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유혹에 꺾이지 않는 꿈 (창39:1~6, 19~23) 2023.12.10

다이나마이트2 2023. 12. 10. 18:45

유혹에 꺾이지 않는 꿈 (창39:1~6, 19~23)  말씀: 이재훈 목사님
 
미국 헐리우드 영화에, ”삼손과 드릴라“, ”다윗과 밧세바“와 같은, 잘못된 남녀관계를 비추는 영화들은 있지만,
그러나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는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삼손]과 [다윗]은 유혹에 넘어갔지만, [요셉]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유혹에 넘어가는 장면은 기대를 하지만, 유혹을 이기는 장면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흥행이 중요하므로, 사람들의 기호에 맞추어, 영상이 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이 있지만, 오늘은 [요셉]이 살았던 삶을 돌이켜 보겠습니다.
 
▶[요셉]이 살았던 삶은 어땠을까요? 그는 순결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삶은 ”성적인 유혹을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타락하더라도, 거룩하고 순결하게 살기가 어렵습니다.
[요셉]은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에 충실했고, 신실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요셉]이 살던 그 당시에는 주변에 교회도 없었고, 가족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가진 성경도 없었고, 정기적인 예배도 없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오직 ”[하나님의 꿈]을 통한 계시“가 전부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올곧고 정직한 성품으로 지냈으며, 그가 꾼 [꿈]을 마음에 품고,
그의 아버지 야곱과 형들에게 거침없이 말했습니다.
 
그런 원인으로, 형들에게 미움을 샀고, 드디어 이집트로 팔려가서, 경호대장의 집에 [종]으로 팔려갑니다.
이럴 때, [요셉]의 마음속에는 얼마나 마음의 상처가 컸을까요?
그러나 [요셉]은 그런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과 함께하심으로“ [보디발]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2-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셨다,“는 말씀이 반복됩니다.
여기서 ”하나님과 함께 하셨다.“는 말씀은 [요셉] 자신에게만 아니라, 
요셉이 하는 일과, 그 집안 전체에,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하는 일은 ”[종]의 신분”입니다. [종]이라는 것은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직분인데, [요셉]은 그가 하는 일에서 정직하게 임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요셉]과 함께 하셨을까요? 
물론 그가 [야곱의 언약]을 받은 상속자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요셉]의 행실이 거룩하고, 순결하게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오늘의 말씀에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것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을 했지만, [요셉]은 단호하게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끊임없이, 끈질기게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에 대하여 “함께 있지도 아니하는 것으로” 대응했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내]가 음모를 꾸밉니다.
어느 날, 요셉이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하려고 집에 들어갔을 때,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고,
보디발의 아내만 있는 상황에서, 음모가 벌어집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모든 종을 밖으로 내보내고, [요셉]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강압적으로 자신에게로 이끌려고 했지만, [요셉]은 이를 뿌리치고 도망하는 것으로 사건은 끝납니다.
 
이 [사건] 이후에, [보디발의 아내]는 유혹이 점점 더 강해지는데, 처음에는 [눈짓]으로부터 시작했고,
날마다 요구가 지나쳐서, 이를 거절하니까, 나중에는 자신과 둘만 있을 수 있는 함정까지 팠던 것입니다.  
 
여기에 [요셉]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재빨리 도망쳤습니다. 당시 [요셉]은 20대 청년이고,
홀로 팔려와 외로운 형편이니까, 성적인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상태입니다. 
 
[외로움]이 인간의 영혼을 잠식할 때, 굉장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또한 [요셉]은 “종의 신분”으로, 당시 왕의 친위대장인 세력을 가진 [보디발의 아내]가 말하는
명령을 거역하기 어려운 신분입니다.
 
이 [사건]을 오늘날로 말하자면, 강압적인 ”위력에 의한 성추행사건“입니다.
이것을 ”거절했다.“는 것은 ”요셉의 위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 한 번의 선택이 아닙니다. 
지속적인 선택과 결단을 통하여,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요셉]은 왜, 이를 거절했을까요? 8- 9절의 말씀에, 
”요셉이 거절하면서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께서는 집 안에 있는 것들에 대해 제게 전혀 간섭하지 않으시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제게 맡기셨습니다. 이 집에서 저보다 큰 사람이 없습니다. 내 주인께서 제게 허락하지 않으신 것이라고는 마님밖에 없는데,
그것은 마님은 주인의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그렇게 악한 짓을 저질러 하나님께 죄를 짓겠습니까?“(창39:8~9), 
이 말씀에 세 가지 이유가 나오는데,
 
①첫째로 주인 보디발에 대한 신의와 충성심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집안일을 믿고, 맡기는 주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이유입니다.
 
[거룩한 삶]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관계 속에서 ”신의를 지키는 일“을 포함합니다.
[거룩한 삶]이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에 대한 성실함을 지키는 것“입니다.
 
②둘째로 하나님 앞에서 “큰 악을 저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악한 짓을 저질러 하나님께 죄를 짓겠습니까? 
[요셉]은 누구보다도 하나님 한 분만을 의식하는 [거룩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면, 홀로 있는 것이 외로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외로움]을 이길 수 있었고, [요셉]은 하나님의 임재 아래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유혹할 때, ”하나님을 미워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③셋째로, [요셉]이 단호하게 유혹을 거절하는 것은 ”자신을 붙잡고 있던 [하나님의 꿈]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기억하고 있는 [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가족에게서 절을 받는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높이 들어서 쓰시는 통로가 된다.”는 꿈이었습니다.
 
그 [꿈]을 ”자신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그 꿈을 잊지 말고, 다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꿈]에 사로잡힌 사람은 타락한 문화에 물들지 않습니다.
그에게 어려운 상황이 다가와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거룩]을 요구하십니다.
▶왜, [거룩]을 요구하실까요? 그것은 [거룩]이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거룩]을 잃어버리면, 성적 타락에 빠질 수 있고, 그 파괴력은 매우 큽니다.
[거룩]을 잃어버리면, 사람과의 [관계]가 파괴되고, 사람이 피폐해 집니다.
 
부정한 관계로 생긴 아이들이 수없이 낙태되므로, 사회가 파괴됩니다.
본인만이 아니라 주변에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또 다른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타락에서 벗어나 길은 “하나님 앞에 나오는 길”밖에 없습니다.
 
[요셉]은 거룩과 순결을 지켰지만, 그로 인해 더 큰 고난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마님을 추행했다.“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감옥에서도 ”[요셉]과 함께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은 “고난 속에서 함께 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거룩]을 지키므로 육신은 감옥에 갇히게 됐지만, 영적으로는 자유를 누리는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만일에, 그가 유혹에 굴복했다면, 그는 영적인 자유를 잃어버리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에 사로잡힌 성도들은 그 유혹의 꿈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한 유혹 가운데서도, “거룩과 순결을 지키라.”고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니까,
우리 모든 성도들은 그런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