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바벨의 꿈을 심판하시다. (창11:1-9) 2023.09.03

다이나마이트2 2023. 9. 3. 22:28

2023년 9월 3일 양재 9시 2부 예배에 한충희 목사님 인사가 있었습니다. 

안양, 평촌, 산본, 안산 지역의 경기A공동체를 잘 섬겨 주시겠다고 인사해 주셨습니다.

지난 2월부터 경기A공동체를 담당해 주셨던 영등포교회로 청빙을 받으셔서 떠나셨다.

바벨의 꿈을 심판하시다. 창11:1-9, 말씀: 이재훈 목사님
 
[역사]는 홍수 심판 이후에도 “인간의 죄가 벗겨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결과가, 창세기 11장에서 “인류 전체의 타락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인간은 홍수 심판 이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한 [사건]을 통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벨탑을 쌓은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셨지만, 인류는 또다시 홍수 심판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창세기 11장 2절에는, “사람들이 동쪽으로 와서, 시날 땅에서 평원을 발견하고,
그곳에 정착해서 살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고, 그 고산지대에는 사람들이 살기 불편하여,
그들은 평지로 내려오게 되는데, 일부만 이동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다 함께 이동한 것입니다.
 
이 지역은 유프라데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넓은 평야 지대로, 과거 에덴동산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이고,
성경에서는 ”시날 평지“로 알려졌고, 여기가 훗날 [바벨론]으로 알려진 지역입니다. 
 
그들은 이 평지에서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아 보자.”고 높은 탑을 쌓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탑]만 쌓은 것이 아니라, 그 [탑]을 중심으로 [도시]를 건설했고, 도시 주변에 [성]을 쌓았습니다.
 
고산지대에는 주로 [나무]를 이용하였지만, 평지에서는 진흙을 이용한 [벽돌]로 건축을 했고,
껏을 이용하여 [탑]을 쌓기로 한 것입니다. 11장 4절에 보면, “자, 우리가 우리를 위해 성을 쌓고,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자. 우리를 위해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이런 [고백] 속에, 세 가지 [죄인의 모습]이 숨어 있습니다.
①첫째로/ 먼저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내 세우고, 드러내려고” 노력을 합니다.
 
이것은 “거룩한 하나 됨”이 아니라, “죄로 인한 잘못된 하나 됨”입니다. 
그들은 “모든 인간들을 하나로 묶는 [죄의 무서운 힘]”이 나타나서,
”우리가 원하니까, 해야 한다.“고 잘못된 이념에 사로 잡혀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에 사로 잡혀서, ”하나님의 [창조론]“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이것은 [죄의 힘]을 빌려서,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간들의 이름을 나타내려는 [죄]의 결과입니다.
가장 최근에, 독일에서 ”[성]을 개인이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법“이 통과 되었어요.
이것은 생물학적인 어떤 수술도 없이도, 자신이 신고만 하면, ”남성이 여성이 되고, 여성이 남성으로 바뀌는 법“입니다.
이것은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독일에서 벌어진 모습입니다.
 
▶유럽에서 ”그런 흐름으로 변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가 원한다.“는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인간이 자신이 원한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나타난 것은, ”[바벨탑]을 쌓았던 이유“와 다를 게 무엇입니까?
 
▶왜, 인간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이름]을 나타내려고 할까요?
그것은 ”자신이 위대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확신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그 자체로 위대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위대함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 ”자신이 위대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②둘째로/ 높은 탑을 쌓는 것은  ”하늘에 닿는 [탑]이라”고 자부심을 갖게 합니다.
 
인간들은 [높은 탑]을 쌓는 일에 몰두하고, “가장 높은 탑을 내가 쌓았다.“고 자랑하고, 
스스로 ”하늘에 닿는 창조주의 영역에 내가 도달했다.“고 자부심을 갖기도 합니다.
 
③셋째로/ 인간은 ”온 지상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결의한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에, 의도적으로 불순종한 것입니다. 
 
▶왜, 그들이 흩어지기를 거부했을까요? 
그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의 약속을 통해, “보호하시고 보존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지만,
그것을 믿지 못했기에 두려워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흩어지기보다 [하나]로 존재하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①고산지대에서 평온으로 내려올 때도 같이 움직이고, 
②흩어지기보다 거대한 [성]을 쌓은 것을 보더라도, 흩어지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 명령을 거부하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드디어 하나님이 반응하셨습니다. 6-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들이 한 민족으로 모두 한 언어로 말하고 있어, 이런 짓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제 그들이 하고자 꾸미는 일이라면, 못할게 없을 것이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에서 그들의 언어를 혼란하게 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그리하여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그곳에서부터 온 땅에 흩어버리셨습니다. 그들은 성 쌓는 것을 그쳤습니다.”(창11:6-8)
 
하나님은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시기 때문에, 내려오셔야만 했을까요? 
아니죠.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며, 떨어지는 참새 한 마리도 다 알고 계시는데, 어떻게 모르시겠습니까? 
 
그러면, ▶”왜, 내려오셨다.“는 표현을 쓰셨을까요? 
그것은 ”인간이 아무리 높은 탑을 쌓아도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야 보실 만큼의 존재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바벨의 꿈]을 제어하고, 중단시키려고 내려오셨습니다. 
그래서 언어를 혼잡하게 하심으로, [바벨의 꿈]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어떤 도전에도 하나님은 위협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흩어지게 하는 방법으로, “한 곳에 탑을 쌓지 말고, 흩어져서 세상을 구원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정확하게 그 뜻을 알 수 없지만,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제는 “성령의 역사로, 하나로 통일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이 온 세상에 빠르게 전파되기 위해서,
성령으로 이제 인류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다시 하나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게 [오순절 성령]사건입니다. 
바벨탑의 심판을 받아 [바벨의 꿈]은 깨어지지만,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 되게 하시는 분으로 ”성령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엔티 바벨의 역사를 이루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은 죄로 말미암아 혼잡과 분열을, ”거룩한 [하나 됨]으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세상은 죄 가운데 바벨탑을 쌓듯이, 끊임없이 이 땅에 진화론, 무신론, 인본주의로, 성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죄, 스스로 창조자가 되려는 죄, 이 모든 것이 [바벨의 꿈]이고, 지금 우리들이 하고 있는 [죄]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의 혁명도 ”하나의 바벨“입니다.  
이런 [바벨의 꿈]은 오직 십자가의 보혈로, 성령의 능력으로만 깨뜨려 져야 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이론과 논리로는 무너뜨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끌려가는 겁니다. 
그래서 진화론, 무신론, 인본주의가 또다시 제2의 바벨탑을 쌓아가는 거예요. 
 
이제는 ①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 되는 것”이냐?
이제는 ②인류가 찾고 있는 [바벨의 꿈]이냐” 가운데에서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바벨의 꿈]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하나됨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세상은 높은 탑을 쌓고, 자신이 스스로 주인이 되려고 하지만, 우리는 성령님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이 시간에, [바벨의 꿈]이 아니고, [성령의 꿈]을 쫓아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