서 나타난 셈이죠.
 
[이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 [닷새 전]입니다.
이날은 율법이 [유월절 어린양]을 취하는 날로 정해 놓은 날입니다.
 
그러니까 닷새 전에 [양]을 정해야 하니까, ”어느 양을 죽일지?“를 미리 준비하라는 거죠.
이 사건으로,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으로 정해진 셈이지요.
 
군중들은 정치적인 악재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외쳤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로부터,
나를 얽매이고 있는 죄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호산나를 외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오신 [겸손한 왕]이십니다.
모든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그분이, 이처럼 겸손한 모습을 보이셨으니,
[종려주일]에 우리도 그런 모습으로 [고난주간]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