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당신을 붙잡고 있는 꿈이 있는가? (창37:1~11) 2023.12.03

다이나마이트2 2023. 12. 3. 21:13

당신을 붙잡고 있는 꿈이 있는가? (창37:1~11)  이재훈 목사님
 
세계를 움직였던 유명한 연설에는 1963년 8월 28일에,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 꿈이 있는가?”라는 연설입니다.
이 연설은 미국의 워싱턴 DC, 링컨 기념관 앞에서 한 연설입니다. 
 
그 연설에서 말하는 [꿈]은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그 [꿈]은 무슨 꿈입니까?
①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노예들의 후손들과 옛 주인들의 후손들이,
형제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② ”언젠가는 불의의 열기에,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는 저 미시시피 주마저도,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로 변할 것이라.“는 꿈입니다.
 
③ ”내 아이들이 [피부 색깔]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꿈은 자신의 꿈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되고, 미국 사회 전체가 변화되고, 바뀌는 꿈이었습니다.
 
현재 미국의 위기는 [루터 킹] 목사님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 졌고, 그 [꿈]을 계속 이어 나가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꿈]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자.”는 꿈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요셉]은 “하나님의 꿈에 붙잡힌 사람”입니다. 
[요셉]의 생애에서 특이한 점은 “하나님께서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나타나신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아버지 집에서 양을 치는 소년의 때에도, 또 낯선 타지에서 노예로 살 때에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죄수로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나타나시는 계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을 것이지만, 그러나 성경에 남겨진 것이 없으니까, 그것이 아주 특이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삶에는 구약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가장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요셉]은 그의 아버지 [야곱]의 ”이기적인 성품“도 닮지 않고, 잘못을 행하던 [형]들과도 같지 않았던 사람으로,
그가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만나는 [꿈]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신비로운 [꿈]이 그의 인생을 붙잡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쓰임 받게 되었는데,
결국에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꿈]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 혼자, 오늘 밤에, ”이런 꿈을 꾸어야 한다.“고 해서, 그런 [꿈]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 [꿈]은 어떤 의식에서 나타나나요?
①[꿈]은 ”무의식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표출“이거나, 
②[꿈]은 ”과거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잠재력에서 나타난다.”고 해석하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실 때, 나타난다,”고 해석합니다. 
 
어느 날 [요셉]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꿈]이 그의 인생을 붙잡았고, 그 꿈이 너무나 강렬하고 생생해서,
깨어 있는 중에도 그의 삶을 이끌어 갔던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나님의 꿈]을 꾸게 되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양한 채널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그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나의 삶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는가?”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셉]처럼, [하나님의 꿈]에 이끌려 살아가지만, 
어떤 사람들은 [헛된 꿈]에 이끌려서 무너지고 맙니다. 
 
이렇게 상황에 의하여 좌절되는 것은 하나님의 꿈이 아닙니다.
어떤 시련이나 유혹에 무너지는 것도 [하나님의 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꿈]은 요셉의 생애가 보여주듯이, 어떤 시련이 와도 그 시련을 극복하고,
어떤 유혹이 와도 그 유혹을 뛰어넘어서, “오히려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셉]이 17살에 꾼 [꿈]은 무엇입니까?
①첫 번째 꿈은/ 요셉이 묶은 [단]이 일어나 똑바로 서 있는데, [형들의 단]이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인사)을 하는 것이고,
 
②두 번째 꿈은/ 해와 달과 별들이 요셉에게 [절]을 하는데, 가족들을 의미하는 볏단과 해와 달과 별들이 자신에게 절을 하게 되는 꿈인데, 너무나 명확해서 해석이 필요 없는 꿈입니다.
 
이 [꿈]은 하나님께서 “요셉의 인생이 어떤 모습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는 꿈인데,
문제는 [야곱]의 편파적인 사랑으로, [편애]입니다
 
이런 아버지의 [편애]는 잘못된 사랑이고, 위험한 사랑입니다.
[요셉]은 아버지가 늙어서 얻은 아들이기에, 다른 형제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그 증거로 [요셉]에게만 귀한 채색 옷을 지어 입혔으니, 형제들 간에 심각한 불화와 갈등을 만들게 되었고,
또 한편으로, [리브가]의 편애로 [야곱]이 이기적인 성품이 되었다면, 똑같은 결과를 가져온 셈이죠.
 
[요셉]은 ”올곧은 성품“을 가졌고, ”잘못을 잘못으로 분별하였다.“는 것은 분별력이 있고, 또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집니다.
 
[요셉]이 아버지에게 말한 것은 ”형들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형들의 잘못을 돌이키도록 해야 한다.“는 의식에서 고자질을 한 것입니다.
 
[메트 헬리] 목사님도 그렇게 해석했어요. [요셉]이 나쁜 마음으로 고자질한 것이 아니라,
신실한 동생으로서 그렇게 한 것이다. 동생으로서 형들을 훈계할 수 없으므로,
훈계할 권위와 책임 있는 아버지에게 알려서, ”형들을 바로잡도록 그렇게 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하용조 목사님도 정직한 성품 때문에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이 미움을 받더라도 형들이 잘못으로부터 고쳐지도록 바라는 정직함 때문이라”고 동의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자기 형제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한 것은 “자기만 사랑받기 위하려 하는 모습이 아니라,
옳은 것을 지키고, 옳지 않은 것을 거절하려는 ”신실하고, 정직한 성품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의 고한 것이 아니고, 그는 도리어 ”용기 있는 정직함으로“ 아버지에게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형들의 미움“을 받은 셈이죠.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진 꿈“을 세상은 미워하게 됩니다.
 
사단과 악의 세력들은 [하나님의 꿈]을 구덩이 속에 던져버리고 합니다.
세상은 ”구원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에게도 함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에 의해서, 구덩이에 던져지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구덩이에서 구출하여,
이집트로 팔려가는 신세가 됩니다.
 
▶이런 [요셉의 미숙함]은 어디서 발견됩니까? 그가 꿈을 꾸었을 때, 너무나 분명한 [꿈]이기에,
그것을 가족들에게 ”너무 성급하게, 있는 그대로 말한 것“입니다.
 
10절에도,  ”요셉은 형들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도 그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가 그를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무슨 그런 꿈을 꾸었느냐?
그러면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정말 네게 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게 된다는 말이냐?“(창37:10)
 
아버지 [야곱]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으니, [요셉의 형들]도 시기하고, 질투했던 것이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주변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바로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런 [하나님의 꿈]이라면, 때로는 침묵하고, ”오랜 시간 마음속에 담아두어야” 합니다.
 
[요셉]이 [꿈]을 공개적으로 말하기 전에, 기다려야 하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요셉]도 서둘러서 말하므로, 형제들에게 고통을 받게 되었어요.
 
▶오는 날, 미국에서 받고 있는 [위기]는 왜, 생겼을까요?
그것은 “루터 킹 목사가 말한 [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지요.
 
▶오늘, 우리가 붙잡고 있는 [하나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우리끼리, 우리만, 잘 살면 되는 것인가요? 지구촌의 각처에서 가아와 전쟁의 위험 속에 빠져있는데,
우리만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나요?
 
나를 위한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에 합당한 [꿈]을 품어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의 꿈]을 우리가 붙잡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그런 [하나님의 꿈]에 붙잡힌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