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A공동체

윤길중 목사 특강 1 (2023.02.25)

다이나마이트2 2023. 2. 26. 19:44

격하게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경기A공동체입니다. 조직력도 참 탄탄하신 것 같고요. 왜 교회에 소문이 잘 났는지 알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원래 순장 교육을 4주간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영혼을 돌보는 목회자, 영혼을 돌보는 순장이라는 주제로 이렇게 잡혔습니다. 오늘 전체가 1강을 함께 공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40분 정도 됩니다. 함께 이 시간에 1을 중심으로 해서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누가 한 5분 전에 이렇게 손 좀 흔들어주시면 이제 제가 끝낼 때가 됐구나 이렇게 알겠습니다. 제가 마이크를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가기 때문에 중간에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돌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오늘 나눌 예정입니다.

하나의 질문을 드릴께요. 공동체, 교회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뭡니까? 편하게 그냥 제일 중요한 것이 약간 틀려도 상관없으니까 예, 중요한 거라고 했는데 사실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제일 중요한 분이 계시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담당 목사 새롭게 왔다고 이렇게 격하게 환영을 해 주시는데 담당 목사가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을 드러내지 못하면 좋은 건 아니죠. 그렇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제일 중요하시죠. 하나님. 그러니까 모든 리더는 우리 교회에서는 독특하게 리더십이라고 이렇게 불리는 리더, 리더가 행하는 능력까지 해서 리더십이라고 하는데, 리더들이 하나님의 통로가 되어서 인격적 필요를 채워주는 일 하는 거죠. 그래서 리더가 된다는 것 자체가 돌봄인데 돌봄을 영어로 Care라고 하지요. Care를 통해Cure 치료가 일어납니다. 돌봄은 목회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원래 목회자의 어원이 Curator라는 단어를 썼대요. 큐레이터 그러니까 미술관 큐레이터 기획 전시하는 사람이 큐레이터인데 원래 이 큐레이터가 치료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치유의 통로가 됐는데 돌봄을 통해서치유의 역사들이 일어나는 거죠. 그래서 돌봄은 여러 가지로 많이 있겠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식사를 통해서 할 수도 있고, 상담을 통해서도 할 수 있고, 기도를 통해서도 할 수 있고 그러나 궁극적으로 치유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리더는 이 중간에서 통로로 하나님이 쓰시는데 어떤 리더를 쓰시냐면 하나님이 능력 있는 리더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른 정말 영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을 행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제가 가정사역본부도 함께 섬기고 있는데 부천 온누리교회에 있을 때는 가정에서 부부들의 상담을 참 많이 해 왔습니다. 위기에 처해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경기A공동체에서도 순에서 부부 상담이 필요한 분 있으면 제가 한번 만나고 전문 상담이 필요한 분 있으면 이렇게 소개를 양재 상담센터나 더 전문적인 필요가 있는 그런 분들에게 좀 연결을 좀 해드려서 가정이 많이 좀 회복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처음 가정 상담을 할 때 처음에는 어떻게든 가정을 살려야 된다는 일념으로 상담을 막 3시간 4시간 붙들고 한 적도 있는데 한 번은 상담이 잘 안 돼서 실패를 한 거죠. 그러니까 내 뜻대로 잘 안 되고 너무 오랫동안 상담하면서 소진되고 그러니까 허리가 너무 아픈 거예요. 허리가.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픈 그런 통증도 느끼고 그런 적이 있는데 일 년 후에 그 가정이 되게 회복되어 가지고 정말 손 잡고 이렇게 나타난 걸 보니까 너무 놀라운 거죠. 5년 동안 아무 해도 집에서 하지 않았어요. 순 모임은 어떻게 나오느냐? 장로님이나 다락방장님들 그 집에 심방 갈 때 제가 목사 심방 갈 때만 따라오세요. 남편이 갔다가 아내가 교차로 식사는 어떻게 하냐? 식사는 교대로. 말은 어떻게 하냐? 자녀를 통해서. 이렇게 하던 부부가 하나님 은혜로 갑자기 회복된 걸 경험해서 어떤 걸 또 느끼냐면 리더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중요하구나 하나님이 역사해 주셔야 하는구나를 느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 영적이라고 그러죠? 영적 이라는 단어가 앞에 붙잖아요. 영적이라는 거는 항상 하나님께 주목하는 리더들이죠. 이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제 일하신다 그러니까 돌봄도 사실은 하나님보다 앞서가면 안 되고 또 하나님보다 뒤 쳐지면 안 되겠죠. 하나님 없이 내가 어떻게 한번 해봐야겠다. 저 처럼 하면 자기 몸이 아프든지 아니면 과잉 간섭이 될 수가 있지요. 또 물리력이나 어떤 힘을 지배하는 그런 능력으로도 또 발휘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그래야죠? 그래서  46 10에 보면 혹시 떠오르는 구절 있으세요.

