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21:15-19) 2023.01.12

다이나마이트2 2023. 1. 12. 10:11

2023 새벽기도[32일차]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21:15-19)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우리가 항상 염려하고, 근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①첫 번째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고, 
②두 번째는 “과거에 실패했던 기억”이 생각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어서, 미래로 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두려움” 보다도, “과거에 실패한 기억”이 훨씬 더 큰 영향을 가져 옵니다.
그러니까 [과거의 실패]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실패에 대한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서,
그 기억이 나의 인격과 감정까지 사로잡기 때문에,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이런 “과거에 실패한 기억”이 우리 [믿음]에도 결정적으로 작용합니다.
그것이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장애물로 작용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기 전에, 10여 일 동안 제자들에게 집중적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사랑했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고,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와 [요한]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건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21장 3절을 보면, “나는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소.”라고 말하고, 호수로 나갑니다. 
 
▶왜, [베드로]는 그런 행동을 했을까요? 
그것은 단지 “배고픔의 차원”이 아니고, “과거의 실패에 대한 기억”을 억누르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는 이제 제자의 삶을 포기하고, 다시 어부로 돌아간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그때 “무덤이 비었다.”는 것을 보았기에,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베드로]는 어떠한 일을 해야 할까요? 
당연히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겠다.”는 것은
그동안 제자의 삶에 대한 [회의]가 있었고, [두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도록 [베드로]를 이끌어 간 것은 “과거의 실패에 대한 기억”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사건이 있었으므로, 그 “배신의 기억”이 그의 삶을 억누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이 두려웠고, 예수님 앞에 서기가 싫어서,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간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실패한 [베드로]를 찾아오신 사건이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도 실패와 좌절과 절망이 찾아 왔을 때, 나의 [죄]로, 나의 잘못으로 인하여, 문제가 생길 때도
예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찾아오신다.”는 것이고,
그리고 우리를 다시 회복시켜서, 다시 소명의 길을 걷도록 만드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우리에게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이기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분”입니다. 
 
세상은 다 실패한 사람을 버리고, 실패한 사람은 탈락시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그런 사람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21장에서 세 가지 상황을 보이십니다. 
(1)첫 번째 상황은 물고기를 잡으러 간 [베드로]가 그물을 내리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그물이 계속해서 비어서 올라옵니다. 
 
[베드로]는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빈 그물]을 확인하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베드로]는 밤이 맞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한 마디도 잡지 못한 상태인데,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그물을 배 오른 쪽에 던져 보라. 그러면 물고기가 잡힐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도, [베드로]는 혼잣말로, “이미 내가 어부의 관록으로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는데,
지금 같은 아침시간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면서,
이것저것 간섭을 하니, 이건 좀 아닙니다.”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제가 갈릴리 어부 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갈릴리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인데,
“당신은 목수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그런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장기는 “갑자기 생각이 나면, 뭐든지 행하는 사람”입니다.
상황이 어쨌든지, 일단은 “해 보는 성질”이니까,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빈 그물]을 경험하게 하셨을까요?
[베드로]의 생각으로, 여러 번 실패했으니까, 이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따라 하면, 
“말씀대로 실행하면,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빈 그물]도 “주님의 임재로 채워질 때”, 비로소 우리에게는 마음의 억매임에서 풀어나고,
주님을 따르게 된다.“는 교훈을 주십니다.
 
우리의 ”실패의 기억”도 치유하게 되고, 나의 연약함이 나를 사로잡을 때, 주님의 말씀이 더욱  크게 보였으니까,
“이제 내가 실패했기 때문에, 나를 쓰시지 않을 것”이라는 [나쁜 생각]은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에 따르는 [좋은 생각]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 장면은 이제 [물]에서 [뭍]으로 올라온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숯불]을 피워서, 잡아온 생선을 구워주십니다. 
 
요한복음의 18장에도 [숯불]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집에서 불을 쬐고 있을 때, ”나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바로 그 때의 [숯불]과 같은 내용이니까, 너무나 기가 막힌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무언의 설교“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한 그 현장의 상황을 연상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이 ”숯불에 대한 상처“가 있는데, 예수님이 아침을 준비해 주시며,
”숯불에 대한 상처“를 치유해 주시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숯불], ”그 자체로는“ 아무 치유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이 세 가지 질문을 연속으로 던지는데, 
 
①첫째로, [빈 그물]이라는 상황을 보여 주셨고, 
②둘째로, [숯불]이라는 상황 속에서 생각하게 하셨고,
③셋째로, ”이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을 합니다.
 
(3) 세 번째 상황은 예수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질문]을 합니다.
 
15절을 보면,  ”아침 식사를 끝마치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니,
“예, 주여,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은 주께서 아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1:15)
 
여기서 예수님은 “[베드로]야?”라고 말하지 않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릅니다.
▶왜, 그렇게 불렀을까요? 그것은 실패에 대한 책망입니다. 
원래 [베드로]라는 이름은 “반석 같은 믿음의 사람”이라는 뜻인데,
[과거의 실패]로 인하여, “자신의 이름을 부정한 것”이 되어서,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는 과거의 이름으로 불렀던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그냥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지 않고, “네가 나를”이라고 지칭하면서 물어봅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늘 가장 앞선 제자가 되길 원했고, 가장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가 되기를 원했으므로,
”네가 나를“ 강조하는 질문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베드로]는 ”모두가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베드로의 이런 모습“은 언제나 앞서길 원했고,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로 인정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더 큰 실패를 했던 겁니다.
 
첫 번째도, 두 번째 질문도, 그는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질문에는 근심하면서 대답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어떤 근심보다 ”우리의 믿음 자체에 대한 근심“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근심]은 우리에게도 필요하고,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할 근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대한 근심”은 다 내려놓고, 십자가에 못을 받아야 하지만, 
“주님을 내가 사랑하느냐?”에 대한 근심은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근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거룩한 근심”이고, 이것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근심“입니다.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을 과연 주님이 사용할까?“라는 [의심]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은 갑자기 ”내 양을 먹이라.“고 사명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 가지 질문을 통해서, [베드로]에게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①[베드로]의 마음속에 숨겨놓았던 [사랑]을 다시 일으켜 주셨고,
②실패에 사로잡혀서, 부활의 증인이 되지 못하는 [장애물]을 제거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과거에 실패한 기억을 묻어두지 마시고, 주님과 함께 나의 [빈 그물]로 돌아가고,
나의 배신하는 [숯불] 앞에서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③그러면 [주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에, [베드로]처럼 근심할 수밖에 없지만,
그 [근심]이 바로 [회개]로 바뀌어 지는 역사가 나타나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명의 길“로 인도 하실 것입니다.
 
이 40일은 기간에, 자신의 의지로 새로운 결심을 하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그러면 올 한 해도 주님과 함께, 다시 시작하는 복된 한 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