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치라 (요8:1-11) 2023.01.03

다이나마이트2 2023. 1. 3. 13:17

2023 새벽기도[23일차]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치라 (요8:1-11)    말씀: 이재훈 목사님
 
이제 새해가 시작이 되어, 우리가 함께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계획과 결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의 뜻을 안다.”는 것입니다.
 
[나의 결심]은 쉽게 사라지지만, 우리를 이끌어 가는 [주님의 뜻]을 알고 행동하면, 실패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이성과 경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에 대한 믿음”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극적으로 살아 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이 [여인]은 가장 위급한 상황에서 주님을 만났는데, “죄를 지은 건 사실”이나,
어떤 음모를 가진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이 일을 저질렀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 여인이 사람들에게 끌려 온 것은 “간음을 저질렀다.”는 [죄]인데,
그 자리에 “여인이 상대한 남자”가 없는 것을 보면, 어쩐지 무엇인가 이상합니다.
 
5절을 보면,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들은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했는데,
선생님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인데, 그것은 예수를 시험해,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는 속셈입니다. 
 
이 여인은 죄가 드러나, 변명할 수도 없고, 형벌만 기다리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율법학자들은 이 여인을 이용해, 예수님을 시험하고, 또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는 [속셈]입니다.
 
▶이것이 왜, 그들의 [속셈]일까요?
① 먼저 예수님께서 이들의 말대로, “율법을 적용하여, 돌로 치라.”고 말씀을 하면, 당시의 로마법을 어기게 되는 셈입니다. 그 당시는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기에, 유대인에게는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형의 결정권]은 오직 산헤드린공의회에서만 할 수 있는데,
다급한 상황을 이용하여, 예수님이 로마법을 어기도록 유도하는 상황입니다.
 
②반대로/ “예수님이 그 여인을 풀어주라.”라고 말을 한다면,
율법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소할 구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쪽으로 결정을 해도, 곤란한 입장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그 때, 예수님은 어떤 말씀도 하지 않고, 몸을 구부린 채 앉아서, 바닥에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행동은 조금은 이상하지만, 예수님의 지혜를 느낍니다.
 
예수님의 이런 행동은 일종의 [부비 트랩]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행동은 영화에서와 같이, 무심코 물건을 들거나, 문을 열려고 할 때,
“어떤 폭발을 하도록 만드는 그런 장치”를 [부비 트랩]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부비]는 “바보”라는 뜻이고, [트랩]은 “덫”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부비 트랩]처럼, 그렇게 만들어 놓은 [질문] 앞에서,
예수님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행동인데, 그렇다고 당황해서 시간을 벌려고 하신 행동은 아니고,
그것은 일종의 “무언의 [행위 예술]과 같이,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액션“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끄적이고 계실 때, 흥분한 유대 지도자들이 질문을 퍼붓는데,
7절에서, 예수님은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이 여인에게 죄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 자기의 생각대로 판단하라.”는 말로써,
결국은 “다른 사람을 정죄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에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했지만, 그 이전에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하나로 묶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앞부분은 빼고, 뒷부분을 강조해서 “돌을 던지라.”만 해석합니다. 
 
결국에, 예수님은 율법을 조금 더 축소하거나, 율법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상황에서 “누가 죄가 있냐? 없냐?“를 따지지 않고,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하신 것은 
①율법의 정죄를 인정하신 것이고, ②여인은 ”정죄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인정하면서
③그러므로 여인의 [죄]와 [율법]의 요구를 동시에 다 인정을 하셨고, 
④오히려 유대 지도자들에게 ”율법에 이렇게 돼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질문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그렇게 옳다고 믿었으면, 옳은 대로 하면 될 일“이지, 
자신들은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왜, 나에게 끌고 와서,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하느냐?“라고 반문하는 상황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는 것인데, 
그런데 그 앞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지라.“는 [조건]을 붙인 거죠.
 