“너희는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46:10) 이 말씀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그러니까 주도권에 대한 문제인데 주도권을 하나님이 갖고 가시도록 해야 된다. 이것이 너무나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가정도 부부끼리도 주도권을 누가 갖느냐? 이걸로 갈등을 다툼을 하게 되는데 이 가정의 주도권도 누가 가지셔야 됩니까? 하나님이 가지셔야 되고 자녀에 대한 주도권도 누가 가지셔야 되죠? 예 부모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제 일하시도록 그렇게 하시는 그것이 영적인 리더십입니다.

이걸 전제로 해서 우리는 이제 성도님들을 결국에 그래서 이 목사할 때 이 (칠목)자도 이게 왜냐하면 돌보는 거예요. 돌봄, 돌봄 그래서 돌보는 권사님들도 스승 사 자를 써요. 집사님은 일사 자를 쓰는데 권사님들은 스승 사 자를 써요. 헌법에는 논란이 많아 가지고 선비사와 스승사를 혼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권면하는 스승과 같은 역할을 하는 분들이 권사님들 이세요. 이미 아셨죠? 처음. 들으세요. 권사 그래서 안 들으셨어요? 오늘 그 스승 사자를 써요. 권사님. 죄송하지만 집사님들은 스승 사자가 아니라 일 사자를 씁니다. 여기서 약간 레벨의 차이가 난다고 그러지 마시고 하는 역할이 그런 권면하는 역할 그러니까 그렇습니다. 근데 이미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이 뜻 음성을 가지고 내가 움직이면은 순종이지만 하나님이 없이 내가 뭔가를 하려고 할 때는 간섭이나 통제도 될 수가 있다는 것이죠. 그것이 이제 좀 다른 그러니까 아내가 남편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고민하면 그게 주님의 통로가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을 빼고 내 뜻대로 내 생각을 이렇게 얘기할 때는 잘못하면 어떻게 되죠? 이게 바로 잔소리가 될 수가 있는 건데 하나님이 빠지면 항상 그 영혼에 괴로움을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함께하는 돌봄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있어요.

그래서 영성에서는 동기가 거의 전부라고 얘기를 합니다. 동기가 뭐냐? 동기는 뭐예요. 그 영혼이 그 영혼을 이롭게 하는 거죠. 그 동기 근데 좋은 나쁜 동기 좋은 행실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어요맛있는 거 사주고 그보다 더 몇십 배의 어떤 이익을 위해서 그런 동기들이 동기를 살피는 것이 중요한 거고요. 내 말 잘 들어 그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인생에 펼쳐서 인격적 필요를 채우도록 하는 동기가 중요한 거죠. 그런 의미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잔소리하는 동기는 뭘까요?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죠 맞아요. 그러니까 그 동기가 잘잘못을 따지는가? 한번 살펴보시라는 이야기입니다. 한 번 더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지? 정말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거는 꼭 고쳤으면 하는 건지? 동기를 한번 살펴보는 것이 기독교 영성에서는 거의 전부가 되겠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세상에서는 세상 리더십은 성취 결과가 중요해요. 한마디로 성공이 중요한데 하나님의 관점, 영성의 관점에서는 사실 성공과 실패는 현상적으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느냐? 안 되느냐? 그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느냐? 안 이루어지느냐?가 더 중요한 거죠. 만약에 현상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제일 실패하셨죠. 나무 십자가 지시고 돌아 가셔버렸죠. 사도 바울은요? 당대 석학이고, 어떻게 보면은 대제사장 후보군에 오를 수 있는 그런 인물인데 그도 전설에 의하면 참수를 당했다고 돼 있고, 주로 로마 감옥에서 옥중 서신을 쓰면서 일생을 보내죠.