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강도 만난 자의 이웃 (눅10:25-37) 2022.12.29

다이나마이트2 2022. 12. 29. 23:28
40일 새벽기도[18일차] 강도 만난 자의 이웃 (눅10:25-37)  말씀: 이태후 목사님(도시 빈민 사역자)
 
오늘과 내일, 양일간 말씀을 전해 주실 목사님은 미국에서 사역하시는 이태후 목사님이십니다. 
목사님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20년간 [도시 빈민 선교사역]을 실천하시는 분으로,
사도 바울처럼 지금도 홀로 지내는 목사님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어느 날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선생님,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습니까?”라고 질문을 하는데,
예수님은 “율법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느냐?”라고 반문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물어본 게 아니라, “예수님을 떠보기 위해서 질문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유대인의 율법은 [성경]인데, 이 사람은 성경학자입니다. 
그걸 아시는 예수님은 ”그래, 네 대답이 옳도다.“라고 마치 선생님이 된 것같이,
”너, 공부 좀 했네“라고 칭찬하는 태도입니다. 
 
그랬더니 ”제 이웃이 누굽니까?“라고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당신의 이웃은 옆에 있는 사람이다.”라고 대답을 하면,
바로 이 사람은 트집을 잡을 상황입니다.
 
그 당시에 [팔레스타인]은 “로마의 식민지”였으므로, 옆집에 로마 병정이 살 수도 있고,
건너편에 세금을 걷는 [세리]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모욕하는 저 [로마 병정]도 나의 이웃이고,
우리 민족을 배신하고 로마를 위해서 세금을 걷는 [세리]도 “제 이웃입니까?“ 라고 항의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대신,
우리가 잘 하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여행을 떠났는데,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가진 것을 다 뺏기고, 심지어 입었던 옷도 빼앗긴 채, 맞아서 한복판에
내동댕이쳐져 있습니다. 
 
당시 [여리고]는 굉장히 부유한 교역도시로, 상인들이 무리를 지어 다녔고, 심지어 경호인을 대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마 이 사람은 형편이 어려워서 혼자서 다녔던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 여행하던 이 사람이 [강도]를 만나서 봉변을 당했는데,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세 사람의 인물을 만납니다.
 
(1)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한 [제사장]을 소개합니다. 
한 [제사장]이 그 길을 지나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제사장]이라“는 얘기를 듣자,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사람으로, 율법을 잘 알고 있으니,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사람이라,
”이 사람은 도와주겠지.“라는 기대감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제사장]은 ”강도 만난 자“를 보고는 길 저편으로 멀찍이 돌아서 지나갔습니다. 
 
(2) 예수님이 두 번째 인물로, [레위인]을 소개했습니다. 
그 당시에 [레위인]은 성전의 일을 섬기고, 구별된 사람으로 행세를 했으므로, 도와 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로, 길 다른 편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3) 그럴 때, ”저 사람은 조금 있으면 피를 많이 흘려서 죽을 텐데,“ 라고 안타까워하는데, 
예수님께서 ”한 사마리아 사람”을 세 번째 인물로 소개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하면, 유대인들에게 [개]라고 불렀던 사람으로, 
”이방인보다 더 나쁜 저열한 사람”으로 취급받던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유대인들과는 다른 “[사마리아 오경]이라“는 다른 성경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볼 때,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보다 더 나쁜 사람”으로 취급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자”를 보고, 즉시 긍휼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는 ①[포도주]로 상처를 닦아 주고, ②[알콜]로 소독을 한 이후에,
③더 이상 감염되지 않게 기름(연고)를 상처에 발라주었습니다.
④그리고 자기가 타고 구루마에 그를 싣고, 주막으로 옮겨서,
⑤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며, 이 사람을 잘 돌봐 주십시오.”
그리고 “만약에 경비가 더 들면, 제가 돌아오는 길에 더 드리겠습니다.”라고 부탁을 합니다.
 
당시에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싻이니까, 적지 않은 돈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에게 [사마리아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준 천사”가 되어서, 그를 구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율법학자에게 묻습니다.
“네가 보기에,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었느냐“
그러자 [율법학자]가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차마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말하기가, 껄끄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너도 가서, 이 같이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가지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길에서 만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선행]을 행해야 한다.“고만 해석합니다. 
 
이 이야기를 ”그리스도인들의 선행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이것은 “[선행]의 이야기“가 아니고, “[구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율법학자의 질문이 뭐였습니까? 
율법학자의 질문이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습니까?“이니까, 
오늘의 [비유]는 ”구원과 관련된 질문“입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주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또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된다.”고 율법학자가 대답했고, 예수님께서 ‘그것이 맞다.‘고 확인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웃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율법학자의 질문과 예수님의 질문이 비슷한 것 같은데, 완전히 다른 질문입니다. 
 
①[율법학자]는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는 질문이고, 이 질문은 [갑]이 하는 질문입니다. 
②그러나 [예수님의 질문]은 “누가 강도 만나 자의 이웃이냐?”라는 질문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①[율법학자]는 “예수님, 저는 율법도 잘 알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하니, 제가 누구를 도와야 할까요?”라는 말인데,
②[예수님의 질문]은 그와 정반대로, 다른 질문입니다. 
 
①[율법학자]는 [강도 만난 자]를 특정해서 질문을 했고, 이것은 강도를 만나서 가진 것을 다 뺏기고,
죽게 내버려둔 사람이 바닥에 있으니, “누가 저 사람을 살려주세요.“와 같은 질문이고,
②[예수님]은 ”여러분의 이웃은 누구입니까?“라고, [이웃]을 강조하는 질문입니다.
 
