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세월을 아끼십시오 (엡5:15-18) 2023.12.31

다이나마이트2 2023. 12. 31. 23:32
세월을 아끼십시오 (엡5:15-18)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은 12월 31일, 일 년 중에 “마지막에 드리는 주일예배”시간입니다.
에베소서 5장 16절을 보시면. “세월을 아끼십시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여러 영어 [번역본]에서는 
“①시간을 다시 사라. ②시간을 최선으로 사용하라. ③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라,”는 의미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 속에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간 관리]라는 측면에서 보면, “시간을 분초로 쪼개며 관리하듯 살아가는 것이
과연 세월을 아낀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가 [시간]을 분초까지 계산하며, 살아가는 삶이 될 때,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남단에 가면, 초원에서 풀을 뜯으며 생활하는 [스프링복](Springbok)이라는 영양의 동물들이 있습니다.
이 동물들은 [떼]를 지어 이동하는데, 시속 94km나 되는 빠른 발을 가지고 있어서,
“치타나 호랑이도 쉽게 잡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스프링복]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있는데, 
그 이유는 “식욕강해서, 뒤에 가면 먹을 풀이 없으니까, 서로 경쟁을 하듯이 빨리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먼저 가려고 계속해서 달리다 보면, 자기 평균 속도를 넘어서 100km 이상을 달리게 되어,
”나중에는 풀을 뜯는 것을 잊어버리고, 달리기만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처음에는 풀을 뜯기 위해 달리다가, 그 [경쟁심]으로, 가속화 되어, ”집단 몰살을 당한다.“고 합니다.
바로 이 [모습]이 ”우리 인간들의 모습과 같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지?”도 모르고, 서로 경쟁하고,
앞서가려는 마음에서 [나 자신]도 모른 채, “함께 자멸하고 있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비유입니다.
 
오랫동안 선교사로 사역했던 [윌리암 맥커넬]이라는 분이
, [시간의 관점]에 따라 문화를 크게 두 가지의 문화로 구분했습니다.
 
①첫째 문화는 “미래지향적인 문화로, [퓨처, 오리엔티드 컬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래의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계획에 따라 행동하는 문화입니다.
 
이런 문화는 소위 [시간 관리]라는 것은 [타임 매니지먼트]인데,
이것은 ”주어진 시간에 효율적으로 가장 많은 일을 할 수 있느냐”라는 관점에서 시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②또 다른 문화는 “사건 지향적인 문화로, [이벤트 오리엔티드 컬처]”입니다.
이것은 시계가 가르치는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어떤 사건에 얼마나 충실한지?“에 더 큰 관심을 가지는 문화를 말합니다.
 
여기서 [이벤트]라는 것은 ”어떤 목적이 이루어지는 사건이라.“는 의미에서 [목적 중심의 문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런 [시각]을 가진 분“을 만났는데, 제가 미국 시카고의 트리티 신학교에서 유학을 갔을 때, 만난 지도교수입니다.
저는 그 때에, 언어도 제대로 안 되고, 수업도 따라가기 힘들어 하는데, 그분이 너무나 인자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리포트]를 시간에 맞춰서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신이 이 과목에서 무엇을 배웠는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언제까지 내라”는 것에 신경 쓰지 마라.
 
당신이 학교에 몸담고 있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내면, 학점을 줄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충실히 무엇을 배웠는가?에 초점을 두어서 ”페이퍼를 내라.“는 말입니다.
 
저는 제 귀를 의심을 했고, 다시 확인해 보니,
”학교에 적을 두고 있고, 내가 살아있는 한 페이퍼를 내면 학점을 주겠다.“는 말인데,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지만, 그 말씀대로 해 주셨어요.
 
그래서 저는 그 교수님 과목만 신청을 했고, 들은 거죠.
그래서 남들은 1년 반에 마치는 걸, 4년에 걸쳐서 시카고와 뉴저지를 왔다 갔다 하면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오랜 [선교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당신이 무엇을 배웠는가?“라는 목적에 초점을 두었기에,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을 ”시간에 맞추는 문화“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그것을 뛰어넘어서 ”목적이 무엇인가?“를 되새기는 문화도 [은혜로운 문화]로 생각됩니다.
 
헬라어에서 [시간]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로 번역될 수 있는데,
①하나는, [크로노스]이고, ② 또 다른 단어는 [카이로스]입니다.
 
먼저 ①[크로노스]라는 것은 ”시계로 측정할 수 있는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하고,
다음에, ②[카이로스]는 ”어떤 사건을 통해 목적이 이루어지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 5장 16절에서 ”세월을 아끼십시오.“라고 할 때, 그 [세월]은 [카이로스]로, 
”어떤 사건을 통해서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세월이라”고 번역했을까요?“ 그것은 [카이로스]라는 한글 단어가 없고,
심지어 영어에도 없기 때문에, 그저 ”미래지향적 문화에 따라서,
제한된 시간에 많은 것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에 [시간 관리] 측면에서 번역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본래는 [카이로스]로, ”목적이 이루어지는 사건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라.“는 겁니다.
 
