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친밀한 동행(눅24:13~17, 24:30~35) 이기원 목사
13 바로 그날 그들 중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약 60스타디온 남짓 떨어져 있는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14 그들은 일어난 이 모든 일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15 그들이 이야기하며 토론하고 있는데 예수께서 가까이 가서 그들과 함께 걸어가셨습니다.
16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려져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17 그분께서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당신들이 걸어가면서 서로 주고받는 이 말이 무슨 이야기요?”
그들은 슬픈 기색으로 가던 길을 멈추어 섰습니다.
(누가복음 24:13~17, 우리말 성경)
30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상에 기대어 앉아 빵을 들고 감사 기도를 드린 후 떼어 그들에게 나눠 주셨습니다.
31 그제야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곧 예수께서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지셨습니다.
32 그들이 서로 물었습니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 주실 때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았느냐?”
33 그들이 즉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가서 보니 거기에는 열한 제자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34 이들이 말했습니다. “주께서 참으로 살아나셨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35 그러자 그 두 사람도 길에서 있었던 일과 예수께서 빵을 떼어 주실 때 그들이 그분을 알아본 일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누가복음 24:30~35, 우리말 성경)
그리스도와 담대하게 동행함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우리는 담대하게 주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동행한다는 것은 함께 걷는다, 산책한다는 의미입니다.
친한 사람과 걸어가면서 인격적 교제를 하면서 친밀한 괸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동행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동행하면서 점점더 가까워지며 나의 고통을 아뢰고 그분의 생명과 능력이,
그리고 치유와 회복이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부어져 그분과의 아름다운 관계가 형성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의 동행여부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동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엠마오로 가는 제자에 관한 기록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였지만 그 부활을 믿지 못하고 그들은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동행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우리에게 오셔서 동행하십니다.
제자들은 왜 예수님을 보지 못했을까요?
눈 앞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첫번째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은 사실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절망과 슬픔 가운데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누가는 이 감정선을 구체적으로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무덤으로 달려간 마리아들이 근심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제자들은 슬픔 가운데 엠마오로 가고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그들에게 다가가 동행하십니다.
16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려져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17 그분께서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당신들이 걸어가면서 서로 주고받는 이 말이 무슨 이야기요?”
그들은 슬픈 기색으로 가던 길을 멈추어 섰습니다.
(누가복음 24:16~17, 우리말 성경)
믿음이 없던 제자들,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없었던 제자들에게 두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첫번째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들의 영안이 닫혀있었던 것입니다.
영안이 닫혀 있으면 예수님이 나와 함께하시며 나를 인도해 가시는 것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두본째 반응은 슬픔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슬픔이 깊어지면 절망하게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 때문에 예수님이 보이지 않고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이야기가 너무 중요하고 내 고통이 크며 내가 현재 절망 가운데 있을 때
예수님이 없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있어야 할 자리는 예수님과 함께 부활의 감격을 가지고 그 예수님과 함께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증인을 삶을 담대하게 살아야 하는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망 가운데 있을 때 가시가 가득한 고통의 자리로 내려갑니다. 더 깊은 절망 속에 헤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
우리가 어느 곳으로 가야할지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예수님만이 우리의 힘들고 어려운 고통의 감정을 조절해 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삶의 모든 자리에 오셔서 우리를 이해해 주시고 받아주실 수 있는 분이시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 지에 대해 정확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김두완 선생이 쓰신 엠마오로 가는 길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제자 절망과 공포에 잠겨있을 때 주예수 우리들에게 나타나시사 참되신 소망을 보여 주셨네.
이 세상 가는길 엠마오의길 끝없는 슬픔이 앞길을 막으나
주 예수 우리들에게 나타나시사 새소망 주심을 믿사옵니다.
우리의 길은 마치 엠마오로 가는 길과 같습니다.
인생의 고단한 길을 걸어갑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이 반드시 나타나십니다.
절먕과 고통이 끝없는 삶이 밀려 올 때 왜 예수님이 나타날까요?
그 때가 바로 우리가 깨어져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삶이 깨어져 슬픔 가운데 있을 때 비로서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고 간절한 순간 주님을 붙들게 되고
그 때 주님이 나타나시고 우리의 영안이 열려 주님과의 동행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재판을 기다립니다.
누군가는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이 순간 예수님이 그 모든 분들과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두번째 가시가 가득한 자리에서 주님을 만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주님을 만나는가?
말씀과 함께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말씀과 함께 예수님과 동행하여야 합니다.
눅 24:25 ~27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다가가시는데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자 자신이 부활하셨다고 직접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세하게 말씀을 풀어 주셨습니다.
26절 말씀이 가장 중요합니다.
26 그리스도께서 마땅히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누가복음 24:26, 우리말 성경)
우리가 절망과 고통의 시간들을 지나갈 때 예수님이 그 절망과 고통을 대신 받고 죽으셨으며
다시 부활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말씀에 정통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안이 닫혀 있었고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주님의 말씀이 단지 경전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단순히 말씀을 알고 있는 것과 그 말씀이 나에게 부딪혀서 그 말씀을 살아내며
예수님과 그 말씀으로 먹고 마시며 동행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말씀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자 그들이 영적 깨달음을 얻기 시작합니다.
