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깨어짐의 축복 (창32:22~32) 2023.11.19

다이나마이트2 2023. 11. 19. 21:39

깨어짐의 축복 (창32:22~32)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우리 [말] 가운데,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어떤 문제도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회복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진리]가 아닙니다. 상처가 너무 깊어, 오랜 시간이 흘러도,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는 문제”도 있습니다.

 

[야곱]에게도 그런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형 [에서]와의 관계였습니다.
[야곱]은 형과 아버지를 속인 후에, 형의 위협을 피해서 도망 나온 이후에,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피하고, 거기서 20여 년을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오래 머물지 않으려고 했지만, 너무나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삼촌에게 속으며, 종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니까 [라반]은 “야곱을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는 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에, [야곱]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살펴본 [야곱]은 장막 안에만 머물며, 늘 조용하고 연약하고 섬세한 이미지로 알았지만,

[라반의 집]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매우 강인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오늘의 말씀인 [창세기 32장]에서는 20여 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과정에서 벌어진 이야기인데,

[라반]이 [야곱]을 순순히 내어줄 리 없기에, [야곱]은 몰래 도망치려고 합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축복으로, [야곱]은 번성하였고, 이제 가족과 부유함을 가진 힘 있는 사람이 되었는데, 

삼촌 [라반]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섭리하셔서, 많은 것을 소유한 자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오는 [야곱의 마음]은 기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두렵고 괴로웠는데, 그것은 형 [에서]와의 관계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2장 7- 8절을 보면, [야곱]은 두려운 마음에, 자기와 함께한 사람들과 양떼와 낙타들을 두 무리로 나누는데, 

그것은 만약 [형]이 공격을 하면,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은 [형]이 ”400명의 군사가 온다.“는 소식이기에, 야곱은 대비를 하는데,

①첫 번째 대책은 자신의 가족과 가축들, 소유물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위험을 분산하는 전략을 세우고,

②두 번째 대책으로, [형]을 위해 여러 가축들을 선물로 준비하고,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 보낼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한 선물을 받고 마음이 누그러지면, 또 다른 선물을 보낼 생각인 것입니다.


③또 한편으로, [야곱]은 기도를 했습니다.
[야곱]은 그가 고향을 떠날 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9- 12절에, ”야곱은 기도했습니다. 오, 제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제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제게 ‘네 고향, 네 친척에게로 돌아가라. 그러면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어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풀어주신 그 모든 자비하심과 진실하심을 감히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지팡이 하나만을 갖고, 이 요단강을 건넜지만, 이제는 이렇게 두 무리나 이루었습니다. 

저를 제 형의 손, 곧 [에서] 형의 손에서 구원해 주소서. 그가 와서, 저와 제 처자식들을 공격할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내가 분명히 내게 은혜를 베풀어, 네 자손이 바다의 모래처럼, 

셀 수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32:9-12)


그러니까 [야곱]은 그가 떠날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는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고,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그 약속을 믿는 [믿음]이 분명히 있었기에, 

그가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아주 ”연약한 믿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선물을 준비하고, 도피 계획을 세우는 것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것이기에,

”자기 머릿속에서 나오는 대비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준비하고, 보호하심을 보여주셨어요.
창세기 32장 12절에 보면, [야곱]이 길을 갈 때,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에게 이미 나타났고,

그를 보고 ”하나님의 군대“라고 말하며, 그것을 ”[마하나임]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하나님의 군대]를 미리 보여주셨습니까?

그것은 “내가 너를 이렇게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고, “나는 너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연약한 믿음”으로, [잔머리]를 굴렸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없을 때”는 언제나 이렇게 불필요한 아이디어를 내게 됩니다.


▶[야곱]이 세운 모든 계획의 초점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에서]에게 있습니다.
[에서]의 마음을 풀거나, 혹은 풀리지 않을 경우에, 어떻게 위험을 최소화할 것입니까?

 

여기에 계획이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계획”의 초점은 [야곱]에게 있었습니다.

[야곱]은 “[에서]의 마음을 어떻게 풀 것인가?”에 초점을 두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위협에 두려워하고 있는 [야곱]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24절에, “그리고 [야곱]은 홀로 남아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동틀 때까지 야곱과 씨름을 했습니다.”(창32:24)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야곱]에게 싸움을 걸어온 것입니다.
도전자가 [야곱]이 아니라, 어떤 사람입니다. 