여기서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 뒤에 나오는 단어가 ”때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때]라는 단어는 ”앞에 [세월]에는 카이로스라는 단어가 사용됐고, 뒤에서 ”때가 악하다.“고 할 때는 영어로는 [더 데이즈](우리말로, [날들])이라는 뜻이니까, 이 단어가 오히려 우리말로 번역하면 [세월]이 된 것입니다.
 
▶사단이 [시간]을 어떻게 악의 도구로 사용할까요? 
그것은 [제한된 시간]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겁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가 어떤 질병에 걸렸을 때, ”당신은 이제 얼마 살지 못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왜, 그럴까요? 의사가 ”이제 당신은 일주일밖에 더 살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면, 모든 사람들이 절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환한 웃음으로 밝게 빛나는 모습이었는데,
▶그 이유는 ”저는 평생 오늘 하루가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일주일이나 더 남았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얼마나 [시각]이 다른 것이죠. [제한된 시간]이 ”나에게 이제 남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두려움]을 주는 게 아니라, [감사하다.]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카이로스의 삶]을 산 사람은 내일이 두렵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33세의 삶을 사셨지만, 33이면 얼마나 짧은 인생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을 하였고, 이 말은 “여한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셨을 때, 가지신 계획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단]은 제한된 시간 속에, 우리를 분주하게 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하고, 
우선순위를 잃어버리게 되어, 결국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2) 두 번째로, [시간]이 영원을 향하고 있지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시간은 금이다.“는 말은 정말 잘못된 말입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세월이 악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시간]이 영원을 향하지 않을 때, 사단은 시간을 악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세월을 아끼는 방법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영원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을 바라볼 때, 시간을 다시 살 수 있듯이, [시간과 영원]은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영원]은 시간이 길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는, [시간과 영원]을 잘 구별하고, 아주 길게 이 부분을 설명했습니다.
그중에 한 문장을 정리해 보면, ”[시간]은 항상 머물러 있지 않고, 과거, 현재, 미래로 지나가는 것이지만,
[영원]은 항상 머물러 있는 것으로 모든 것이 동시적으로 현재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원]에는 과거와 미래가 없고 언제나 현재입니다.
시간과 영원은 질적으로 다른 차원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항상 [현재]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해주셔서,
시간 속에 인간을 머물게 하심으로 영원을 향하게 하셨습니다.
 
전도서 3장 11절의 말씀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처음과 끝을 다 알지는 못하게 하셨습니다.”(전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정한 [시간]을 정하신 까닭은 영원을 사모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시간은 영원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삶]을 “사후의 삶, 에프터 라이프”라고 부르는데,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도리어 “이 세상에서의 삶“이 [사전의 삶]이고, [진정한 삶]은 영원한 삶이고,
우리가 이 시간 속에 살아가는 것으로 그 영원을 준비하는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몇 새의 삶을 살든 우리는 시간 속에서만 살도록 창조된 것이 아니라, 
”영원 속에서 살도록 창조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을 의식하며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삶으로 세월을 아낄 수가 있습니다.
 
▶[때]가 악한 상황에서, 어떻게 세월을 아낄 수 있습니까? 17절의 말씀에,
“그러므로 지각없는 사람이 되지 말고,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십시오.”(엡5:17)
 
여기서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카이로스의 삶]을 삶으로 영원을 준비하기 위해서, ”지각없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① 정해진 시간에 많은 것을 성취하는 인생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며,
충실히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평가하실 때, 주어진 시간 속에 얼마나 많은 것을 성취하였나?“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시간 속에, ”[주의 뜻]을 충실히 순종하였나?”를 평가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시간의 의미]는 일을 잘하는 것,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니, 그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② 18절에,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잘못하면 방탕에 빠지기 쉽습니다.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십시오.”(엡5:18)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서 “술에 취하지 말라.”는 것은 “단지 알코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방탕]에 빠짐으로, 잘못 판단하게 함으로, 분별력을 잃게 됩니다.
사람이 [알코올]에 취하면, 가장 먼저 분별력이 떨어지므로, “술 취한 모습으로 살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성령이 충만하면, 매 순간에 [주의 뜻]을 분별하며, [카이로스의 삶]으로 영원을 바라보게 만드니까,
[주의 뜻]을 생각하며 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2023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크로노스]의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지난 한 해 동안을 생각하면서,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이루어졌는가?”를 반성하고,
새로운 2024년, 새해를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