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산헤들린 공의회 의원이었을 때, 딱 눈빛 한번 주면 겁 먹던 병사들한테 나중에는 맞잖아요. 이렇게 보면은 사도 바울은 완전히 실패.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보면은요? 이게 중요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잘 분별을 해야 되겠죠. 우리도 잘못하면 하나님 없으면 전부 다 이쪽 성공의 기준일 수가 있습니다. 그거를 기복이라고 그러죠. 기복. 그런데 영적으로 보면 중요한 거는 이 사람이 고난과 고해와 어려움을 통해서 계속 영적으로 성장한다 그러면 지금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지금 보는 겁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리더십, 영적인 돌봄은 이런 관점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그러면 건강하다는 것이 정서적으로 건강한 순장이 제1강의 주제인데 결국 정서적으로 건강한 순을 만들려고 돌보고 상담도 하고 친밀한 관계도 맺고 이런 건데요. 건강함의 정의가 뭘까요? 건강함 이게 정답은 없어요건강한 게 이제 이럴 때는 누가 좀 틀려주셔야 합니다. 이 건강한 게 그럼 거꾸로 질문할게요. 자 오늘은 여자 권사님, 집사님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우리 남편 진짜 건강하다. 손 좀 들어주세요. 한 분 들었습니다. 그러면 본인이 난 좀 건강한 편이다 하시는 분 손 들어서 영적으로 건강하다. 건강함의 정의가 뭐냐? 그럼 우리는 다 건강하냐? 그럼 육체적으로도 건강하냐? 이런 정의를 한번 생각해 보면 사실은 이 교재를 만든 분도 잘 모르더라고요. 전화해서 물어보니...하하하

우리가 건강하다라는 거를 생각하면 하나님의 형상 이 상태가 가장 건강한 상태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의 그 모습이 가장 건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은 일반 보편적인 상식선에서 하는 반응은 이 건강하다 말을 걸었는데 건강한 사람은 답변을 하겠고 건강하지 않으면은 얘를 칭찬하면은 바로 화내겠고 이러면 안 건강하다 이렇게 생각을 하겠죠. 만나서 두 시간인데 혼자 두 시간을 혼자 말해요. 건강해요? 안 건강해요? 육적으로는 건강하죠. 2시간을 그냥 일방적으로 말을 하니. 영적으로 정서적으로는 일방적으로 이런 왜곡 현상이 건강하지 않은 거죠? 여러분 머릿속에 건강함을 들으면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건강하지 않다고 느끼는 거는 이 건강함의 기준이 내면적이에요. 내적입니다. 그니까 신앙생활은 결국 내면적 이 내면적인 것이 어디로 가냐면 관계적인 것으로 갑니다. 그러니까 제가 변화를 얘기할 때 결국 예수 믿고 예수님처럼 변화되는 게 목적인데 영어 잘하시는 분들 계시죠? 영어로 Change라는 것과 Transformation이라는 단어가 있지요? 두 단어가 어떻게 뜻이 다르신지 아시분 말씀해 주세요. 예 훌륭하십니다. 예 또 질문 또 하나 더 할게요. 하나 좀 더 약간 보완해서 체인지는 이 옷을 벗는 것도 체인지라고 할 수 있어요. 근데 속 사람이 변하는 거는 트랜스포메이션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여자 집사님들 우리 남편 결혼을 위해 완전히 변했다. 손 한번 번쩍 들어보시지요. 진짜 좋은 모습을 보이신 거지요. 잠깐만 들어주셔야 되는데... 그러면 나와 결혼하고 나서 오래 살아왔고 예수 잘 믿어도 변한 게 없다. 하나도 안 변했다? 이게 왜 중요한 질문이냐?면 의외로 설교하는 목회자도 성도가 안 변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니까 그 안 변한다라는 것이 뭐가 있냐면? 체인지 정도 그러니까 약간 태도만 바뀌고 약간 기분만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정도만 봤던 거예요. 프로그램 들어가면은 좋은 모습으로 변했다가 다시 옛날로 돌아 갔다면 이 정도인데 속사람이 변한 내적인 변화가 없으면은 진짜 변했다고 느껴지지 않죠. 그러니까 우리는 평생을 살아도 안 변한다고 생각하면서 은연 중에 그걸 무의식적으로 생각을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교회 내에서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남편 아내 많이 변했죠. 남편부터 그래서 우리 아내 진짜 많이 변했다. 손 들어봐 주세요. 좋은 쪽이죠? 더 세졌다. 