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심판과 구원의 갈림길 (창6:9-22) 2023.08.06

다이나마이트2 2023. 8. 6. 15:12

심판과 구원의 갈림길 (창6:9-22)  말씀: 이재훈 목사님

근래에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폭력과 살인으로, 우리 모두가 큰 충격과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이것은 노아의 시대와 같은 “혼란스런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 6장 4절에 보면, “당시에 그 땅에 [네피림]이라 불리는 족속이 있었는데,”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내피림]의 어원을 살펴보면, “덮치다, 떨어지다.”라는 뜻으로,
“사람들이 타락해 가면서 낳은 자손들을 [네피림]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평화롭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갑자기 덮쳐서, 폭력으로 약탈하고, 그들을 해치는 사람들”이라고 해석합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의 모습과 얼마나 다릅니까?
하나님은 “사람이 만물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셨는데, 
사단의 영향력으로 사회에 폭력과 잔인함으로 얼룩진 세상이 되었으니, 하나님도 “후회할 일”입니다.
 
이것은 “사단의 움직임“이고, 하나님을 떠난 [가인의 후손]들이 타락하여, 폭력이 극치에 달한 현상입니다.
그 반대로/ [셋의 후손]들은 오랫동안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유지하며, [에녹]과 [노아]의 후손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오늘의 본문 6장 5-6절의 말씀에, “여호와께서 [악]이 세상에 가득한 것을 보시고,
여호와께서 땅에 사람을 만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으로 아파하셨습니다.”(창6:5-6)
 
세상이 “타락했다.“는 것은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이고, ”그것을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간의 잘못된 행위에 그치지 않고, 악을 범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받기에 이르렀기에, “하나님이 후회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신 것을, 이제는 “하나님께서 후회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후회하셨을까요? 그것은
①첫째,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하나님은 결코 [거룩]을 포기하지 않는 분인데, 
인간의 죄에 대하여 심판하셔야만 하기 때문에, 후회하시는 것입니다. 
 
②두 번째로, 하나님의 목적은 변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섭리의 영역에서 하나님은 뜻을 바꾸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요나서]에서 니느웨를 멸하시기로 뜻을 정하셨지만, 회개가 일어나고 돌이키자,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습니다. 
 
③셋째로, 하나님의 마음은 인간의 모든 선택과 행위에 의해 영향을 받으시기에, “후회를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선택하기 나름으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마음은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즉시 실행하지 않고, “120년의 시간”을 주셨습니다.
 
오늘의 본문, 6장 3절과 7절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영이 사람 안에 영원히 거하지 않을 것이니, 이는 사람이 그저 육체일 뿐이다.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될 것이다.”
 
”내가 창조한 사람을 땅 위에서 쓸어버릴 것이다. 사람으로부터 짐승과 기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까지 다 그렇게 하겠다.
이는 내가 그들을 만든 것을 후회하기 때문이다.(창6:3-7)
 
여기서 하나님은 “이제 그들의 날이 120년이 될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두 가지 해석을 합니다. 
①하나는/ “인간의 수명이 120년으로 단축될 것이다.“는 해석과 
②또 하나는/ ”심판 때까지, 이제 120년이 남아 있을 것이다.“는 해석입니다. 
 
이 말씀에 여러 가지 만만치 않은 논쟁이 있었지만,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뱅]은
”심판의 유예 기간“으로 해석하고, “이제 120년이 남아 있다.”고 해석하고,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후손을 보존하시기 위해서, “120년의 은혜의 기간”으로, 홍수 심판 이전에 [회개의 시간]을 주셨습니다. 
 
8-9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노아만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노아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노아는 의로운 사람으로 당대 완전한 사람이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창6:8-9)
 
성경에서 처음으로 [은혜]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그것은 7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제 모든 사람과 생물까지 다 쓸어버리시는 심판”을 배경으로,
[은혜]라는 단어가 나온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면, 은혜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세상을 심판하시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긍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핵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심판 속에 베풀어 주시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더 나은 교양 있는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은혜를 베푸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9절에서, “노아는 의로운 사람으로, 당대 완전한 사람이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노아]가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흠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고, 
홍수 심판 이후에 노아가 술에 취해서 하체를 드러내는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완전함과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왜, “그를 의인이라, 완전하다,”고 평가를 했을까요? 
그 [핵심]은 하나님의 심판의 계시를 “믿음으로 받아드렸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말씀대로 순종한 것을 “하나님은 의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것”도 심판의 계시를 받아들임으로,
“그의 삶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시작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노아]가 의인이 된 것,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한 것입니다.
 
6장 17- 18절의 말씀에,
“내가 곧 땅에 홍수를 일으켜 하늘 아래 생기가 있는 모든 육체를 다 멸절시키리니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죽을 것이다.
그러나 너와는 내가 언약을 세우겠다. 너와 내 아들들과 내 아내와 내 며느리들은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창6:17-18)
 
노아 시대에 사람들에게 심판과 구원의 갈림길이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으로 끝내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구원의 길]을 제시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심판 가운데, 구원을 받는 이들은 누구입니까? 
[에녹]과 [노아]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약속으로 믿고 따르는 자, 하나님의 경고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의로운 자”라 인정을 받는 것이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때부터 [120년]이 남아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주를 지어야 했고,
또 그럴 때에 방주 안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그 계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들어간 자는 “8명이었다.”는 겁니다. 
 
▶왜, [물]의 심판일까요? 
[물]은 그 속에 잠기게 되면 죽지만, 반대로 [물]은 떠오르게 하는 힘이 있어요.
물에 잠기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반대로 떠오르게 하는 것은 곧 [생명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홍수]는 세상을 싹 쓸어버리는 죽음을 의미하지만, 방주 안에 들어 간 8명은 [물의 부력]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이제 [물]은 여러분을 “구원하는 표시”로 [세례]입니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해 응답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 시대에 하나님은 다시 [물]로 심판하지 아니하지만, ”이제는 [불]로 심판하신다.“고 했어요.
점점 뜨거워지는 이 세상을 보면서, [불의 심판]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뜨거움으로 인하여, 전 세계에 [산불]들이 일어나고, 인간이 발전시키는 모든 과학 기술이 [에러]가 발생하고,
”잘못된 [악의 해커]들이 핵무기를 해킹하여 폭발하는 위기가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오늘 이 시대는 언젠가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끝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한 영혼이라도 더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일”에 쓰임받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