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빈손으로 일으킨 기적 (행3:1-10) 2024.02.04

다이나마이트2 2024. 2. 5. 10:36
빈손으로 일으킨 기적 (행3:1-10)  말씀: 이재훈 목사님
 
[사도행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공동체의 탄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순절]에, 바람처럼 불처럼 임하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고, 교재를 나눔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거기서 무엇을 했습니까?
①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②서로 교제하고, ③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고, 
④자신들의 재산을 팔아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어 주었고, ⑤모이기를 힘쓰고, 
⑥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사람들에게 두 가지 반응을 받았는데,
①하나는 [두려움]을 품게 되었고, 
②다른 하나는 [칭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서 기사와 표적들이 나타나게 되므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었고,
그들의 모습을 보며,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원리를 뛰어넘어, 자신의 삶과 재물을 나누며, 필요를 채우며,
서로 [하나] 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놀라움을 나타내면서 칭찬을 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구원]은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지만, 사람이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의 통로”로 사용하실 뿐입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고, 교재를 나눔으로,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받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이 “구원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셔서, 그 자리에 없지만, 성령 안에서 머물고 있으면, 
“성령 받은 증인”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임재하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의 [본문]이 그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런 사건을 보여 줍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3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가고 있었을 때인데,
[베드로와 요한]은 예전에 그들이 아니고, 오순절에, [성령의 강림]을 경험하고, 능력을 덧입은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부], 베드로가 –-->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변한 것이고, 지혜와 은사가 베드로에게 임했습니다.
 
이제, [베드로와 요한]은 스타일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서, 공동체를 이끌어 갑니다.
[요한]은 사랑이 많으며, 매우 섬세하고 친밀한 성격이고, [베드로]는 충동적이지만,
또 이끄는 힘이 있는 사람으로, 서로가 [하나]가 되어서, 강력한 공동체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이들은 “성령 충만한 능력”을 받았지만, “유대인들의 습관”을 어기지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 [유대교]로 정형화된 그들의 기도하는 습관을 여전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들은 [성전의 미문], “아름다운 문이라”고 불리는 문 앞에서, 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 사람은 40세 정도 된 사람으로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으로, 누가 데려다 앉혀 놓은 사람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것인데, 그 날은 그에게 주목하고, 
[성령의 이끌림]으로,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 그 날은 보였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 사람을 주목하며, “우리를 보시오.”라고 말하니까, 
그는 “뭔가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려는가?”하고 생각을 하며, 그들을 쳐다보았습니다. 
 
6절에서, [베드로]의 입에서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앉은뱅이]는 얼마나 실망했겠습니까? 
”은과 금이 없으면, 왜, 쳐다보라고 했는가?”라는 원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내게 있는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라며,
그 다음 말이 믿기 어려운 말인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소리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증인”이 가지는[담대함]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우리를 보시오.”라고 말할 수 있는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세상에 없는 것”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말한 3장 6절의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이런 [치유의 능력]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태어나면서부터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갑자기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했으니,
그 사람은 일어나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 때, [베드로]의 말만 듣고, 스스로 일어날 수도 없고,
당황하는 그에게, [베드로]는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는 행동“을 했는데,
바로 그때, 그의 발과 발목에 힘을 얻게 되어, “걷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때, [베드로]의 손은 [빈손]이고, ”그의 손에, 은과 금이 없는 빈손“이었습니다.
그러나 은과 금이 가득한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의 손]이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①[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영혼을 붙잡고 일으키는 손“이기 때문입니다.
②절망한 영혼을 지나쳐버릴 수 없는 ”사랑의 손길이 임한 손“이기 때문입니다.
③[베드로]의 손은 [빈손]이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동“했기에, 능력이 나타낸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교회]는 은과 금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만일에/ 그렇게 한다면, [교회]는 세상에 휩쓸려 버릴 것입니다.
 
그런 좋은 [사례]가 ”중세 교회“에서 경험했습니다. 
[중세 교회]에는 돈이 많았지만, 부패해서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교회]는 빈손으로도, 세상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빈손]일 때, 오히려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이 더 나타납니다.
 
오늘의 말씀은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의 임재가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기적“은 [베드로]가 일으킨 기적이 아닙니다.
 
그들의 [빈손]을 통해, 그러나 ”주님의 임재가 나타난 기적“입니다.
오늘의 기적은 ”예수님이 성령 안에서, 그들을 통해 행하신 기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빈손을 주님께 드리고,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