우리 아내가 정말 영성도 충만해지고 아는 것도 많아지고 논리도 생기고 아주 더 아주 디테일하게 잔소리 하신다. 그냥 아주 그냥 예수님, 하나님 붙이니까 피할 데가 없어요. 근데 기분은 나빠 이상하게 그런 거죠? 그러니까 변화를 할 때 체인지가 아니라 트랜스포메이션을 해야 되는데, 정서적으로 건강한 순장님은 결국은 내면이 점점 예수님을 갈망하는 과정 가운데 계속 그 여정을 걸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어떤 얘기했습니까? 겉 사람은 날로 날로 후패해지지만 속 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으면 속 사람이 변하면 트랜스포메이션하면 어떤 은혜가 있냐면? 행복해요. 그리고 만족감이 늘어납니다. 이거는 외적인 것으로부터 오지 않아요. 여러분 좀 더 큰 집으로 이사하신 경험이 있으시죠? 그럴 때 어떠세요. 며칠 안 가죠? 여행 간 날 호텔에 딱 들어갔는데 풍경도 너무 좋아요. 그 다음이 어때요? 집으로 돌아가고 싶죠? 저는 큰 마음 먹고 진짜 미국에서 복귀할 때 나이야가라 폭포가 떨어지는 그 호텔에서 1박을 했습니다. 폭포가 보아는 쪽은 비싸요. 1박은 거기하고 나머지는 저 외곽으로 잡아서 지냈는데 하루 창문을 열면은 그냥 나아야가라 폭포수가 콸콸 쏟아지는 게 보이니까 처음에 너무 신났어요. 그런데 이게 뭐냐? 그 떨어지는 폭포를 보고 있으니까 무서워요. 밤에 나중에 커텐을 닫았습니다. 또 별로 감흥이 없습니다. 우리가 성취하는 외적인 것부터 주어지는 성취나 행복감은 사실은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혹시 공부 많이 하셔서 박사 학위 받으신 분 계세요. 박사님 졸업하는 그 졸업식날만 좋습니다. 담임 목사님이 그랬어요. 담임 나가는 목사님한테 뭐라고 권면했냐면? 담임목사 취임하는 그 날만 좋았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오랜 경험에서 흘러나오는 거 아니에요. 그게 얼마나 고생 할 게 많은가? 이러한 그러니까 내적인 이런 정서적인 변화들이 이루어지면 본인도 행복하고 결국 본인이 행복하면 어떻게 됩니까? 관계하는 모든 분들에게 행복한 관계로 이루어갈 수가 있는 거죠. 이제 영적인 열매들입니다. 이 내적인 변화 없이 계속 우리가 반복해서 하는 이러한 교재들이 쌓여도 내적인 변화가 없으면 변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겁니다. 우리가 가정으로 돌아가면서 느낀 거는 함께 밥을 많이 먹는다고 사람이 친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예를 들어 부부를 보십시오. 오랫 동안 함께 식사하셨잖아요? 오래 전에 가정사역 할 때 이 문제는 첫 번째 멘트를 하면 다 공감합니다. 지금 30년째 합숙하고 계시면서 304020년 근데 안 친한 느낌이 드는 건 왜 그래요? 그래서 또 이런 말도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사랑해요. 그러나 좋아하지는 않아요. 이런 말도 만들어내고 부모님의 사랑처럼 부부의 사랑 사랑하네 근데 좋지는 않아 공감하시죠? 여러분 안 공감하시면 다 공감할 필요는 없어요. 이런 부분들이 내적인 변화 정서적으로 건강해지는 이 길들을 묻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순원을 돌볼 때 이런 내면이 부대끼고 막 속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눈만 감고 기도하려고 그러면 수많은 생각들이 나는 것이지요. 그리고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어디론가 그냥 훌쩍 떠나버리고 싶고 행복하지 않은 분들이 있을 때 나도 그런 고민 가운데 있고, 순원도 그런 고민 가운데 있는데 그리고 거기에 자녀, 부부, 시댁, 친정, 처가 여러 가지 외적인 직장의 일들 경제적인 거 또 질병 이것이 다 복합적으로 일어나게 되면 삶의 무게는 더 무거워지는 겁니다. 사실은 아무리 외부에서 외력이 강해도 외적으로 견딜 힘이 있으면 다 극복해서 나가게 되는데 그것이 없으면은 사실은 사람들의 지지대도 그거는 무너지게 되고 또 지나가게 돼 있어서 그 지지에도 궁극적으로는 버팀목이 되지 못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이 영적 리더십은 자가 진단이 필요한 거죠. 내가 지금 영적인 여정, 변화의 여정, 성숙의 여정, 변화는 결국 뭐냐? 치유됨으로부터 일어나게 됩니다. 치유. 그러니까 어떤 치유를 얘기해야 되는가? 영성에서는 우리가 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빙산 아시죠? 빙산. 빙산을 보시면 위에 빙산이 이 정도 있고 밑에가 이게 빙산이죠. 