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다투지 않고, 승리하는 인생 (창26:17-33) 2023.10.29

다이나마이트2 2023. 10. 29. 22:52

다투지 않고, 승리하는 인생 (창26:17-33)  말씀: 이재훈 목사님
 
[믿음]이란 흔히 일어나는 일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는 능력입니다. 
사람들은 [믿음]을 하찮게 여기지만, 하나님은 [믿음]을 귀하게 사용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매일 생활하면서 ”하나님을 볼 수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가짜]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모습“이 보여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흔히 일어나는 것이 상대방과의 [다툼]입니다.
이렇게 [다툼]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가 문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당연히 다퉈야 될 것을 다툰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과연 거기에도 [하나님의 모습]이 조금은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삭]은 약속의 자녀로 태어나, 아버지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지만, 
[에서와 야곱]을 양육하면서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지키심으로, [이삭]이 부강해졌습니다. 
 
[이삭]이 부유해지자, 주변 사람들의 시기와 견제를 받게 되어,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오늘은 이런 과정 속에서, 오늘은 “기근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삭]에게 “기근이 왔다“고 해서,  기근 속에서 떠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 땅에 머물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머물라“고 하는 곳에 머물고, ”떠나라“고 하는 곳으로 떠날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됨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도 그랬던 것처럼,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본능적으로 남부 지역인 이집트와 가까운 [그랄 지역]으로 내려갔는데,
이곳은 지금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자 지구]의 남쪽입니다. 
 
창세기 26장 2- 3절에,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일러주는 땅에서 살아라.
이 땅에서 계속 살며, 내가 너와 함께 하겠고, 네게 복을 주겠다. 너와 네 자손에게 내가 이 모든 땅을 줄 것이고,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주겠다.“(창26::21~3)
 
[이삭]은 이집트로 내려가는 중에, [그랄]에 머물렀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서 ”내려가지 마라. 
이 땅에 머물러라.“는 음성을 듣게 되었고, ”[이삭]이 순종하여 거기에 머물렀다.“는 겁니다. 
 
①[아브라함]에게는 ”믿음으로 우리를 떠날 것“을 명령하였고, 
②하나님이 [이삭]에게는 ”거기서 그대로 머물러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떠났고, [이삭]은 믿음으로 머물렀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언약]은 ”그 땅, 그 지역, 그 테리토리 영역 안에“ 머무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을 못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 살기 위해서는, [우물]을 파서, 기근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머물라.“고 하는 곳에 머물렀고, ”떠나라.“고 하는 곳으로 떠날 때에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는 원리입니다. 
 
▶여기서 [복]의 출발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환경]이 아니고, [물질]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하나님의 복}이 언제 임할까요?
①그것은 ”하나님이 떠나라.“고 할 때, 떠나고,
②”하나님이 머무르라.“고 할 때, 그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그랄]에 머물라.”고 말씀을 주셨을 때, 이삭이 순종하여 머물렀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모습]입니다.
 
본문을 보면, “이삭이 [그랄]에서 오랫동안 지냈는데, 어느 날 블레셋 왕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떠나줄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시기와 견제를 받은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고약하게도 아브라함의 종들이 팠던 우물을 덮어버리고,
이삭에게 타격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때, 시기하는 무리들이 생겨서, [견제와 공격]을 받은 것이고,
 
또 반대로, 하나님은 “때로 그런 견제와 공격을 허용하심으로”, [시험]을 하시기도 하지만, 
그것은 “백성을 훈련시키시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주변 사람과 [다툼] 없이, 지냈습니다. 
 
[이삭]은 “떠나 달라.”는 블레셋 왕의 요구에 따라,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로 가서, 그곳에 진을 치며 거기서 살았습니다.”(창26:17)
 
19절에,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다가, 신선한 물이 나오는 샘을 발견했다.”는 기록을 보니까,
그곳에 우물을 팠더니, 신선한 [샘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지역 양치기들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다투게 되었고, 
[이삭]은 또 다시 그 물을 내어주고, 다른 곳으로 가서, 또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이렇게 [이삭]은 계속 다투지 않고, 양보하며 새로운 우물을 파는 쪽으로 선택했으니까,
이것이 “이삭에게 나타난 믿음의 장점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유약한 모습“을 가진 [이삭]을 ”겁쟁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온유함]의 성품입니다. 
 
예수님은 억울하게 자신을 끌고 가는 이들에게 [온유함]으로 대하셨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과 같이 아무런 대항을 하지 않고, [온유함]으로 대하셨습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마지막은 [절제]이고, [셀프 컨트롤]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다투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삭]이 다투지 않는 모습에서 [인생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1) 첫째는/ 그들과 다투지 않은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유지하려는 마음“이었을 것이고,
만약에 이삭이 그들과 다투었다면, ”다툼 그 자체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삭이 만일 다투다가 우물을 차지할 수 있었다면,
그 우물에서 마시는 물은 [생수]가 아니라, ”미움과 욕심의 물“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2) 둘째로/ 언제까지 양보해야 합니까? 그것은 [다툼]을 걸어오는 이가 없을 때까지, 양보해야 합니다.
”싸움을 걸어오는 이가 없을 때까지“ 양보해야 합니다.
 
