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소중한 것을 잃는 거래 (창25:19~34) 2023.10.23

다이나마이트2 2023. 10. 22. 16:42

소중한 것을 잃는 거래 (창25:19~34)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우리는 인생을 사는 동안에,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 [선택]은 자기에게 소중한 것을 얻으려고 하는 [거래]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비즈니스]처럼, 명확한 [거래]도 있지만, 자신의 삶의 소중한 것을 내어주고,
새로운 제안을 받아들이는 “불투명한 [거래]”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자기의 선택으로, “인생의 삶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또한 [영혼의 관점]으로, 자신의 선택으로 삶이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이 서로 거래를 합니다. 
이들의 [거래]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불행한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에서와 야곱]은 [리브가]의 뱃속에서 쌍둥이로 잉태되어,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의 뱃속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22- 23절에, “그런데 뱃속에서 두 아이가 서로 싸웠습니다.
[리브가]는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라고 말하며, 여호와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두 나라가 네 태 안에 있다. 네 태 안에서부터 두 민족이 갈라질 것이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강하니,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25:22-23)
 
▶이 기록에서 강조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리브가]의 태에서 두 사람이 싸우고 있을 때, 이상하여 하나님께 질문했을 때, 
하나님께서 “①네 태 안에는 두 나라가 있고, ②두 민족으로 갈라설 것이고,
③한 민족이 다른 한 민족보다 강하여,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라는 엄청 난 소리를 듣게 됩니다.
 
[리브가]에게 주신 이 말씀은 당시 사회의 기본적인 질서를 뒤집는 말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형이 동생을 섬긴다.”는 메시지를 들으면, 불편할 수밖에 없지만, 
그 당시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혁명적인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질서를 뒤집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앞으로 일어나는 [에서와 야곱]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기준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시지만, 전통에 따라 일하시는 하나님이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자유롭게 일하시는 분임을 강조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한 어머니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운명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택]에는 “우리 인간의 어떤 행위에도 근거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언약을 통해 주시는 복은 우리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어떤 조건이나 행위에 좌우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주권적인 선택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알려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①이제 이삭과 리브가의 자녀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먼저 보여주셨다.”는 것이고, 
②우리가 어떤 자질이 있어서 택함 받은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보다 더 의로움이 있기 때문에,
내가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개혁자들이 부르짖었던 [오직 은혜]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오직 은혜]라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일 뿐입니다. 
 
그것이 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부르심을 주신 이유“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제 부터의 관점은 ”모든 선택이 [하나님의 계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자녀가 없을 때, 마음을 합하여 기도했고, 그 결과로 자녀를 갖게 되었고, 
두 자녀가 자라면서 어느 순간에, ”서로 대화를 상실하고, 관계가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 벌어지는 [불행한 거래]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①아버지 [이삭]은 ”하나님의 계시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고, 
②어머니 [리브가]는 하나님의 계시는 분명히 알았지만,
”자신의 인간적인 방법으로 남편을 속이고, 자신이 이루려고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왜, 이들은 [불순종]을 했을까요?
①[이삭]은 영적으로 어두웠기 때문에, 불순종한 것이고,
②[리브가]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는 인내가 없었기 때문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이런 [이삭과 리브가]의 모습에서, 자녀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을까요?
그것이 바로 27절, 28절에 나오는데, [에서와 야곱]이 부모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기에, 
”그들이 그런 [부당한 거래]를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27-28절에, “그 아이들이 자라서 [에서]는 능숙한 사냥꾼으로 들판에 나다니는 사람이 됐습니다.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어서 장막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삭]은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에서]를 사랑했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창25:27-28)
 
[에서와 야곱]은 전혀 다른 기질과 성격으로 자랐습니다. 
[에서]는 사냥을 잘하는 외향적인 남성적인 사람이 되었고,
[야곱]은 집 안에 있기를 좋아하는 내성적 인물이며,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에서]를 사랑했고,
어머니 [리브가]는 조용한 내성적인 성격의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아버지]는 두 자녀에게 “거리가 먼 아버지”이고, 
[어머니]는 한 자녀에게 밀착되어 있는 “편애하는 어머니”로 자라난 것입니다. 
 
