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예수님을 만난 바울 (행 22:6-10) 2023.01.09

다이나마이트2 2023. 1. 9. 12:51

2023 새벽기도[29일차] 예수님을 만난 바울 (행 22:6-10)  말씀: 박종길 목사님
 
오늘 읽은 사도행전 22장 6-10절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 [배경]에는 유대인들에게 린치를 당하는 [바울]을 붙잡아서 심문을 하는데, 
”그 [간증]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바울]의 이 [간증]에서 두 가지 부분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첫 번째로/ 먼저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2장 6- 8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다메섹에 가까이 다다르자 정오쯤 됐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밝은 [빛]이 내 주위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내게 땅에 풀썩 쓰러졌는데, 한 음성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이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내가 물었습니다.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분이 내게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다.’“(행22:6-8)
 
이 앞에서 [바울]은 자기를 소개합니다.
먼저 출생에 대해서, ”자기는 [유대인]으로 [다소]에서 태어났지만, 자란 곳은 [예루살렘]에서 자랐다.“고 얘기하고,
[가말리엘]이라는 유명한 유대 지도자에게서 ”정통적인 [율법 교육]을 받았다.“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협박했고, 감옥에 집어넣고,
심지어 ”지금은 기독교인들을 잡으려고 떠났다.“는 얘기를 하면서 생생하게 증언을 했습니다.
 
바울은 이 자리에서 자기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지?”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여기서 [사울]의 이름이 [바울]로 바뀌는 사연이 나오게 되는데,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이 장면을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기록하면서,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왜, 이 [장면]이 중요할까요? 
①그것은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가 이전에는 예수를 핍박했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②그리고 [바울]의 이름이 “사울에서 바울“로 바뀌고, 그의 인생 자체가 완전히 뒤집혀 지는 역사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쩌면 우리도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인데, [바울]처럼, 변했습니까? 
그렇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을 만나면, 분명히 우리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간증]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어떤 [논리]를 제시하거나, [율법]을 토론하는 중에 만난 게 아니고, 
그냥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만났고, ”자기를 찾아오신 [예수님]이라.”고 소개합니다. 
 
[복음]은 애매하거나, 모호하지 않고, 분명합니다.
[복음]은 안개 속을 헤매는 것과 같이 애매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①그는 많은 [길] 중에 하나가 아니라, 오로지 ”유일한 [길]“입니다. 
②여러 [진리] 중에서 하나가 아니라, 그냥 믿어도 되는 ”유일한 진리“입니다. 
③그 [생명]은 흩어지는 바람 같은 생명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생을 주는 생명”입니다.
 
[복음]은 모호하지 않고, 애매하지 않고, 헷갈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내가 예수님을 만난 것”을 잘 모르겠다면, ”그런 사람들은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예수님을 만난 적도 없고, 논쟁했던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사울]을 만날 때,  ”사울아, 사울아“라고 그의 이름을 두 번이나 불렀어요.
 
▶왜, 그랬을까요? 여기를 보면, 참, 이상하죠. 바울이 했던 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한 사실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예수님이 아셨는지?”가 궁금해요.
 
[바울]은 직접 예수님을 만난 적도 없는데, “예수님이 [사울의 이름]을 안다.”는 것과
“그 이름을 불러주셨다.“는 것은 놀라운 사건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못 만났다 하더라도, 예수님은 우리의 이름을 아시고,
사울의 이름을 부른 것처럼, 우리의 이름을 불러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만남]을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는 거예요. 
9절에,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빛]은 보았지만,
내게 말씀하시는 분의 음성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행 22:9)라는 기록을 보면, 아주 놀라워요.
 
[길]을 가다가 옆에서 [빛]이 비치고,  ”무엇인가?“ 이상한 사건이 있었는데, 
같이 길을 가던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는 것이고, [바울]만 ”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만 아는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아는“ 그런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그런 [만남]을 원합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만남]이 있어야 여러분의 인생이 바뀌고, 여러분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는 겁니다.
 
그것이 [신앙]이고, 그것이 [믿음]이지요.
저와 여러분에게 그런 [만남]이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어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너무나 기쁘고, 행복한 마음의 체험을 느끼십시오.
그런 [만남]이 ”성령의 체험“이고,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물에 물 탄 것처럼, 그냥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는 그런 신앙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간절히 예수님을 사모하면, 우리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만남으로 우리도 변화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나요?
그것은 예수님과의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만남]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2)두 번째로/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10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주여,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다의 색으로 들어가거라. 거기서 네가 할 일을 모두 일러줄 것이다.“(행 22:10)
 
[사울]은 ”주여,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이 질문은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고, ”우리가 매일 해야 될 질문“입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첫 시간에 기도로 드릴 때, 이런 질문이 나와야 합니다.
①우리에게 중요한 일이 벌어졌을 때, ②우리가 고민하고 결정해야 될 때,
③우리가 순간순간 선택의 길에 섰을 때, ④우리가 늘 하는 [큐티]를 할 때,
”주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과 ”주님은 무엇을 원하십니까?“라는 기도가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거기서 할 일을 네게 알려줄 거다”라고 “사명을 주신다.“고 말씀을 했고, 
그 [일]이 무슨 일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다메섹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명의 장소가 [다미섹]이라는 거죠. 저는 그게 굉장히 놀랐습니다. 
지금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인데, 예수님은 “다메섹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뭐가 달라졌나요? [다메섹]이라는 장소는 그대로인데, [사람]이 바뀐 거예요. 
[사울]이 [바울]로 변화 되었어요. 전에는 [사울]이였을 때는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서 가두는 사람인데,
이제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바울]로 이름이 바뀐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면, [사명]을 모르던 사람이, [사명]을 알게 된 거죠.
그런 사명을 받는 자리는 이상한 데가 아니라, 바로 ”내가 있는 곳“일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가정]일 수도 있고, 우리의 [직장]일 수 있고, [길가]에서도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고 우리가 변화됐을 때, 그 [장소]는 똑 같은 장소일지라도, ”예전에 그 장소“가 아니라는 거예요. 
 
[바울]이 그렇게 변한 거죠. 
[바울]이 사명을 받으니까, 달라지는 겁니다. 
 
우리에게도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한 사명을 주셨고,
예수님께서 그것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명]만 주고는 ”그냥 나 몰라라 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일을 준비해 주시는 분“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명도 주시고, 또 그 사명을 감당할 능력도 주시고, 은혜도 주시고 분이므로,
우리에게 일하는 [사람]도 붙여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도록 [사명]을 주시고, 우리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님을
땅 끝까지 전하라고 저와 여러분이 쓰임 받기를 소망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다마섹]은 어디입니까?
이번 40일 새벽기도 시간에, 그것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고,
우리의 삶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와 축복이 함께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