22절의 말씀에, ”이삭이 그곳에서 옮겨, 또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이번에는 아무도 싸움을 걸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 자리를 넓게 하셨으니, 우리가 이 땅에서 번성할 것이다.‘ 하며
그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했습니다.“(창26:22)
 
이 말씀은 ”아무도 싸움을 걸어오지 않는 지경까지“ 양보하고 피하니까, 
그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 이삭의 지경을 넓혀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과연 [다툼]을 피하고, 양보할 수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은 [바보]라고 비난하지만, 이것은 [유약함]이 아니라, “믿음의 강건함”입니다. 
 
(3) 셋째로/ 이렇게 다툼을 피하고 양보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고,
이렇게 [이삭]에게 아무도 싸움을 걸어오지 않을 때까지 양보하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온다.”는 것입니다.
 
24절에, “그날 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해, 네게 복을 주고,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겠다.”(창26:24)
 
여기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네게 복을 주고, 자손이 번성하겠다.”는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이 그에게 생생하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 겁니다. 
 
이렇게 피하고 양보하면,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음성]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이기적인 태도로 가득한 사람은 이런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저의 경우에도, 오래전 있었던 일인데, 97년도 제가 “차세대 사역할 때”가 기억납니다.
교회 저쪽에, 공원이 쌍용건설에서 소유하고 있을 때, “어린이 축제를 연다.”고
공원 전체를 어린이 시설로 변경하여, 어린이 축제를 열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제 생각에는 “아이들 때문에, 어른들이 불편하지만, ”아이들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목표를 정하고,
하목사님이 “잘했다.”고 칭찬해 주셔서, 신이 나서 행사를 벌인 적이 있었죠. 
 
그래서 공원에 값비싼 장비들을 다 빌려다가, 5월 첫 주 행사를 위해서 준비하는데,
문제는 그 값비싼 장비를 빌렸는데, “그냥 방치하고, 다 집에 가면, 분실할 위험”이 있는 거예요.
 
누군가 이것을 밤을 새고 지켜야 하는데, 그때는 경비하는 분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제가 리더 역할이니까,
“다 보내고, 내가 여기서 지키겠다.”고 생각하여, 혼자서 비닐을 뒤집어쓰고, 거기서 하룻밤을 보냈어요.
밤새 이슬 맞으면서 꼬박 밤을 새울 수밖에 없었어요.
 
아침 새벽에, 너무 추워서, 신동아 쇼핑센터에 있는 목욕탕에 간 것이 지금도 생각나는데,
그때에 하나님이 “그래, 너가 잘했다. 내가 너를 기억하고, 너를 잘해 줄게.”라는 음성을 들어서,
지금도 그게 그렇게 위로가 되었어요. 
 
(4) 넷째로/ 이렇게 [이삭]과 같이 마음으로, [믿음의 태도]로 다툼을 피하는 성도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28- 29절의 말씀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그대와 함께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들 사이, 곧 우리와 이삭 사이에, 맹세가 있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그대와 언약을 맺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당신을 건드리지 않고, 항상 잘 대해주고, 평화롭게 보내주었던 것처럼,
당신이 우리를 해치지 않게 말입니다.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창26-28-29)
 
[이삭]을 두 번씩이나 블레셋 왕이 쫓아냈는데, “이삭에게 그랄을 떠나서, 브엘세바까지 내려가서 옮겨 살게 되었는데,
거기서 [이삭]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드렸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냥 하나님이 나타나셨을 때, ”예,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지금은 ”스스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다.‘는 것은 놀라운 변화입니다.
그 곳이 [브엘세바]입니다. 
 
▶여기서 뭔가, 바뀐 것이죠. 
①예전에/ 말씀하셨을 때는, “그냥 반응하는 믿음”이었다면, 
②이제는/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보여주는 것은 [믿음의 성숙]이고, 그 결과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주변의 사람들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 ”우리는 당신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하고, ”우리도 좀 잘 봐주십시오.
우리는 당신과 좋게 지내고 싶습니다.“라고 화해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입니다. 
우리도 ”당신을 보니, 하나님이 보입니다.“라는 말을 듣기를 소망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고, 당신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라는 칭찬을 듣기 원합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최악의 비난은 무엇입니까?”, 당신을 보니,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또는 “당신 보니, 하나님을 믿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말은 듣기 싫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삭]에게 나타난 믿음은 무엇입니까?
①첫째는, [온유함]의 성품이고, 
②둘째는, 다투지 않고, 승리하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삭]은 온유함으로, 다투지 않고 양보하며, 새로운 우물을 찾았듯이,
우리도 서로 간에 [다툼]을 피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 살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