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깨어지는 가정, 깨지지 않는 언약 (창27:18~29) 2023.11.05

다이나마이트2 2023. 11. 5. 15:28
깨어지는 가정, 깨지지 않는 언약 (창27:18~29)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우리가 살면서 알게 되는 [슬픈 사실]은 “가장 아픈 상처가 가정 속에서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기쁜 소식]은 아무리 아픈 상처일지라도, “예수님 안에서 온전히 치유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삭]의 깨어진 가정의 모습을 보면서, 그 깨어진 가정일지라도, 
“하나님은 그 가정을 위해, 가지고 계신 계획은 포기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결국은/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은 결코 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삭]은 주변 사람들과는 다투지 않고, 믿음을 통해 승리를 경험하였지만, 
가정에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나타나서, 결국에/ [깨어진 가정]이 되고 맙니다. 
 
창세기 15장에서는 형제간의 [장자권]으로, 불행한 거래가 있었고, 
오늘, 창세기 27장에서는 [거짓말]로 ”가족을 서로 속이는 일“이 일어나서 가족 관계가 깨어집니다.
그러나 이렇게 [깨어진 가정]에도 ”하나님의 언약은 깨지지 않고 계속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가정이 깨어질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은 깨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보다 크고,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역사하시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 6번의 가족들 간에 대화가 나오는데, 거기에 공통점은 “모든 대화에 단 두 사람씩만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온 가족이 네 식구인데, “서로 함께 모여, 대화하는 모습”이 한 번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① 1절에서 4절은 [이삭과에서]의 대화이고, ② 5절, 17절은 [리브가와 야곱]의 대화이고, 
③28절, 29절은 [이삭과 야곱]의 대화이고, ④30절, 40절 [이삭과에서]의 대화이고, 
⑤41절, 45절은 [리브가와 야곱]의 대화이고, 또 ⑥46절은 [리브가와 이삭]의 대화입니다. 
 
▶이런 [대화의 구조]가 보여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대화하고, 소통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서로 “공동체의 모습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대화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질 정도로 약해졌을 때, [에서]를 축복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에서]에게 “자신이 즐기는 고기를 만들어 오라.”고 지시하는데, 아내 [리브가]는 그 말을 엿듣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남편으로부터 직접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엿듣게 되었다.“는 것인데,
그리고 나서 서둘러 [야곱]에게 ”염소를 잡아오라.“고 하고, 그 염소로 요리를 만들어, [야곱]에게 가지고 들어가,
마치 [에서]인 것처럼 속이고, 축복을 가로채라.“고 지시합니다. 
 
[야곱]은 ”형은 몸에 털이 많고, 자기는 피부가 매끈하여, 아버지가 만져보면, 금방 탄로 날 것을 두려워하니까,
[리브가]는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밀어 붙입니다. 그리고 양털로 피부를 위장하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 아버지를 속이게 되는데, [이삭]은 의심이 들었지만,
위장한 [야곱]의 속임수에 넘어가고, “아버지의 축복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후에, 뒤늦게 [이삭]은 [야곱]에게 속은 줄 알고 분노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 하는데, 이 계획을 엿들은 [리브가]는 ”[야곱]을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피시킨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나타난 [이삭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삭]은 [에서]만을 불러서, ”내가 이제 언제 죽을 줄 모르니,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오면, 내가 너에게 축복하겠다.“는 말을 혼자에게만 들려줬다는 것입니다.
 
[이삭의 문제]는 4가지인데, 
①첫째는,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에서]만 축복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오경]에, ”공개적으로, 모든 가족이 다 모인 자리에서 축복해 주는 것“이 상식입니다.
 
②둘째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자신이 편애하는 [에서]에 대한 집착으로, 하나님의 뜻은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삭]은 [에서]가 야곱에게 ”장자권을 팔아 넘겼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또한 [리브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들었을 것인데, 그러나 [이삭]은 여전히 [에서]에게 집착했고,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웠다.“는 표현은 ”영적으로도 눈이 어두웠다.“는 말해 주기도 합니다.
 
③셋째로, [이삭]은 죽을 때까지도 ”아들을 조건적으로 사랑했다.”는 것은
죽는 상황에서도 “자기 입맛에 맞는 고기를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 [에서]를 사랑하기보다는, “마지막까지 자기중심적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④넷째로, [이삭]은 인내심 없는 조급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말로는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삭]은 이 사건 이후에, “바로 죽지 않고, 40년을 더 살았다.”는 것은
얼마나 조급한 태도입니까? 이것은 “영적으로 [무지함]”이고, 인내심이 없다는 거예요. 
 
어쨌든 이러한 [영적 분별력]이 없는 [이삭]에 의해서 [에서]만을 축복하려는 것을 [리브가]가 알았기에,
[야곱]으로 하여금 아버지를 속이게 유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리브가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①남편을 거짓으로 속이고, 
②[야곱]으로 하여금 아버지와 형과의 관계를 깨어지게 만든 것이 문제입니다.
 
