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지금, 여기에 계신 하나님 (창28:12~22) 2023.11.12

다이나마이트2 2023. 11. 12. 20:08

지금, 여기에 계신 하나님 (창28:12~22)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우리가 살면서 [삶의 위기]를 언제, 체험을 합니까?
다른 말로, ”우리는 하나님을 언제 체험을 하나요?“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①”[평안]할 때가 아니라, [불안]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②”[성공]했을 때가 아니라, [실패]했을 때“라는 말이고, 
③”[기쁜 일]이 아니라, [슬픈 일]을 당했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삶의 위기]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야곱]이 “삶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입니다.
 
그동안 [야곱]은 부모의 장막 아래에, 특히 어머니의 보호 속에, 안락하게 살아왔으나, 
이제는 깊은 밤에, 광야에서, 홀로 외롭게 누워 있는, 애처로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과거에는/ 조상을 통해, 하나님에 관하여 ”말로 들어서 아는 신앙“이었지만, 
이제는/ 직접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나는 ”체험하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야곱]이 그걸 깨달았을 때는 브엘세바를 떠나, 도피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가족들과 이별하고, 혼자서 도망치는 처지가 되어서야, 그때 서야 깨닫게 되는데,
[야곱]이 자기 인생에서 처음으로 겪게 되는 외로움을 느낄 때,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너무나 힘들고 지쳐 있을 때, 우리 인생의 가장 힘든 시간에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야곱]은 어느 날 밤에, 피곤하고 지친 몸으로 차가운 돌 위에서, 돌을 베개로 삼고 잠들게 되었을 때,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야곱]이 깨어 있을 때가 아니라, 자고 있을 때에 찾아오셨을까요?
[야곱]이 깨어 있을 때는 ”자기의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기에“, 분별하지 못했고,
지금은 [야곱]이 속임수로 형과 아버지를 속여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 나서,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했으니까,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심리학자들이 [꿈]은 ”자신의 과거의 일이나, 또 이루지 못한 욕구들이, 또 무의식이 표출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을 알려 주고,
그리고 미래의 일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놀라운 충격적인 일들을 예언하실 때, 꿈을 통해 가르쳐 주십니다.
[예]를 들면, ①애굽의 [바로] 왕에게도 꿈을 통해, ”미래에 일어날 일“을 보여주셨고,
②[요셉]과 [마리아]에게 꿈을 통해 ”메시아의 출생“을 알려주셨습니다.
 
12절의 말씀에, ”그가 꿈에 보니, 사닥다리 하나가 땅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천사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창28:12)
 
여기에 나오는 [사닥다리]는 하늘과 땅 사이에 ”거대한 간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 간격을 이어주는 [사닥다리]가 ”하늘에서부터 내려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장면으로는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우리는 해석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신약에서 ”꿈에 본, 이 장면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해석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51절에는, ”그리고 예수께서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01:51)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기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한다.“고 했으니,
예수님은 [야곱]이 본 이 장면 속에 자신을 대입하셨고, ”예수님이 곧 그 사닥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라는 해석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본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육신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사닥다리가 되시는 분이다.”라는 것을
미리 보여 준 것입니다.
 
[야곱]이 본 사닥다리 위에는 [하나님]이 계셨지만,
[예수님]은 하늘 위에서 사닥다리 맨 위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분이 아니라,
땅으로 내려오셔서 사닥다리의 제일 아래에서 “우리를 초청하시는 분이라.”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하늘 위에서 우리를 “올라오라”고 부르셨다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역사상 수많은 문학 작품이나 수도사들은 “천국에 이르는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오르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구원]은 땅에서 하늘까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한 계단씩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벨탑의 원리]이고, [바벨탑]은 땅에서 시작해 하늘에까지 닿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본 사닥다리]는 땅에서 하늘까지 닿으려는 시도가 아니라,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주신 사닥다리”이며, 예수님께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땅에서, 우리를 초대하신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①번이 아니고, ②번입니다.
①번: 땅에서부터 하늘까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②번: 우리가 만난 이 땅으로 내려오신 “예수님을 사닥다리 제일 밑에서 만나, 그분과 함께 오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바로 이 [사각다리]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구원의 통로]가 되신 예수님과 함께, 
우리는 하늘로 올라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사닥다리 꼭대기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말씀이 13절-15절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 곧 네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다.
네가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들에게 주겠다. 네 자손이 땅의 티끌과 같이 돼서, 동서남북으로 퍼지게 될 것이다.
너와 네 자손을 통해, 이 땅의 모든 족속들이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며,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주겠다. 그리고 너를 이 땅으로 다시 데리고 오겠다.
내가 네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룰 때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창28:13-15)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약속을 동일하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죄를 짓고 도망하는 상황이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추가적으로 “네가 이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는 약속도 추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의 말씀과 함께 [야곱]은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야곱]은 [베델]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는데, [야곱]이 꿈에서 깨어 하나님께 응답하게 된 것이 [예배]입니다.
[야곱]이 꿈에서 깨어, 처음으로 개인적으로,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됩니다.
 
