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제자리를 찾아가는 신앙 (창35:1~7) 2023.11.26

다이나마이트2 2023. 11. 26. 19:37

제자리를 찾아가는 신앙 (창35:1~7)  말씀: 이재훈 목사님
 
때로는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바로 우리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자리는 “있어야 할 자리”에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곳]이 바로 “우리의 영적 상태를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장소“도 [영적 상태]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창세기에는 네 가지 땅이 나오는데, ①애굽, ②광야, ③가나안, ④바벨론이 있는데, 
 
▶그 곳이 무엇을 의미하는 장소입니까?
그 곳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땅“이고, [영적 상태]를 말해 줍니다.
 
①[애굽]은 우상숭배의 땅이고, 하나님 없이 우상을 섬기는 장소를 말하고,
②[광야]는 불신앙과 방황하는 지역이고, 믿음이 없는 지역을 의미하고,
③[가나안]은 순종으로 들어가는 축복의 땅으로, 영적 축복을 받는 장소이고,
④[바벨론]은 불순종으로 인해 징벌 받는 땅으로, 추방 받는 장소로 의미합니다.
 
[야곱]이 거주했던 지역은 4지역인데, 그의 영적 상태를 보여 주는 장소입니다.
①[브엘세바]는 그가 어려서, 아버지와 함께 자라난 곳으로, [애굽]과 같은 장소입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개인적으로 체험하지 못한, 우상이 되었던 땅입니다.
 
②둘째로, [벧엘]은 그가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도망하다가 하나님을 만난 장소인데,
그 땅에서 그가 하나님을 체험한 ”영적 [가나안]과 같은 땅“입니다.
 
③셋째로, 그가 도망하던 [하란]이라는 지역인데,
그가 합당하지 않은 모습으로 도피해야만 했던 ”영적 [바벨론]과 같은 땅”입니다.
 
④네 번째로 [세겜]이라는 장소인데, 그 땅은 야곱에게 있어서 “[광야]와 같은 땅입니다.
그가 온전히 서 있지 못할 때, 영적으로 방황하던 시기에 머물렀던 장소인데,
[야곱]이 형과 화해한 이후에, 머문 땅으로, [벧엘]에서 약 20km 떨어진 곳으로, 그곳에서 약 10여 년을 살았습니다. 
 
[세겜]에 머문 이유는 여러 가지 조건이 좋았기 때문이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고,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이제 형과도 화해하여 모든 갈등이 해소되고,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없이 살아가던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야곱]의 가정에도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먼저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였고,
이에 대한 복수로 야곱의 아들들이 그 성에 있는 모든 남자들을 다 죽이는 대학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세겜 성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학살을 저질렀으니, 이제는 다가올 복수를 생각하면, 
[야곱]은 심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왜, [야곱]의 가정에 이런 위기가 생겼을까요?
①첫째는/ 변화되지 않은 야곱의 모습에서 그 원인이 있습니다.
[야곱]은 딸이 강간을 당했는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그것은 [세겜]에 머무는 10년 동안,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살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소욕을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 주었는데, 그 이름대로 살기보다는, 
여전히 [야곱]으로, ”그는 옛 영향력을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베델]에서 기도했던 서원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몇 주 전에, 우리가 살펴본 [벧엘]에서 그가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께 약속했던,
”①[베델]에서 단을 쌓고, ②10에 1조를 드리겠다.“고 약속한 서원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형과 화해한 이후에, [벧엘]로 가지 않고, [세겜]으로 가서, 
그곳에서 10여 년 동안 살면서 그가 하나님과 맺었던 서원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셨지만, [야곱]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딸]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고,
[아들]들이 대 학살극을 벌렸을 때도,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살피지 않았던 무심한 아버지였어요.
 
그러니까 [야곱]은 영적으로는 ”광야에 아직 머물고 있었던“ 겁니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가나안 땅] 이지만, 영적으로는 여전히 [광야]에 머물고 있었어요.
 
하나님과의 서약을 지켜야 하는 까닭은 그 [서약]이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로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살다보니까, ”30년 전의 약속“이기레, 그 [서약]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위기에 처한 [야곱]에게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이번에도 [야곱]이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35장 1절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에 머물러라.
그리고 거기에서 네가 네 형 [에서]로부터 도망칠 때, 네게 나타나셨던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창35:1)
 
이것이 위기에 빠진 [야곱의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입니다.
하나님은 ”벧엘로 올라가라.“고 했는데, ”그냥 올라가라”는 말이 아니고, “우상을 버리고, 올라가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제자리로 돌아가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있어야 될 자리로 가라.”는 의미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야곱]은 떨렸을 것인데, [야곱]은 곧 반응하고 순종했습니다. 
2- 3절에, “야곱이 자기 집 사람들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지니고 있는 이방 신상들을 없애버려라. 너희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옷을 갈아입으라.
일어나서 벧엘로 올라가자. 내가 그곳에서 내 고난의 날에 내게 응답하시고,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하셨던 하나님께 제단을 쌓을 것이다.”(창35:2~3)
 
하나님께서는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고 간단하게 말씀하셨지만, 
[야곱]은 그 말씀만 들어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될지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단순히 ”여행을 하라.”는 뜻이 아니고, “그곳에 머무는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모든 권속들에게 지시하여, “이방 신상들을 없애고, 정결하게 옷을 갈아입으라.”고 지시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에게 ”되돌아가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르는 것을 행하라.”고 말씀하지 않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행하라.”고 하십니다.
 
▶언제부터 이게 시작이 됐을까요? 
그것은 자신은 하란에서 [라헬]을 만났을 때, [드라빔]이라는 “가정 수호신 같은 우상이 있다.”는 것을 묵인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배의 자리]로 나오기 싫어하는데, 왜 그럴까요?
겉으로는 “귀찮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냥 묵살하고 넘어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배의 자리]가 싫어서가 아니에요. 참된 예배자로 나아갈 때는 “나 자신이 정결하게 해야 하니까”,
그게 싫은 거예요.
 
▶[우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에게 관심을 가진 모든 것”이 해당합니다.
 
그것은 단지 눈에 보이는 어떤 물질적인 실체만이 아니라, [하나님] 이외에,
나의 절대적인 관심을 가져가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돈]이 될 수도 있고, [일]이 될 수도 있고, [명예]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취미]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살고, 그것에서 목적을 찾으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다른 것들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 집 안에, [우상]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돌이키라.”고 하셨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우상을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시편 115편 8절에, “우상을 만드는 사람들은 우상처럼 될 것이오, 우상을 의지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경배하는 대상을 닮아 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을 닮아가는 존재가 된다.“는 말씀이니,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야곱이 [벧엘]로 돌아와서 제단을 쌓았는데, 여기서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인데, 
[예전]에는 그 장소가 중요했는데, [이제]는 ”그곳에 임하신 하나님“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초기]에는 ”예배당에 나오는 것“이 은혜가 될 수 있지만, 
그러나 신앙생활을 오래 하였으면, [이제]는 ”거기에 머무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예배당에 가는 신앙인”이 아니라, “그 예배당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당에 머무르면 아무 의미가 없고, “그곳에서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야곱]은 [세겜]의 위기를 떨쳐 버리고, 이제는 안정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우상에 끌려가지 않고, 이제는 정결한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만끽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