이렇게 부모의 문제점은 ①[친밀함]을 잃어버리고, ②사랑하는 대화를 잃어버리고,
③두 자녀에 대한 양육의 철학을 상실한 채, 
 
아버지 [이삭]은 그저 고기를 좋아했기에 [에서]를 사랑하고, 
반대로 [리브가]는 소외받는 [야곱]에게 더 집착하고, 더 많은 애정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자라난 형제가 29- 34절에서는 [불행한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형 [에서]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때에 맞추어, [야곱]은 죽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형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면 좋았겠지만, 그 의도는 정반대였습니다. 
이 때의 상황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일종의 “[부비 트랩]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인데, 
 
[부비]라는 것은 “바보”라는 뜻이고, [트랩]이라는 것은 “올가미 덫이라”는 뜻이죠.  
그러니까 “바보들이 걸려드는 덧”으로,
무심코 만지고 무심코 만난 것들 속에 “[폭탄]이 들어 있다.“는 전쟁에 쓰이는 용어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에서]가 걸려들 ”부비트랩을 만들어 놓은 것“이죠. 
[에서]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야곱]은 그걸 이용한 것이죠.
 
31- 33절에, ”[야곱]이 ‘형의 장자 권을 오늘 내게 파십시오,’라고 말하니,
[에서]가 ‘내가 지금 죽을 지경인데, 장작 권이 내게 무슨 소용이냐?’
그러자 [야곱]이 말했습니다. ‘오늘 당장 내게 맹세부터 하십시오.’ [에서]가 맹세를 하고,
야곱]에게 자기 장자 권을 팔았습니다. “(창25:31~33)
 
▶[에서]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①”미래의 자신에게 주어질 수 있는 복“, [= 장자권]을 포기했고, 
②”즉시로 얻어지는 [= 배부름]“을 바꾼 것으로, 자기의 즉각적인 만족을 위한 순간을 위해 살았던 사람입니다. 
 
▶여기서 [성숙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그것은 ”자신의 즐거움을 뒤로 미루는 능력“을 말합니다. 
 
현재의 즐거움을 뒤로 미루고, 현재의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성숙함]인데, 
[에서]는 그러한 ”성숙한 면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에서]가 말한, ”내가 죽을 지경인데, 장작권이 내게 무슨 소용이냐?“라는 말 속에는 
”그가 중독의 수준이다.“는 걸 알 수 있고, [에서]는 먹는 것에, ”중독 증세“를 보입니다. 
 
②이러한 [중독]의 영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떤 대상에 집착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갈망을 충족시키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서]가 중독에 빠진 세속적인 사람이라면, [야곱]은 거룩한 사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야곱]은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는, [인간의 도움]이 결코 필요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돕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하나님의 일]이 아니죠. 
 
더군다나 ①이런 불의한 속임수나, ②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는 방법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데 필요하지 않고,
잘못된 교활한 방법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이 두 형제의 거래에서 [에서]는 어리석음과 무지함으로 고난을 겪지만, 
[야곱]은 그 자신의 교활함으로 인하여 고난을 겪게 됩니다.
 
[야곱]과 같이, 남의 것을 옳지 않은 방법으로 빼앗고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은 [기다림]과 [인내]를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은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는데, 그것은 무엇일까요?
[에서]는 하나님께 주신 “장자의 권리라는 미래의 축복을 잃어버린 것”이고, 
[야곱]은 그 가정의 화목 형제 위에 이것을 잃어버리는 서로 [불행한 거래]를 한 것입니다.
 
우리는 야곱처럼, 자신의 야심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관계를 깨뜨리는 어리석은 거래를 하면, 절대로 안 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삶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고, 그러한 삶에 묵묵히 인내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내가 인간적인 방법을 쓰지 않아도, 또 부정한 세상적인 방법을 쓰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 나에게 나타나게 되고,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그런 방향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과 인내로 기다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