그러면 우리가 보는 공동체에서 보는 면은 위쪽 작은 면이 많아요. 이쪽 면이 많이 보이죠? 그렇죠. 가끔 사모님들 보고 아이고 사모님은 좋겠어요. 이런 좋은 목사님하고 사니까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사모는 그러잖아요. 속으로 살아보시라고...하하하 선교사님 보고 목사님들 보고 다 똑같아 가정에서 왜 그러냐? 하면 다 이 문제는 보이지 않는 영역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욕구가 있어요. 욕구. 왜 그러냐면 욕망 이 욕구는 나쁜 게 아니에요. 그러나 지나치거나 채워지지 않을 때 트러블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욕구가 있냐면 인정받고 싶은 욕구, 애정,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으시죠? 네 남자분들 특히 이 인정을 해주면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고 싶잖아요. 저는 하용조 목사님하고 단독으로 사진 찍은 게 하나도 없어서 서빙고 로비에서 용기 내서 목사님 저 사진 좀 한번 단독으로 좀 찍으면 안 될까요? 그때 하용조 목사님이 사진을 빨리 오라고 흔쾌히 찍어주시는데 갑자기 연인 깍지 손을 끼시는 거예요. 이렇게 손가락 사이에 손가락으로 손깍지를 꽉 껴주시는데 그때 제 마음에 평생 충성각이다. 난 평생 충성해야지. 이 깍지 그냥 잡은 게 아니에요. 깍지 손을 껴가지고 꽉 잡으시고 하 목사님 그 순간도 굉장히 놀랐습니다. 그러니까 인정과 사랑을 받는 거 그러니까 남편들이 언제 성령 충만해집니까?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아내의 칭찬을 들었을 때입니다. 아내의 찬사를 받았을 때 이게 남자분들은 이 남편은 하늘을 날아오를 듯한 그런 기분이 듭니다. 어떤 목사님이 그래요 어떤 목사님이 우리 안에는 교관이라고 교관 수석 목사님이 집에 하나 또 있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 설교부터 뭐 이게 일거수 일투족 그러니 얼마나 이게 지금 보통 일입니까? 이게 그 안에는 동기는 목사님을 성장시키고 이렇게 하려고 그러는데 실제 나타나는 열매들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인정과 애정을 원해요.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영적 돌봄, 영적 리더십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사람의 칭찬과 인정, 찬사를 받아도 내면이 채워지느냐는 문제를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렇지요. 여러분 사람의 인정과 애정으로 내 레벨이 다 채워집니까? 어떻습니까? 답은 다 알잖아요. 남편의 사랑으로 아내 사랑이 다 채워저요? 다 채워저요?. 촉진제는 될 수 있는데 궁극적으로 채울 수 없는 그래서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는 그러니까 좋은 순장님은 하나님을 소개시켜줘야지 내가 당신을 이렇게 잘 돌봅니다. 할 필요가 없는 거라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됩니다. 그래야 인정받고 사랑받는다는 것을 경험하게 돼요. 그러면 순장님 앞에 순모님 앞에 도움을 청하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나아가는 법을 배우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채워지는 그러니까 여성분들이 가끔 혼동하시는 게 뭐냐면 남편이 사랑을 안 해줘서 불행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 안 나가서 불행한 걸 빨리 깨달으셔야 합니다. , 남편분들이 드디어 바로 어떻습니까? 아내분도 어때요? 동의가 조금 되세요. 그렇다고 남편의 불성실함을 지금 합리화시키려는 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궁극적이라고 그랬어요. 자녀도 부부가 한 거고 생활도 마찬가지 예요. 누구 때문에 내가 불행한 것은 아니다라는 인정과 애정 욕구가 과하게 되면 사람에게 집착하게 됩니다. 정서적으로 경계선에 있는 분들은 과도한 카톡과 문자와 전화와 만남을 요구할 거예요.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증상이니까 품어줄 수 있으면 품어주시고 내 능력 밖이라고 그러면 빨리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셔야 됩니다.