그 자리는 [평안한 집]도 아니고, “어두운 광야”요, “차가운 바위 위”에, “두려움이 엄습한 곳”인데,
그런 자리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야곱]은 형의 위협을 피해서 달아나던 [도망자]인데, 
그가 이제는 “하나님께 향해가는 [예배자]가 된 것입니다.
 
(1) 첫째로/ [야곱]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한 이후에, ”변화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런 체험을 16- 17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야곱이 잠에서 깨어나 말했습니다. ‘참으로 이곳은 여호와께서 계신 곳인데, 내가 몰랐구나.
그리고 그는 두려워하며 말했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며, 이곳이 하늘의 문이구나.“(창28:16-17)
 
[야곱]은 그곳을 ”베델,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고, ”하늘의 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곳은 ”[하늘의 문]이 열린, [하나님의 집]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곳은 ”멋진 성전“이 아니라, ”홀로 있는 외로운 광야“요, ”바위 위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야곱]은 ”돌베개를 베고 잠든 장소“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은 어느 곳에 있으나,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면, 
”그곳이 예배하는 장소”가 되고, [예배자]로 변합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예배당 안에만 계시고, 예배당 밖에는 계시지 않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우리는 [야곱]처럼, 내가 있는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생각으로 지내야 합니다.
내가 일하는 [일터]나, [가정]에서도, [주방]에서도, ”내가 있는 모든 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생각을 가지고,
언제 어느 곳에서도 ”예배자의 모습“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어디로 가든,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거기 계시는 하나님이, ”바로 지금, 여기에 내가 있는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산]에 가 있으면, 하나님은 [산]에 계시고,
우리가 [바다]에 가 있으면, ”하나님은 [바다]에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2) 둘째로/ [야곱]은 하나님께서 “아주 가까이 함께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자려고 할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돌베개를 베고 계신 것입니다.
 
▶[야곱]이 광야를 걸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광야를 함께 걸으셨던 것이죠.
 
▶우리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할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병원에 함께 입원해 계시는 것이죠.
우리가 휴가를 갈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휴가지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야곱의 깨달음]은 무엇입니까?
①첫 번째 깨달음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없다.“는 깨달음이고,
②두 번째 깨달음은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항상 가까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과 거리를 두는 분은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우리“입니다.
하나님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왠지, 교회도 멀리 하고 싶은 거예요.“
 
물론 교회를 다니다 보면, 때로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상처를 입어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장 힘들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라고 물어보니까, 
하나님은 “너가 지금, 혼자 있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너를 업고 있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래서 너가 지금,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것이야.”라고 말씀하십니다.
 
③세 번째 깨달음은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증거]로/ 야곱이 이제 [서원하는 기도]를 자발적으로 합니다.
20절에서 22절의 말씀에, “야곱이 서원하며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약 저와 함께 계셔서, 제가 가는 이 여정에 저를 지키시고, 제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며,
제가 제 아버지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게 해주신다면, 여호와께서 제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리고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모든 것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창28:20-22)
 
[야곱]이 기도한 내용은 단순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보호하시고, 약속하신 대로 돌아오게 하신다면,
자신이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되고, 자신의 소유의 10분의1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내용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 [기도]가 “하나님과 흥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만일]이라는 단어가 없었으면, “얼마나 성숙한 기도였겠습니까?“마는, 
 
전체 문맥으로 보아, ”하나님과 흥정하는 것“이기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의 표현“으로 드려진 기도입니다.
 
[야곱]은 자기가 자던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되게 할 것이며,
제가 받은 은혜 중에서 ”모든 것의 10분의 1을 드리겠다.“는 서원을 합니다. 이것이 [십일조]이고,
고대 사회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 소유의 10분의 1을 드리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믿음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어떤 해석이든지, “하나님께서 야곱의 소원을 받으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내용이 자신이 조건을 만들어 붙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초로 고백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야곱]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재조정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체험]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하나님을 만나 삶의 방향을 하나님 중심으로 다시 조정하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이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①자신이 자고 있던 바로 그곳을, [예배의 장소]로 만들었고, 
②머리에 베었던 [돌]을 가져다가, [성전 기둥]으로 변화시키고,
③그 위에 [기름]을 부어서 [성소]로 만들었습니다.
 
[야곱]은 “모든 것이 내 것이라”는 인생이 아니라, 움켜쥐는 야곱이 아니고, 발꿈치를 잡는 인생이 아니라,
“손을 펴는 자”로서의 체험을 하고 난 이후에,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두려워하던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야곱]은 힘든 여정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야곱]은 ”도망자의 여행“에서 ”순례자의 여행“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 여기에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런 [믿음의 삶]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