예수님의 말씀은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을 판단하시고, 심판하실 분은 따로 계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옳고 그름은 없으니, ”모든 것은 서로 인정하고, 넘어가자.“는 식으로 해석하고,
계속해서 미꾸라지처럼 피해 나가려고 하지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뒷부분은 무시하고 앞부분만 끄집어내서“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뒤에 나오는 [전제]를 부인하는 것은 인간의 타락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진정한 진리]는 어떤 면으로 질문이 들어와도 맞아야 합니다.
무슨 질문이 들어와도 전체적인 논리가 맞아야 하고, 앞에서 하는 [이 말]과/ 뒤에서 하는 [저 말]이 일치해야 하고,
서로 다른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진리]는 명확해야 하고, 진리는 온전해야 합니다. 
[진리]는 모든 상황과 모든 영역에서도 진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①율법의 권위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②”누가 [모세의 율법]을 집행할 수 있는가”“라고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그랬더니 이때부터 상황이 급격하게 반전되었습니다. 
이 말씀의 권위 앞에서, [자신의 죄성]을 깨달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9절을 보니까,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제일 나이 든 사람부터 하나둘씩 슬그머니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예수와 거기 홀로 서 있던 여인만 남게 됐습니다.“(요8:9)
 
어떤 신학자는 ”오래 사신 분들은 그만큼 지은 죄가 많아서 그럴 것이다.“라고 해석하지만,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죄의 인식]은 나이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젊은이도 오래 살지 않아서 죄를 적은 게 아니라, 양심이 더러우면 죄는 있으니까, 
나이 많은 사람이 깨닫는 지혜가 더 많기 때문에, 더 빨리 인식했기 때문이겠죠.
 
이제 예수님과 여인, 단둘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는 단 한마디 말씀도 하시지 않고,
두려워 떨고 있는 여인에게 ”여인아, 그들은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여인이 ”선생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예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놀라운 [복음]을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여인의 행동은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예수님은 긍휼을 베푸시며, 놀라운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왜, 예수님이 정죄하지 않았을까요?“라는 의문입니다.
 
여기서 진짜로 [죄] 없으신 분은 예수님이니까, ”돌을 던질 자격“을 가진 분은 예수님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돌을 던져야 하시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내가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옳고 그름은 세상에 없으니, 서로 판단하지 말고, 넘어가자.”는 뜻이 아닙니다. 
 
이 여인이 맞아야 될 [돌]을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서 맞으심으로 정죄 받으시고, 
대신에 죽임을 당하시는 [십자가]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내가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여기서 [순서]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①”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②그러면 내가 너를 정제하지 않겠다.“라고 말하지 않고, 
---> ①내가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②다시는 가서, 죄를 짓지 말라.”는 순서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심판하실 수 있는 권한은 오로지 [예수님]이 가지셨지만,
그 [대가]를 자신이 담당하셨기에, 여인을 정죄하지 않은 것입니다.
 
세상에 누구도 정죄할 수 없고, 누구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어요.
이런 [복음]을 이 세상에서 다원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끄집어다가 잘못 사용하는 거예요.
 
이 엄청난 [복음]을 우리 성도들이 올바로 답변하지 못하고,
이데올로기에 빠진 사람들의 주장을,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믿는 성도들이 말해야 할 차례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 않기에, “정죄할 수 없다.”가 아니라, [옳고, 그름]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를 심판하실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를 심판에 이르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해를 시작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올 한 해, 내가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서야 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이게 [신앙생활]을 하는 의미입니다.
 
마지막으로 로마서 8장 1-2절의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죽음의 법에서 여러분을 해방했기 때문입니다.“(롬8:1-2)
 
▶진리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서 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풍성한 은혜]가 우리를 감동시켜서 우리의 마음을 변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에게 [은혜]를 많이 베풀어 주세요.
혹시 어린 자녀들이 잘못을 해도, 무조건 용서하시고,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세요. 
 
공부를 좀 잘못하고, 성적이 떨어져도,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그게 [죄]는 아니니까, 무조건 용서하시고, 그냥 넘어가 주세요.
 
이이가 공부를 잘못하는 것은 “알고 보면 부모님의 아이큐가 유전된 것”도 있으니까요.
혹시 부모인 자신이 잘못한 것을 “자녀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를 반성하면서 넘기세요.
 
2023년, 올 한 해도 ”오로지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동행을 하면서,
이 여인의 어려운 상황을 묵상하며,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