그 다음에 사람은 또 뭘 원합니까? 인정애정을 원하고 을 원해 통제 지배 권위를 권력을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까 이 내 안에 이런 힘 통제 지배력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통로라기보다는 어떻게 보면은 내가 하나님의 자리, 주님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그런 위험을 인간은 항상 갖고 있어요. 바벨탑을 쌓은 힘에서 그래서 이런 힘 통제 지배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계속 돌려드리지 않으면, 기도하면서 계속 하나님께 부탁드리지 않으면, 우리는 그 통제와 힘으로 옆에 있는 부부, 자녀, 순원 이런 분들의 영혼을 과도하게 통제할 수가 있습니다. 통제받는 거 아무것도 안 돼요. 제가 전화를 양재 목회실에서 받았는데 전화가 왔어요. 이웃 교회에 성도 같았습니다. 뭐라고 전화왔냐면? 그러니까 다른 교인이니까 목사님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괴로워서 교회를 못 다니겠다고 교회를 옮겨도 되냐?는 거예요. 왜 그러냐? 그랬더니 그분 때문에 사사건건 간섭해서 힘들어서 처음에 좋았대요 근데 완전히 헬리콥터처럼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한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교회에 옮겨도 됩니까? 안 됩니까? 제가 대답했습니다. Why Not? 왜 안 됩니까? 빨리 옮기세요. 교회는 원래 보편적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의 영혼이 변화되고 성숙할 수 있는 곳으로 오셨다가 치료받고 다시 가든지, 아무튼 지금 버틸 능력이 없기 때문에 괴로워서 호소하고 있는 겁니다. 이럴 수가 있다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일대일 양육자도 양육하는 기간만 양육자지, 영원한 양육자 되면 안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제가 부천에서 이임할 때 그 목사님들에게 인사하고 사과하면서 그동안 제가 잘못한 거 있으면 용서해 주시고 이제 이 시간 이후로는 동료 목사로 돌아가니까 편하게 대해주십요. 이렇게 정리해 주니까 진짜 편하게 대해주더라고요. 하하하 그래서 인생이 씁쓸합니다. 진짜 편하게 하라니까 편하게 다 그냥 편하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한번 그냥 합시다 그냥 이렇게 하는게 정말 이렇게 어떻게 사람이 하루 만에 이렇게 달라지나 변신이 놀랐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앞에서 하는 행동을 잊지 마세요. 그거 어떤 거예요? 요거 요거 요거 이게 많아요. 물론 올해 공동체를 하면서 이 부분들이 다 같이 드러나고 사실은 존재적으로 이게 발산이 되게 되죠. 인격이라는 게 이것이 다 타고 올라와요. 속일 수가 없거든요. 순 통제 이것도 하나님께 맡기는 연습을 해야 됩니다. 사람은 생존 안전 욕구가 있어요. 생존 안전. 그러니까 인간이 하는 선택은 대부분이 살려고 하는 선택이고, 살려고 모임에 가는 것도 살려고 자리를 떠나고 싶은 것도 살려고, 직장을 떠나는 거는 대부분 살려고 하는 거예요. 영혼이 괴로워서 살려고 하는 선택들이 되게 많아요. 우리의 삶이 그런 부분들을 보시면서 순원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돌볼 때 뭐가 중요합니까? 성육신적인 태도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혁신적 태도는 그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주는 거예요. 하용조 목사님이 신기한 게 세대를 다 아우르면서 어떻게 감화를 줄 수 있냐 이게 신기해요. 장관 만날 때는 장관의 수준에서 얘기하면서 편하게 얘기하는데 제가 중국 텐진이라는 곳에 단기 선교사로 가 있었는데 저하고 둘이 청년이잖아요. 식사를 하시는데 이게 짠지랑 김치도 없고 짠지를 손으로 집어 드시더라고요. 손으로 한 그릇 더 가져와. 그때 오는 친밀감이란 말도 못해요. 야 이게 차린거 죽 하나 하고 짠지인데 그걸 손으로 막 집어 드시니까 이게 굉장히 이게 크신 분이에요. 이게 범위가 그걸 느꼈어요. 성육신적으로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맞춰주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주로 사람의 힘과 통제를 원하기 때문에 나에게 맞추라고 많이 합니다. 주로 내 말을 듣는 걸로 표현하죠. 그러니까 여러분도 은연 중에 대화를 할 때 내가 말을 많이 하는가? 상대방이 말을 많이 하게 만드는가?로 자가 진단을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어떠세요? 주로 많이 들어주세요. 여러분이 많이 말을 하세요? 어떠세요? 