이때는 [야곱]이 가족들과 모든 소유를 얍복강을 건너게 해놓고, 자기는 홀로 남아 지켜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마도 [에서]가 보낸 ”어떤 자객이 아닌가?”라고 의심해 보았지만, 싸움을 하는 가운데, 

자신을 공격해 온 이 사람이 “평범한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때로는 구약의 역사에서 [천사]로도 임재하시지만,

“어떤 신적인 인간의 모습을 가진 분”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야곱]과 싸우는 자로 찾아오셨을까요?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수준에 맞추심으로, 그 대상에 자신을 낮추심으로 찾아오십니다.

 

[야곱]의 전공이 “싸움”입니다. [야곱]은 태중에서, 형과 뱃속에서 싸웠고,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라반]의 집에 와서 삼촌과 싸우는 모습 속에서, 늘 자기의 것을 더 가지려고 하고,

움켜지려는 [야곱의 인생]은 싸움의 인생이었으니가, 하나님이 그래서 [야곱]을 “싸우는 자”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야곱이 가족들과 소유들을 다 얍복강을 건너게 하고, 자신은 왜 홀로 남았습니까?

이것은 홀로 남아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무서운 이기심”이 숨어 있는데, 

그것은 강 건너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자신은 뒤로 도망가려고 대기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오셨을 때, [야곱]이 “저를 축복하지 않으면, 못 갑니다.”라고 대답한 것은

 “자기와 싸우는 이”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으니까, 결코 지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때, 그 [신적인 인간]이 야곱의 엉덩이뼈를 쳐서, 환도 뼈를 쳐서 위골시켰어요.

이 뼈가 어긋나면, 걷기를 제대로 못하게 되는데, 이 순간에, [야곱]의 마음속에는 “무엇인가가 [깨어진 느낌]이 들었어요.

 

▶그 때, 무엇이 깨어졌을까요? 그것은 ”자신의 계획“이 깨어진 것이죠,

그 때, [자신의 계획]이 깨어질 뿐만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이기심]도 깨어졌어요.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싸움을 걸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야곱]의 이기심을 깨뜨리기 위해서, 싸움을 걸었고, 

엉덩이뼈를 위골 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이 때로는 우리의 뼈를 어긋나게 하시는 것은 스스로 자기 꾀를 버리지 못하기에, 우리의 꾀를 깨뜨리시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는 인생으로 바꿔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깨어짐의 축복“입니다.

 

[야곱]은 비록 몸에는 ”상함“을 입었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는 자가 됨으로써,

이 시간부터 육체적 싸움은 [영적인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엉덩이뼈가 유골 되지 않았으면, 그는 [영적 기도]로 변화되지 않았을 거예요.

이것이 ”깨어짐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간절히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는 [기도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와 싸우시고, 우리를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름을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야곱]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인생을 고백하는 말로, ”저는 늘 움켜쥐는 인생을 살았고, 

항상 이름대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십니다. 28절에,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제 내 이름은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네가 하나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고 이겼기 때문이다.“(창32:28)

 

▶여기서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엉덩이뼈가 상해서 비틀거리는 사람에게 ”이겼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깨어진 상태에서 ”네가 이겼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네가 승리했다.“는 의미입니다.

 

종교개혁자 [장 칼뱅]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싸우실 때는 ”왼손으로는 싸움을 걸어오시는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보호하시고 방어해 주신다.“고 재미있는 표현을 했어요.

 

이렇게 [야곱]이 ”깨어짐“으로, 그의 이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패배자]가 됨으로써, [승리자]가 된 것이라.”는 말씀이니,

이 말씀을 다시 표현하면, [깨어짐]으로써, ”[온전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역설]이 어디에서 일어납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우리가 완전히 깨어져 죽음에 이르렀지만,

예수님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으시고, 다시 살아나 [부활]하셨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야곱]이 깨어지고 우리의 옛 사람인 [야곱]이 “완전히 깨어져 죽음”에 넘기고,

[이스라엘]로 다시 태어나는 승리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죽이시는 분이 아니라,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우리를 깨뜨리실 때는 언제나 우리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서입니다.

 

얍복 강 나루터에서 우리의 [야곱]을 깨뜨리시고, 영적 [이스라엘]로 다시 태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깨어짐]이 바로 [축복]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