[리브가]는 남편의 말을 엿들었던 것이 문제이고, [이삭]이 “[에서]만 축복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니까,
남편에게 말하여, 설득하면 되는 것인데, 그러나 [리브가]는 남편을 설득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이 아들로 여기는 [야곱]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 방법대로 속이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이삭의 가정]의 문제는 
서로 간의 대화를 통해, ”서로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방식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는 눈이 어두운 남편을 속이는 비열한 방법을 사용했고, 이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결국에 아픔과 상처를 만들게 됩니다. 
 
▶[아내]는 거짓말을 해서, “복을 받아냈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입니까? 
그것은 [축복의 방향]이 바꾼 것은 맞지만, [속임수]를 사용하신 것은 방법이 아닙니다. 
아내의 속임수는 [죄]이며, 있어서는 안 되는 “부도덕한 일”입니다. 
 
[리브가]는 저주가 있다면, “그 저주를 내가 받겠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아무리 자신이 “저주를 담당하겠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야곱]이 지은 죄의 값은 [야곱] 자신이, 담당해야 하지만, 
▶“꼭 그렇게 하면서,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아야 합니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거기에는 그 당시의 사회에 인식이 문제가 됩니다. 그 당시에는 “[아버지]가 곧 제사장의 역할”을 했고,
“아버지의 축복은 곧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또 그 시대의 배경을 살펴보면, 당시에 “사람들의 말의 힘을 얼마나 굳게 믿었는가?”를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에는 없는 현상입니다. 당시에는 “입으로 선포한 것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까지 굳게 믿었던 시대입니다.
그리고 “한 번 선포한 것은 되돌릴 수 없다.”는 믿음도 있었던 시대입니다. 오늘의 시대와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죠. 
 
오늘날에는 [말]보다 [문서]가 더 힘이 있는 사회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문서]가 아니라, [말]을 믿었던 시대”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이삭]의 무지함, [리브가]의 간교함, [에서]의 망나니 짓, [야곱]의 간교함과 속임수, 
이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벗어난 것입니다. 이들 모두가 다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 깨어진 가정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가정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너희들 하는 모습 보니까, “이제 틀렸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그 후손들에게 계속해서 이어지는 내용”이 나옵니다.
 
27절, 29절의 말씀에, 
“야곱이 이삭에게 가서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삭은 야곱의 옷 냄새를 맡고 나서, 야곱을 축복하며 말했습니다.
‘보아라. 내 아들의 향내는 여호와께서 축복하신 들의 향기로구나.
하나님께서 하늘의 이슬과 땅의 풍요로움, 곧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함을 내게 주실 것이다.
민족들이 너를 섬기고, 나라들이 네게 절할 것이다. 너는 네 형제들의 주인이 될 것이며,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절할 것이다. 너를 저주하는 사람들은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사람들은 복을 받을 것이다.”(창27:27~29)
 
하나님은 [이삭]의 가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어가십니다. 
반면에, [리브가]와 [야곱]의 속임수로 “깨어진 이삭의 가정”은 [죄]를 그 당대에 끊지 않을 때,
더욱 그 죄가 심각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속임수의 원조]를 거슬러서 살펴보면, 
①먼저 [아브라함]이 애굽에 갔을 때,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고, 
②[리브가]는 아들과 더불어, 남편을 완전히 속였었던 상황이 전개되었고,
③[요셉]을 팔아넘기고, ”죽었다.“고 속인 것을 보면, [아브라함]의 작은 거짓말이,
세대를 이어갈수록 더 깊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여러분, ”내가 한 거짓말은 자녀는 두 배로 더 많아질 수 있다.”는 거죠.
내 세대에 한 거짓을 당대에 끊지 않으면, “자녀의 세대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맺으신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십니다.
이제 [이삭과 리브가], [에서와 야곱]은 깨어진 가정이므로,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 했고, 또 [야곱]은 도망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복“을 받은 [야곱]이 ”도망자가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 아니겠습니까?
[야곱]은 장자권을 가로챘지만, 그는 ”장자의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도망갑니다. 
 
[리브가]는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내야만 했고, 깨어진 가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아프고, 상한 가정 속에서도, 여전히 지켜지고 있습니다.
 
[이삭]은 [에서]를 사랑했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으므로, 
각자 서로, 자신이 편애하던 아들을 선택함으로, 그 가정이 깨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사랑하고 편해하는 ”자식만을 사랑했다.”는 것은 “결국 자신만을 사랑”했으므로,
그 결과로 가정이 깨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모든 깨어진 가정을 회복시키려고, 그 아들을 내어주심으로, 
[십자가의 사랑]으로 모든 깨어진 가정을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깨어진 가정]일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은혜를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