이런 분 있으세요. 남편에게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어? 하고 아내 말을 계속 듣는데, 신문 보면서 텔레비전 보면서 듣는 게 아니라, 고개 끄덕여주면서 진지하게 들어줘요. 이런 남편 있으십니까? 경기A 공동체 아까 환영하면서 격하게 해 주셨지요? 아니 집에서도 이거 하셔야죠? 집에서느 어떻습니까? 집에서 그렇게 하시면 어떨 것 같아요? 아내분들 마음이 따뜻해지는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이 되는데 정서는 영성으로 가는 줄이에요. 출혈이 줄기 그러니까 줄기가 파이프 라인이 건강해야 영성도 달콤해 그러니까 인간은 이 정서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다라고 돼 있어요. 그러니까 어떤 정신과 의사분인데 그분이 연구한 게 기도도 다 됩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정서적으로 건강하면 기도가 조금 부드러울 수 있대요. 큰 소리 그런 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그런 게 정서적으로 불행한 분들은 어떤 기도를 하냐면? 하나님과 싸움을 많이 한답니다. 그렇게 진짜로 싸운다는 거야 이거를 지금 연구하고 있다고 지난번에 나는 그거야 그 하나님과 이렇게 큰 소리하고 또 차원이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날카로운 거예요. 그 목소리에 벌써 원망과, 말투 안에 그 존재 인격이 다 담겨져요. 여러분 사실은 중년 이후의 삶은 이 말투에 다 드러나요. 표정과 말투가 따뜻하게 집 밖에서만 잘하시는 게 아니라 집에서도 그렇게 해 주면은 아내가 굉장히 행복해 합니다. 우리 배우자 말투 좀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거 있죠? 표를 낼 수는 없고 같이 낼 수 말투 좀 한 층 그래서 남성 중년 남성분들이 기도 제목을 뭘로 삼아야 되는가? 기도 제목을 막 쫙 내시더라고요 제가 그러지 말고 그런 말을 했어요. 기도 제목 너무 많이 내지만 하나만 내요. 따뜻한 남자 되게 하소서 그러니까 본 사람들이 너무 좋아 내가 바라던 이상형이 바로 이런 사람들 어떻습니까? 권사님 집사님 맞아요. 따뜻함 속에 모든 게 다 들어가 있어여. 그러니까 치유의 여정을 걸어가는 사람은 사랑이 힘이 내려놓아지고 채워지는 것 때문에 부드럽고 따뜻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영혼에 대한 사랑이 생겨나게 돼 있어요. 내면에서 그런 거죠. 그래서 정서적으로 건강한 순장에서 1과에 보면 에베소서 말씀에 충만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인간은 자원이 한계가 있어요. 그리고 연세가 드시면 기력도 한계가 있으시면 그러니까 모든 게 우리의 자원은 한계가 있어서 인간 나라의 특징을 결핍이라고 봐요. 신학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혼은 충만 그래서 예수님은 잔칫집에서 설교를 많이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잔칫집과 같아 기쁨이 있죠. 먹거리가 풍성하죠. 모든 분들이 설교를 유쾌한 이걸 하나님 나라의 배경으로 설정하시고요. 하나님 나라의 반대 개념은 결필해 그래서 충만한 사람은 시편 23 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가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이 번역보다 좀 더 좋은 번역이 있어요. 공동 번역에 보면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아쉬울 것 없습니다”(시23:1) 이 표현이 기가 막혀요. 아쉬울 것 없는 분은 정말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경기A공동체 리더십 여러분! 여러분 아쉬울 거 없으십니까? 아쉬울 거 있으시죠? 근데 항상 인생의 해석이 안 될 때 그걸 한번 붙여보세요. 주님 안에서 이 남편 사랑이 힘들어 주님 안에서 보니까 이분 안에 계신 하나님이 계셔서 나는 이 남편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너무 자연스럽게 고백이 될 수가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순원 사랑 다 사랑하고 쉽지 않죠. 그런데 주님 안에서 이분을 위해서 우리 순 전체가 헌신하고 있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분 하나 건강해지고 치유하게 만든다고 그런 부르심이 있다는 거. 그래서 정서적으로 건강한 순원,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한 리더십을 이것은 이 변화의 여정 치유의 여정을 걸어가야 되는데 이걸 치유해야 됩니다. 너무 인정받고 싶어 하는 너무 사랑받고 싶어 하는거. 과도한 힘과 통제를 갖고 싶어 하는 거. 