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우리 안에 있는 가인 (창4:1~15) 2023.07.23

다이나마이트2 2023. 7. 23. 18:59

우리 안에 있는 가인 (창4:1~15)   말씀: 이재훈 목사님
 
인간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과 대항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사탄의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사탄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사탄과 인간 사이에 개입하셨고,
구원의 약속을 주셨고, 장차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구원의 약속을 회복 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죽지 않고, “이후 930년이라”는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우리 나이에 비하여, [약 9배]를 살았지요.
영원한 생명으로 살 수 있었던 이들에게는 [천 년]이라는 시간도, 사실은 “한 순간과도 같은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백년]이라는 세월도, “백세 시대의 삶“도 얼마나 짧은 인생입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런 죽음의 집행을 [930년간] 연기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아담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만일에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바로 그날“에, [육체적인 죽음]을 가졌다면, ”그날“에 세계의 역사는 끝났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쫓겨난 이후에, 하나님의 은혜로 바로 즉시 죽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그들은 바로 즉시 죽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죽음]을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는 물리적 죽음으로만 생각하면, 바로 죽지 않았지만,
더 근본적이고 그러한 육체적 죽음을 가져오게 한 더 근원적인 죽음은 ”바로 즉시로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하나로 묶어놓으신 것을 분리시키고 해체되는 죽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연합시켜 놓으신 것을 떼어놓는 죽음입니다. 
 
▶[죽음]은 무엇입니까? 
[죽음]은 하나님이 연합시켜 놓은 것을 떼어 놓는 것입니다.
 
그 [관계]를 살펴보면, ①하나님과의 관계, ②자기 자신과의 관계, ③다른 사람과의 관계,
④자연과의 관계 등 하나님께서 하나로 묶어 놓으신 모든 관계를 해체시키고, 분리시키는 것이니까,
[죽음]은 ”육체와 영혼을 분리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죽음]이 왜 찾아왔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는 것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그런 죽음만이 죽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죽음]은,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어야 되는 인간이 하나님과 분리된 죽음”을 말합니다.
 
[죽음]을 더 자세히 분석을 하면, 
①자기 자신 안에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고, 
②그리고 믿어야 하는 부부 관계와 가정이 깨지고, 
③우리의 공동체와 사회의 해체가 일어나는 죽음이고, 
④더 나아가 자연과의 [하나 됨]이 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죄]에 심각성과 그 영향력”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하여, 
[930년]이라는 세월을 연장하는 [긴급조치]를 내리신 것이죠. 
 
그래서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최초의 살인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죽음이, 보다 근본적인 “죽음의 영향력이 어떤 것인가?”를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은 바로 그 최초의 살인 사건을 보여주십니다.
충격적인 살인 사건으로, [형]이 [동생]을 죽이는 사건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매우 비슷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낯설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런 폭력적인 살인사건이 
①우리 안에 있는 [가인의 모습]이고, 
②그리고 요즘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차별 살인에 이르기까지,
③마약을 통한 인간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그런 살인으로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가인]의 이야기는 과거의 설화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이야기이고, 
“우리 안에 있는 [가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는 두 가지인데,
①첫째로/ ”가족 간의 살인이라“는 것입니다. 
②둘째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관련하여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제단 직후에, 일어난 것이죠. 
비록 [타락한 인간들]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서 [타락]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전혀 예배드리지 않는 인간이 된 것이 아니라, 
겉으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자신을 예배하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될 수 없는 어떤 것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서 5절의 말씀에, ”세월이 흐른 후 가인은 땅에서 난 것을 여호와께 제물로 가져오고,
아벨은 자기 양떼의 첫 새끼들과 양떼의 기름을 제물로 가져왔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인정하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몹시 화가 나서 고개를 떨구었습니다.“(창4:3~5)
 
여기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인정하셨고, [가인]의 제물은 인정하지 않으셨고,
그래서 [가인]은 몹시 화가 나서, 분노하며, 고개를 숙였다.”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을까요?
많은 해석들이 있는데, “제물의 종류가 문제”라고 하는 이들이 있고, “믿음의 문제”라고 해석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성경 전체의 흐름을 통해서 볼 때, 이것은 “제물의 종류의 문제”가 아니라,
이 두 사람의 “마음의 태도의 문제였다. ”는 것이 더 올바른 해석입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에 보면, 분명히 말씀한 것은 “[믿음의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고,
이로써 그는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에 대해,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믿음으로 여전히 말하고 있습니다.”(히11:4)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지만, [가인]에게는 그 믿음이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확실히 [믿음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아벨]은 ”기름을 드렸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기름]이 아니고, 
”최상의 좋은 제품을 드렸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아벨]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지만, [가인]은 명목상의 신앙인으로 할 수 없으니까,
자신의 것의 일부를 믿음도 없이, ”형식적으로 드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냐? 그렇지 않으셨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나의 태도가 올바른가?“를 돌아보고, 고치는 것이 옳은 태도입니다.
 
여기서 [가인의 분노]는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표시입니다. 
자신이 옳고,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인]이 이런 상태의 인간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의 [이름]에서 그 힌트가 있어요. [가인의 이름]에서 “자녀를 낳았다.”는 표현보다,
“그냥 얻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부모의 생각에, “내가 소유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자녀를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소유 의식”입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삶에 [가인]은 <스타>였고, [아벨]은 <엑스트라>였어요. 
[가인]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고, [아벨]은 “존재감이 없었다.”는 거예요. 
 
이렇게 부모의 “잘못된 소유 의식”으로, [가인]은 자신의 생각대로, “모든 세상이 움직여야 된다.“고 생각이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인]을 사랑하셔서, 버리지 않으셨고, 또 회개하도록 기회를 주신 겁니다. 
 
오늘 6-7절의 말씀에, ”그러자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화가 났느냐? 왜, 고개를 떨구었느냐?
만약 네가 옳다면, 어째서 얼굴을 들지 못하느냐? 그러나 네가 옳지 않다면, 죄가 문 앞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죄가 너를 지배하려 하니,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창4:6~7)
 
하나님은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경고하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셨는데, 
이렇게 구체적으로 경고하셨지만, [가인]은 돌이키지 않았고, 그 결과로, 분노를 품고,
결국에 그는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후에, [가인]은 [두려움]에 쌓여, 살게 됩니다.
▶[가인]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가인]은 ”누군가를 해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현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뭡니까? 
그것은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런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가인]이 겪고 있는 두려움과 같은 염려가 동일하게 존재하고, 그런 두려움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어떤 통계조사에 의하면, [80%의 사람들]이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은 일, 있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일어날 걱정을 한 것은 ”10%도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가인]의 두려움과 염려“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며,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확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가인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최근에 모든 종류의 폭력과 살인, 질투와 시기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 안에 있는 [가인의 모습]입니다.
그런 모습에서 탈피하고, 예수님 안에서 사시기 바랍니다.
 
▶왜, 예수님이 오셨습니까?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가인의 모습]을 “믿음으로 쫓아내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우리 안에 있는 [가인의 모습]”을 내 쫓고,
성스런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