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동행에서 오는 확신” 2023.12.19

다이나마이트2 2023. 12. 19. 10:13

 “동행에서 오는 확신” 정재욱목사 

45 그러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 

곧 네가 모욕한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간다.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겨주실 것이고 나는 너를 쳐서 네 목을 벨 것이다.

오늘 내가 이 블레셋 사람의 시체를 공중의 새들과 땅의 짐승들에게 주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온 세상이 알게 될 것이다.
47 또한 여호와께서는 칼이나 창으로 구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여기 모인 사람들이 다 알게 될 것이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 그분이 너희 모두를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사무엘상  17:45~47, 우리말 성경)

성경은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고백중의 하나입니다. 

이 싸움 이전에 있었던 부분을 구체적으로 돌아보길 원합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 백성을 조롱합니다. 
이스라엘 군대 사기는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 때 전쟁터를 방문한 다윗이 이 말에 반응합니다. 

26 그때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저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씻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 준답니까? 

저 할례도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도대체 누구기에 이렇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것입니까?”
(사무엘상  17:26, 우리말 성경)

다윗이 골리아의 말에 처음으로 반응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가 반응한 이유는 골리앗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무엘 왕에게 자신이 싸우겠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싸우겠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골리앗에게 압도당했지만 다윗은 골리앗을 본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고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싸우겠다고 합니다. 

34 그러나 다윗이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왕의 종인 저는 아버지의 양들을 지켜 왔습니다. 사자나 곰이 나타나 양을 훔쳐 가면
35 뒤쫓아가서 때려 쓰러뜨리고 그 입에서 양을 구해 냈습니다. 그리고 제게 달려들면 털을 움켜잡고 때려 죽였습니다.
36 그렇게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였습니다. 저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도 그 짐승들 가운데 하나처럼 될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사람을 어찌 그냥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입니까?
(사무엘상  17:34~36, 우리말 성경)

다윗은 골리앗을 한번도 골리앗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저 블레셋 사람이라 부릅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골리앗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했던 것에 집중했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골리앗을 다윗은 늘 양을 지키며 만났던 

곰과 사자와 같은 짐승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으로 골리앗과 싸우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실패한 조각상이 있습니다. 26년간 방치되었는데 다른 젊은이에 의해 다시 조각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그 유명한 다비드 상입니다, 그 젊은 작가는 미켈란젤로였습니다. 
완성할 수 있었던 이유가 다비드만 집중하였더니 다윗상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세상의 시선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집중할 때 우리는 순전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38 사울은 다윗에게 자기 군복을 입혔습니다. 갑옷을 입히고 머리에 청동 투구도 씌워 주었습니다.
39 다윗은 그 군복 위에 칼을 차고 시험 삼아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이런 옷들은 익숙하지 않아서 

입고 갈 수가 없습니다” 하고는 그것들을 다 벗어 버렸습니다.
(사무엘상  17:38~39, 우리말 성경)

굳은 의지로 싸움을 원하는 다윗을 사울왕은 투구와 칼을 줍니다. 

그러나 다윗은 익숙하지 않은 그것들을 벗어 버리고 익숙한 지팡이와  물매를 들고 나아갑니다. 
사울의 무기를 들지 않고 목동이었던 자신의 모습으로 지팡이와 물매돌, 자신의 무기를 들고 싸우러 나아갔던 것입니다. 

사울의 무기를 들고 사울처럼 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무기를 들고 자신의 모습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모습으로 자신의 것을 들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십니다. 있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 지에 초점을 두고 일을 하고자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 더 주목하십니다. 
가장 심각한 절망은 자기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되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중에 우리에게 ‘너는 왜 다윗처럼 다윗처럼 되지 않았나’고 묻는 대신에

 ‘너는 왜 너 자신이 되지 못했니’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나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목적대로 지으신 그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과 같이 되어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과 같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과 동행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모두 그렇게 되길 원합니다. 

45 그러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 

곧 네가 모욕한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간다.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겨주실 것이고 나는 너를 쳐서 네 목을 벨 것이다. 

오늘 내가 이 블레셋 사람의 시체를 공중의 새들과 땅의 짐승들에게 주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온 세상이 알게 될 것이다.
47 또한 여호와께서는 칼이나 창으로 구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여기 모인 사람들이 다 알게 될 것이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 그분이 너희 모두를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사무엘상  17:45~47, 우리말 성경)

놀라운 다윗의 고백입니다. 싸우기 전에 거룩한 확신을 가진 것입니다. 승리할 것을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 처럼 다윗은 승리합니다. 그러나 더 멋진 것은 전쟁 전에 이미 다윗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우러 나아가기 때문에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진 것입니다. 

그 다윗의 확신이 궁금합니다. 
이 확신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닐 것입니다. 
어려서 부터 찬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 그 삶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런 확신 가운데 싸우러 나아갈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윗처럼 동행할 때 우리 삶의 구속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과의 동행을 경험할 때 

우리는 확산 가운데 싸움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거룩한 확신 가운데 나아가는 것은 그런 작은 경험과 확신이 쌓여가며 얻게 되는 것입니다. 

힘들었던 어려운 경험도 하나님은 다 사용하셔서 우리를 지어가십니다. 
그 시간들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걸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스토리는 His Stroy가 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과 동행하십니까?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어떤 생각속에 살아 가십니까? 

불안 가운데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손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그 분과 함께 했던 시간을 기억하고 그분이 주는 확신 가운데 

그분과 동행하는 시간이 되기를 건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