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바라보기에 동행하며 닮아갑니다.” 2023.12.21

다이나마이트2 2023. 12. 21. 21:47

“바라보기에 동행하며 닮아갑니다.” (히12:1~2) 김승훈 목사 

1. 이와 같이 우리를 둘러싼 구름같이 많은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합시다.
2.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위해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

    래서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게 되셨습니다. (히브리서  12:1~2, 우리말 성경)

예수를 바라보자 ! 

이것이 위대한 이유는 믿음의 창사자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믿음으로 인하여 온전해지며 하나님과 동행함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는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천사보다 뛰어난 분이시며 옛 언약을 넘어 새로운 언약이 되십니다. 

주님을 바라보라고 히브리서 저자가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로마의 황제를 주라 시인하던 시대에 성도들은 하나님만이 오직 한분 유일한 신이라 하였습니다. 

그로인해 핍박을 받습니다. 
기독교인들의 박해가 본격화 됩니다.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실제로 박해 가운데 살아가는 시기에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때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를 선포하고있는 것입니다. 

강력하게 요청하는 것은 예수를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상황이 어려울 때 과연 우리가 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외쳐야 할 말은 예수님만 바라보겠다는 고백입니다. 

다른 곳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한 곳만 집중하여야 합니다.  
바라보다는 것은 오직 한곳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고 있습니까 ?
1 이와 같이 우리를 둘러싼 구름같이 많은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합시다.
(히브리서  12:1, 우리말 성경)

예수를 바로보는 것은 경주와 같습니다. 경주안에는 싸움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적 전쟁가운데 우리가 벗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짐과 죄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는데 방해되는 것들을 벗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제 자신을 돌아보면서 놀랐습니다.
제 자신이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설교후 나타날 은혜만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 한분입니다. 
나의 시선을 예수님께만 향하여야 합니다, 

인내는 전쟁의 단어입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이 인내입니다. 
이것이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이와 같이 둘러싼 두름같은 많은 증인들이 있으리‘ 라고 성경이 증거하는 것입니다. 

증인들을 소개합니다. 모세등, 수많은 증인들을 말합니다. 

이들이 그렇게 살았기에 우리도 그렇게 살 수있는 것입니다. 

 39 그런데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증거를 받았지만 약속하신 것을 받지 못했습니다.
4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더 나은 것을 예비해 놓으심으로 우리 없이는 그들이 온전해지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39~40, 우리말 성경)

이들이 받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더 나은 것 예비하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시대 우리는 놀라운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여야할 가장 귀한 일은 예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와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은혜의 특권을  누립니다. 

2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위해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게 되셨습니다.
(히브리서  12:2, 우리말 성경)

주님도 기쁨을 바라보며 치욕을 참으셨습니다. 

34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4:34, 우리말 성경)

우리의 구원입니다. 나를 살리는 것이 주님의 기쁨이었기에 주님은 모든 것을 참았습니다. 

쿼바디스 영화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배경은 오늘 본문의 말씀과 동일한 역사적 배경입니다. 
베드로는 성도의 권유이 따라 피신합니다. 
그 때 소년으로 인해 주님을 만나 깨닫고 피하였던 길을 다시 돌이켜 원형경기장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메세지를 선포합니다. 
원형경기장 안에 잡혀있던 성도들과 함께 끌려 나오며 함께 찬양을 합니다. 
사자에 죽임을 당하면서도 찬양을 합니다. 

모든 로마시민들이 돌아간 후에 밤에 원형경기장에서 네로는 그 시체들을 살핍니다. 

그리고 절규합니다. ’죽어가면서도 저들이 웃고 있다니!‘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본 이들은 죽음도 이깁니다. 

스데반도 돌로 맞아 죽어가며 주님을 보며 그의 얼굴은 천사와 같았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생명을 내어주었던 신앙의 선배들의 모습이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세상에 드러냐할 우리의 진정한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상황과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능력이며 세상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것은 은혜입니다. 

큰 바위 얼굴의 소설이 있습니다. 
어니스튼은 그런 큰 바위 얼굴의 사람과 같이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그 바위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그러던 어느날  설교자가 된 그를 동명이인인 시인 어니스튼이 그를 보고 그가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고 외칩니다. 

바라보면 닮습니다, 
그것이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은 예수를 닮는 삶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바라보는 삶은 닮습니다. 
주님을 닮은 작은 예수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세상에 나타내는 주님의 사람으로 서게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