너무 안전 욕구 생존 그러니까 이것은 뭐냐? 확실한 삶을 추구하는 우리의 삶은 어떻게 해도 100% 만족감을 느낄 때는 없어요. 영적으로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삶은 불확실성의 연속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거예요. 내일 일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면 어떻게 됩니까? 그분은 완전하시고 전능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그분 앞에 나아가면은 치유가 일어나고 생각이 정화가 되고 이런 부분들이 내려 놓아줘도 안심이 되고 안전해지고 그래서 이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한 리더십을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리더가 정말로 이 부름받은 리더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그 하나님께 날마다 나아가는 삶이 되는 거죠. 그것이 기도 말씀 묵상, 그런 행위가 아니에요. 하나님께 내 인생을 맡겨드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동체에서 이러한 사랑애정과 여러 고난들을 새롭게 해석하는 그런 모든 능력을 통해서 우리를 채워주는 경험을 한 거 궁극적으로 채워지면 하나님만이 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세월이 흐를수록 계속 변화되어 가요 또 변화의 실제 있구나! 저도 부천에 있다가 양재 온 지 2주가 지났는데 하나님이 또 치유하실 게 이렇게 있다는 걸 보여주세요. 기도 제 그게 저의 기도 제목이 기도 생활 그리고 이제 저도 경기A의 공동체 일원이 되었기 때문에 그 일원으로서 경기A의 공동체를 마음에 이렇게 쏙 품고 쏙 품고 하나님 앞에 이렇게 나아가는 거죠. 짧게 짧게 기도해 도 경기A 공동체와 함께하소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의 영혼을 만지시고 공동체와 함께 했다는 것을 이렇게 안심하게 하시는 그 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 기도를 왜 하는가? 저한테 물어보면 저는 살려고 한다고 대답합니다. 우리 아침에 기도하잖아요. 점심 때도 기도하고 싶어 집니다. 안식이고 쉼이고 춤만이고 정말 내 영혼이 이렇게 삶의 아늑함을 주는 그 기도의 위치로 나가는 거죠. 기도를 길게 할 필요가 없죠. 짧게 짧게 저녁에 잘 때로 기도하시면 생각이 정리가 됩니다. 이러한 이 기도의 은혜를 맛보면서 우리의 영혼이 점점 치유되기 그래서 경기A의 공동체에서 또 공동체 함께 생활하면서 이번 봄 학기에 우리가 치유해야 할 영역이 있는 것들을 드러나게 하시고, 함께 은혜를 많이 안아서, 많은 치유들이 일어나게 그러면 한층 더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가정 가정이 많이 치유의 역사들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이렇게 행복하면 가족이 모여서 교회가 되기 때문에 공동체 교회는 자연스럽게 행복해지고 세상 사람들이 많이 저런 행복한 비결이 뭔가? 선교 전도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될 제가 느낀 거는 가정 사역을 이렇게 하다 보니까 크리스찬과 넌크리찬을 굳이 따로 떼어서 교육할 필요가 없어요. 공통적인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주님이 필요하다고 하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이런 일들을 보게 되는 모두가 우리 모두가 내면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구나! 정서적으로 다 아프구나! 이것이 문제구나! 이것을 깨닫게 됩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런 얘기들 내면적인 관계적인 얘기들을 주로 많이 좀 나누면서 함께 기도하면서 내적인 이런 치유의 여정을 함께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치유라고 했는데 사실은 변화도 되고, 성숙도 되고, 트랜스포메이션, 체인지 정도가 아니라 분위기만 조금 좋은 게 아니라 진짜 내적인 변화 이렇게 이루어가는 이런 일들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서적으로 건강한 순장님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 키워드들이 많이 나왔어요. 그래서 시간이 다 되었고 손을 흔드셨기 때문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면 하고 순장님들은 234강 같이 짧게 짧게 줌을 통해서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