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합을 깨드리기에 충분합니다" (눅7:36~50) 말씀: 이재훈 목사
요즘, 우리는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만났던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①이름 없는 가난한 여인도 만나고, ②[가진 자]도 만나면서 ③가지지 못한 자,
그리고 ④사회 지도층과 ⑤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와 같은 사회에서 존경받는 사람들도 만나고,
또 [돈]을 사랑하는 [삭개오]를 만나서 [친구]가 되어 주고, 그의 마음을 녹여서,
자신의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진정한 변화]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고” 사람들을 판단하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을 마음의 중심을 보고, 판단하십니다.
예수님이 사람을 만나서, ①어떤 이익을 얻거나, ②영향력을 행사하거나,
③심지어 그가 왕이 되려고 만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④예수님은 오직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⑤우리를 구원하고, 회복시키려는 목적으로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고” 사람들을 판단하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의 마음에 중심을 보고 판단하십니다.
또 예수님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스스로 변화하도록“ 유도하고, 그렇게 만드십니다.
어제 살펴본 [삭개오]도 사람들에게는 쓰레기 취급을 받는 존재이고, 상종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스스로 돌이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만나서, “옥합을 깨뜨리는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여인]은 이름도 없는 여인이지만, 37-38절에 보면,
”그 마을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었는데, 예수께서 그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는,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적셨습니다.“(눅 07-37-38)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여인]은 동네에서 소문이 날 정도로 평판이 좋지 않은 [죄인]으로, 늘 손가락질을 받으며,
가치 없는 인생으로 살았던 여인인데,
그 여인이 그 마을에서 존경받는 [바리새인의 집]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그것은 여인 자신이 귀하게 여기는 [옥합]을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정성스럽게 깨뜨려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드리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왜, 여인이 이런 행동을 했을까요?
성경에는 구체적인 내용은 기록이 없지만, 우리가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①예수님을 만나서 [죄사함]으로, 복음을 깨닫게 되고,
②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체험을 하고,
③나 “자신의 인생이 아주 소중하다.“는 [가치]를 인식하면서,
④그리스도께서 ”나를 어떻게 대주셨는가?“를 깨달아 알게 됩니다.
이 [여인]은 ”나의 가치가 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옥합]”을 가져와서, 예수님께 깨뜨린 것입니다.
①어떤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가치 없는 인생”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②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소중한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가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소중히 여기고, ”내가 귀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 스스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시듯이,
우리 모두도 “예수님의 가치 있는 행동”을 따라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가치가 하나님께는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무 가치 없는 인생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기에, 그 가치가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여인은 그 당시에, 사람들에게는 무가치하다고 여겨지는 삶을 사는 [죄인]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소중하고 가치 있는 여인”으로 깨닫게 해주었으므로,
그녀는 당당하게 예수님 앞에 나와서, 자신의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부었던 것입니다.
38절에, “예수의 발 곁에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고,
그 발에 자신의 입을 맞추며 향유를 부었습니다.”
▶이런 [여인의 행동]은 좀 무례하게 보이고, 도발적으로 보입니다. 그녀가 머리카락을 풀어서,
예수님의 발을 닦아 준 것은 정숙하지 못한 행동으로 보이지만,
여기서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여인의 행동을 막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을 초대했던 바리새인”도 당연히 놀랐겠지만,
[선지자]라는 분이 “여인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47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네게 말한다. 이 여인은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것은 이 여인이 나를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 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많은 죄를 지었으나, [죄]를 용서받은 감격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이고,
경박해 보이지만, 이 [여인]은 그 “감격의 표현”으로, 이런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왜, 여인이 이런 행동을 했을까요?
①그것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자신이 [가치 있는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②지나간 모든 부정한 과거를 ”예수님이 다 떠안으셨다.’는 것을 알았기에,
③그러니까 “예수님의 위엄과 고귀한 그 가치를 깨달았기에, 그렇게 행동한 것입니다.
[삭개오]도 마찬가지 이죠. 그는 [무가치한 인생]으로 평가받았지만,
”예수님이 그의 집에 머물겠다.“고 말씀하시므로, 그가 받았던 부정적인 평가를 완전히 뒤집고, 새롭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 [여인]도 자발적으로, 하나님 앞에 스스로 나와서 회개하고,
”사랑의 표현으로“ 예수님께 [옥합]을 깨뜨렸던 것입니다.
[사랑]은 그 대상에게 ”가치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①어떤 것들은 ”가치 있기 때문에“ [사랑]을 받지만,
②어떤 것들은 ”사랑받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위대한 자연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에게 [가치]가 있는 것은,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가치 있는 인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대자연]을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배운 [지식]이 많다”고 거만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우리가 “많이 가졌다.”고, [풍요]를 누리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존재”라는 것이 우리의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가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게, 만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초대했던 [바리새인]은 발을 씻을 물도 주지 않고, 그저 관례대로 대했지만,
이 [여인]은 자신이 가진 것 중에서 ”최고의 가치가 있는 것”을 예수님께 내어 줌으로,
[가치 있는 인생]으로 변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사랑하기에, 자신이 “소중한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가치 있는 인생]으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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