영적 분별력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말씀과 함께 동행해야하는가는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히 4:12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우리의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말씀과 동행해야 하는가?
예수님 그분이 바로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14 그 말씀이 육신이 돼 우리 가운데 계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14, 우리말 성경)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우리가 늘 말씀을 붙잡고 예수님과 동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씀과 동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모든 선한 일을 위해 온전히 준비되게 한다.
(디모데후서 3:16~17, 우리말 성경)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한 일을 위해 , 증인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준비하여야 하 지를 알게 하기 위해 말씀을 주셨고 예수님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도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제자들의 영적눈을 뜨게 합니다.
31 그제야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곧 예수께서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지셨습니다.
32 그들이 서로 물었습니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 주실 때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았느냐?”
(누가복음 24:31~32, 우리말 성경)
30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엠마오에 도착하자 제자들과 함께 머물게 되며 빵을 나누어 줍니다.
30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상에 기대어 앉아 빵을 들고 감사 기도를 드린 후 떼어 그들에게 나눠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24:30, 우리말 성경)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월절 성만찬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서 두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영안이 닫혀 있었고 슬픔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을 풀어 주시고 떡을 나누어 주자 2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첫번째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두번째 반응은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우리 모두가 말씀으로 우리의 영안이 열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체험하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로인해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듣고 감동이된 제자들은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게되면 그 말씀이 생명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지속적으로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게 됩니다.
가슴이 뜨거워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말씀이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3번째는 예수님과 동행하면 예수님을 담대하게 증거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 제자들은 즉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열한 제자가 거기에 다른 사람들과 모여 있었습니다.
예수를 만나 후에 엠마오로 가던 길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은 슬픔의 길이요 절망의 길이고 미래가 없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은 생명의 길, 기쁨의 길 예수님과 동행하는 길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되고
내가 어떤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게되는 것입니다.
두제자가 자신들이 만나 예수님을 증거하며 공동체와 함께 있을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번째 그들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6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록돼 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겪고 3일째 되는 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것이며
47 또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 모든 민족에게 그의 이름으로 죄 용서를 받게 하는 회개가 전파될 것이다.
48 너희는 이 일들의 증인이다.
(누가복음 24:46~48, 우리말 성경)
너희는 이일들의 증인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대한 증인들입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증인이 되어 이 말씀들을 우리에게 전해 준 것입니다.
누가는 안디옥에서 의학을 전공한 의사였습니다.
미래가 보장되는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누가는 예수님을 만난 이 후에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누가는 바울을 따라 다니며 2차 전도여행을 하며 바울의 주치의가 되어
바울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순교하기까지 그 옆에서 지키며
그리고 결국 그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누가처럼 의사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신분이 또 한분 계십니다.
온누리교회 1호 선교사님이신 고 최선수 장로님이십니다.
최장로님이 며칠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최장로님의 소천 소식에 대한 글을 이재훈 목사님이 보내주셨습니다.
그 글에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온누리교회 1호 선교사 최선수 장로님께서 12월 17일 토론토 자택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치과의사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선교의 부르심을 받고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
그 글을 읽으면서 감동이 된 부분이 있습니다.
훌륭한 일을 많이 하셨지만 그 무엇보다도 많은 제자들을 양육하셨다는 것입니다.
제자들 중에는 목회자로, 비영리단체 대표로, 기독교 사업가로 , 학교의 선생님으로 사역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장로님은 온누리교회 선교 역사의 산 증인이시고 온누리교회 선교 비전에 가장 아름답게 헌신하신 선교사님이십니다”
“선교는 나의 축복이었다’라는 자서전적인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선교는 힘들지만 신나고 기쁜 일입니다.“
- 선교는 나에게 축복이었다, 최선수 -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신나고 기쁜일인 것을 믿습니다.
선교사로 우리를 부르시든, 우리를 목회자로, 장로로 혹은 기업의 CEO로, 아니면 가정을 책임지는
또는 자녀들을 양육하는 부모의 자리에 있든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시는 곳,
그곳에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기쁘고 신나는 일인 줄 믿습니다.
이 증인의 사명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습니까?
실수가 많은 우리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제자들에게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9 보라.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므로 너희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능력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
(누가복음 24:49, 우리말 성경)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이 많은 것들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부족한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내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증인의 삶을 감당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도 위로부터 내려오는 이 능력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 능력을 힘입어 오늘도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 신실하신 주 (최용덕 목사)
주님이 우리를 떠나지 않고 우리와 동행하실 것을 믿습니다.
최용덕 목사님이 6년간 뇌종양으로 투병하다가 하나님에게 자신의 딸을 보내 드리고 쓴 고백합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딸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이렇게 곡을 씁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자신을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모든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우리와 동행하시며 한번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인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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