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13일차 “환란에도 절망하지 않습니다.”(고후4:7~12) 이승민 목사
7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지고 있는데 이는 능력의 지극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8 그러므로 우리는 사방으로 환난을 당해도 절망하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9 핍박을 당해도 버림받지 않고 넘어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항상 예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이는 예수의 생명 또한 우리의 죽을 몸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항상 예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는 것은
예수의 생명 또한 우리의 죽을 육체 안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여러분 안에서 역사합니다.
(고린도후서 4:7~12, 우리말 성경)
그리스도와 담대히 동행의 마지막 날입니다.
리카시라는 홍콩의 주인이 있었습니다.
기사에게 선물을 주려고 하니 기사가 재산이 많아서 선물이 필요없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회장과 동행하며 따라 투자함으로 재산을 불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동행이 능력입니다. 동행의 본질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동행은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7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지고 있는데 이는 능력의 지극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7, 우리말 성경)
바울이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능력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주려한 것입니다.
5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 되신 것과 예수 때문에 우리가 여러분의 종 된 것을 전파합니다.
(고린도후서 4:5, 우리말 성경)
예수가 주 되심과 우리가 종된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질그릇과 같은 우리…
우리는 보배를 보여주려면 질그릇이 아니라 귀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질그릇을 사용하십니다. 그릇이 화려하면 보배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질그릇과 같은 우리가 평안함을 누리고 잘 될 때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궁금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8 또한 하나님께서는 잘난 체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29 이는 어떤 육체라도 그분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8~29, 우리말 성경)
우리는 보배를 담고 있는 질그릇꽈 같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질그릇과 같은 내 인생을 바꾸려고 우리는 노력합니다.
학벌등과 같은 것을 사용하여 색칠합니다. 그때 우리는 무엇보다 자신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가가 중요해집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정체는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합니다.
나의 눈부심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것은 있는 모습 그대로의 모습을 통해, 나의 질그릇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남이 지적할 때 네 맞습니다, 부족합니다, 질그릇입니다,
하나님 저같은 사람이 어찌 살 수 있습니까 할 때 회복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할 때 나를 세워주십니다, 이것이 주님과의 동행입니다.
2. 동행하는 것은 잘 당하는 것입니다.
8 그러므로 우리는 사방으로 환난을 당해도 절망하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9 핍박을 당해도 버림받지 않고 넘어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4:8~9, 우리말 성경)
주님과 동행한다고 해서 환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당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허락하심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당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잘 당하십시다.
우리 인생이 어려운 것은 우리 인생에 당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질그릇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환란을 당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짓누르는 상황속에서 절망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때까지 기도하는 예수님…
우리에게 찾아오는 환란은 우리를 짓누르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게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답답함을 당해도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만이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만 플 수 있는 문제입니다.
9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처럼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고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
(이사야 55:9, 우리말 성경)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경험해야만 길을 볼 수 있습니다. 영안이 열리는 것입니다,
핍박을 당해도 버림받지 않습니다.
11 복되도다! 나 때문에 사람들의 모욕과 핍박과 터무니없는 온갖 비난을 받는 너희들은,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들의 상이 크다. 너희들보다 먼저 살았던 예언자들도 그런 핍박을 당했다.
(마태복음 5:11~12, 우리말 성경)
예수님 때문에 받는 핍박은 우리가 잘 가고 있다는 싸인입니다.
오히려 즐거워할 일이라 말씀하십니다.
넘어뜨림을 당해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일어날 것이라 말합니다. 우리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넘어뜨림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가장 놀라운 은혜의 시간입니다.
자신이 질그릇과 같다면 낙심하고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낙심하고 넘어질 때는 우리가 질그릇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할 때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당함을 당해도 그리스도의 평강이 나를 지키시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에서도 기쁨을 누리며 평강을 누립니다.
가장 힘들 때가 하나님께 매달릴 수 있기에 고난이 축복이라는 간증이 나오게 됩니다.
동행은 잘 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능력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은 능력이 우리 삶에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3. 동행은 잘 죽는 것입니다.
10 우리는 항상 예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이는 예수의 생명 또한 우리의 죽을 몸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항상 예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는 것은
예수의 생명 또한 우리의 죽을 육체 안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여러분 안에서 역사합니다.
(고린도후서 4:10~12, 우리말 성경)
잘 죽어야 잘 당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죽어야 예수의 역사가 임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핍박과 고난의 시간을 허락하십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바울도 죽음을 계속 강조합니다.
항상 우리가 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때 예수 생명이 따라 나옵니다.
내가 죽어지는만큼 예수 생명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죽으면 폭포수와 같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삶에 넘칠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 생명이 내 안에서 역사하며 관계가 회복될 것입니다.
아버지와 관계에 대한 청년 간증 사례
죽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사과하는 것입니다.
동행은 보당죽입니다.
잘 보여주고, 잘 당하고, 잘 죽는 것입니다.
'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폭풍속에서 만난 예수님” (막4:35~41) 2023.12.26 (0) | 2023.12.26 |
---|---|
“Why Christmas?” (요일4:7~12) 2023.12.25 (0) | 2023.12.25 |
예수님과 친밀한 동행(눅24:13~17, 24:30~35) 2023.12.22 (0) | 2023.12.23 |
“바라보기에 동행하며 닮아갑니다.” 2023.12.21 (0) | 2023.12.21 |
“나를 따르라”(막1:17) 2023.12.20 (0) | 2023.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