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진실은 가둘 수 없습니다 (행4:1~22) 2024.02.18

다이나마이트2 2024. 2. 18. 19:09

진실은 가둘 수 없습니다 (행4:1~22)   말씀: 이재훈 목사님
 
미국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으로, [워터게이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닉슨 대통령이 백악관 참모들과 함께, “거짓으로 음모를 꾸민 사건”입니다.
 
그때, 백악관 고문이었던 [척 콜슨]이라는 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때의 일을 회개하고,
간증하는 책에서 “10명의 참모들이 [거짓]을 꾸미고 나서, 조사가 시작된 지,
2주가 되지 않아서 모든 것이 다 드러났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이것은 진실을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지킬 수 있겠지만, 
”거짓을 위해서는 희생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짓]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서로가 서로를 배반하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인 것입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너무나 약한 존재이고, 협박과 위협, 그리고 뇌물에도 약합니다.
제자들 중에서 ”그것이 거짓이라.“고 고백한 사람이 있다면, 그 이후에 기독교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동안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단 한 사람이라도 ”[거짓]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스스로 고난을 당하고, 스스로 순교했으므로,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힘이 없고, 연약한 갈릴리 사람인데, 잡혀가서 핍박을 받더라도, 
실제로 있었던 일들을 증거하니까, 로마의 군병들도 어쩔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고, 사람들은 고난과 핍박을 이겨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타난 능력이고, ”[진실]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사도행전 4장]에 나오는 ”성전 문 앞에 기적“은 그 후에, [파동]으로 이어지고,
성전 문 앞에서 ”날 때부터 걷지 못한 사람“에게 걷게 하고, 뛰게 하는 기적은 [파동]으로 퍼졌습니다.
 
(1) 첫 번째 파동은 그 기적을 보고,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몰려들었고, 
그들에게 [베드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앉은뱅이가 일어 선 것은 ‘그분의 이름으로 행한 기적’입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그분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계시므로,
여러분은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설교를 했는데, 이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회개하였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남자의 수만 ”[5천 명]이라.“고 했으니, 가족까지 다 합하면, 적어도 1만 명 이상은 되었을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의 인구가 적어도 5만~8만 정도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두 번째 파동은 이런 [기적 사건]으로, ”사람들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가두고, 핍박하는 일들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전으로 몰려오니까, 사람들을 가르치게 되었고,
이를 불편하게 여긴 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시기하게 되었고,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가둡니다.
 
그 당시에는 백성들을 통치하는 유대사회이므로, 거기에 나오는 이름이 [안나스]와 [가야바]인데, [안나스]는
최초로 로마 총독에 의해 임명된 대제사장이고, 역사적으로 정통성이 없는 사람이고,
로마 총독의 신임을 받아서 임명되었으니까, [로마 법]을 유대인에게 적용했습니다.
 
이렇게 권력이 [사유화] 되었고, 부정한 인물이 장악하는 시대이므로,
그들에게 심문을 당하기 시작하는데,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에게 굴복하거나, 위협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왜, [진실]을 가리려고 했을까요? 
①첫째로/ [진실]이 전해지면, 자신들의 거짓과 불의가 드러나기 때문이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그들의 [불의함]이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을 “제자들이 훔쳐갔다.”는 말이 다 [거짓]으로 들어나기 때문이지요.
 
②두 번째는/ 이런 [진실]이 전해지면, 자신들이 가진 모든 이권을 챙길 수가 없기 때문이죠.
당시에 대제사장과 사두계인들이 성전에서 엄청난 이권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예수님이 성전에서 크게 화를 내시고, 뒤집어엎으신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성전에서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 “교회에서 왜, 돈을 받고 장사하느냐?”고 화를 내신 것입니다.
 
절기 때마다 사람들은 제물을 가져와야 되는데, [레위기 율법]에 보면 “흠 없는 제물”을 가져와야 되는데,
성전 앞에서 제사장들이 [검사]를 하는데, 사람들이 가져 온 물건에는 ”불합격 판정“을 내리고,
그들에게 ”매점에서 파는 제물을 가져오라.”고 유도합니다.
 
제사는 드려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불만이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하나님의 [기도하는 집]에서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성전에서 상을 뒤집어 엎으셨어요.
 
▶여기에서 예수님이 전한 [진실]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 구원 얻을 수 있는 이름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4장 11- 12절의 말씀에,
“예수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지만,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예수 외에 다른 어느 누구에게서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 아래 우리가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행4:11-12)
 
여기서 예수님은 두 번씩이나,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반복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부정한 일을 들추어내는데, 초점을 두고 있지 않고,
“성전에서 잘못된 일을 행하느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만이 구원 얻는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렇다고 유대사회가 가지고 있던 “[부정부패]에 침묵해야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구원 얻을 만한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직 [그분의 이름]이 우리에게 구원 얻는 길”이라고 소리치니까, 많은 공격을 받습니다.
심지어 기독교 내에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 있지만, 타 종교에서는 “기독교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다.
왜, 타종교회는 구원이 없다.”고 지적하느냐?“라고 항의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 가운데 역사의 중심에는 늘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며, 
▶그분이 [유일한 구원의 길]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①그분이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②또한 그 분이 ”완전한 사람“이 되셔서, 
③죄 가운데서 우리를 빼내어서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 ”죄의 결박을 끊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어떤 종교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구원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확신하였기에,
이 모든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나갈 수 있었고, 모든 핍박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므로, 
이들이 핍박 속에 있는 [담대한 고백]이 바로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담대함]은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그것은 ”겸손에서 나온 순종“입니다. 
이들을 사로잡은 [담대함]은 “예수님의 이름”에서 나오는 용기입니다.
 
세상의 어떤 압력도 이런 [진실]을 가둘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진실]은 단 한 가지 경우에만 가둘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진실을 아는 사람, “자신이 그 진실을 침묵할 경우”에 스스로 가둘 수 있고,
스스로 진실을 가두는 경우 외에는 세상의 어떤 압력과 변화도 진실은 가둘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무엇이 옳은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담대히 증거 할 수 있도록,
우리는 그런 [담대한 증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