 
저는 미국에서도 가장 위험한 지역인 [필라델피아] 다운타운 북쪽에 있는,
[노스 빌리]라고 부르는 주민들의 90% 이상이 흑인들이고, 그런 흑인 빈민가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2003년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동네로 이사를 했습니다. 
저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을 모르는 분들을 전도한다.“는 생각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등록금이 싸서, 집 가까이에 있는 관악산에 있는 대학을 갔습니다.
그리고 요새 잘 나가는 서울대 미학과 대학원을 마쳤는데, 그 당시 서울대 인문대 분위기가 굉장히 안티 기독교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과 얘기해보면, 이 사람들이 싫어하는 게 ”예수님은 아니었다.“는 거예요.
당시 대형 교회들의 잘못된 것들에 반대 하고 있어서,
예수님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감히 [노]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분들을 전도하겠다.“는 생각으로 유학을 갔는데, 
하나님은 다른 기회를 저에게 주셨는데, 그것은 ”가난한 이들의 [이웃]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 분명한 [부르심]을 받고, 저는 그 동네로 들어갔습니다.
그 동네는 사진으로 보듯이, ”저희 동네가 어떤 동네인지?“를 대충 짐작이 가실 겁니다.
 
보시는 것처럼 저희 동네는 빈 집이 많고, 오래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서, 폐허가 되었어요.
사람들은  ”목사님, 동네에 혹시 노숙자들 있습니까?“라고 저한테 질문하는데,
저는 ”길에서 자는 노숙자는 없는데, 빈 집에 무단 거주하는 분들은 많다.“고 대답합니다.
 
[시]에서 집이 비면, 전기 수도 도시가스를 끊습니다. 그래서 겨울이면 나무를 떼는데, 
제가 지나가다 나무만 보이면 주어서, 제 옆집에 사는 분에게 갖다 주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미국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현실은 이렇게 잔인합니다. 
그렇게 저희 동네는 범죄가 끊이지 않는 동네이고,
필라델피아가 미국에서 살인사건이 가장 많이 일어난 도시로 꼽힌 적이 있습니다. 
 
올 4월에도 저희 동네 학교에서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던 아이가
학교 바로 길 건너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6학년짜리 아이인데, 아직까지 범행의 동기를 못 찾고 있어요.
 
올 봄에는 제가 사는 길 바로 건너편에서 [마약 거래자]들이 총싸움을 했는데,
저는 이런 곳에서 하나님이 불러주신 대로 좋은 이웃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기 위해서,
지난 2003년부터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여기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고, 미국 최대의 우범 지역으로 손꼽히는 [로스 센트럴]입니다. 
그런데 이런 위험한 동네에, 유독 평화로워 보이는 한 남자가 있는데,
그는 19년째 이곳에 살고 있는 이태후 목사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곳을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대물림 되는 [가난]을 벗어날 길이 없기“ 때문이죠.
 
미국에서 ”가난한 흑인으로 산다.“는 거는 ”이중 삼중의 차별“에 시달리는 거예요. 
일단 [백인]들로부터 [흑인]이라는 이유로 ①인종 차별을 받고, ②정부에게 버림을 받았고, 
③사회에서 차별당하는 사람들이니까, 그 사람들한테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 욕먹기가 십상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빈민가의 특징 중에 하나는 쓰레기가 정말 넘쳐나고, 그리고 사람들이 아무도 쓸지 않습니다. 
그래서 좋은 이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빗자루를 들고, 골목을 청소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그곳에 가서 한 일은 이렇습니다.
①먼저 지저분한 쓰레기를 치우고, 청소와 함께 동네를 바꾸기 시작했어요.
②그리고는 화단을 만들고, 꽃을 심으니까, 삭막했던 동네가 점점 아름다워졌어요. 
③그렇게 그의 진심이 통해서 그런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여, 
④동네 주민들과 소통이 이루어지고, 방치된 아이들을 모아서 입니다. 
⑤그래서 학교를 가야 할 시간에 ”길거리를 배훼하는 아이들을 돌보기”도 하고, 
⑥집에 들어가야 할 시간인데, 늦은 밤에 길거리에 있는 아이들을 만났어요.
⑦그래서 미국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인종 차별]과 
⑧이 아이들에게 [가난]이 대물림] 되지 않도록 교육시키는 일입니다. 
 
결국에 그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거는 [복음]이고,
“당신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기 시작을 했어요. 
그 때 동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여름 캠프]를 열어서, 하나님은 저에게 기회를 주셨어요.
 
여름 캠프는 지난 2006년부터 시작해서, 빈민가에서 복음을 전하고,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며 13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본 목사님은 좀 특별했습니다. 
그들은 ”총기 사고 피해자의 장례식을 찾아온 목사님은 처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을 반기는 건, 동네 아이들입니다. 
그래서 옆집 꼬마에게 한국에서 사온 선물을 나누며, 사랑을 표현해 봅니다.
 
죄인 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친구가 되어 주신 예수님처럼,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어 준 이태후 목사는 지금도 이들과 함께, 변함없이 [좋은 이웃]이 되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이 받기”를 원하고, “더 많이 누리는 것”을 [성공]이라고 말하고,
“더 좋은 집“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더 좋은 차“를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죠. 
예수님은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 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때, 선물 받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죠. 
남편이 아내에게 자동차를 선물을 하면, 누구나 좋아합니다. 
 
그러나 새 차를 받았을 때, [6개월 정도]까진 기분이 유지되지만,
그런데 [1년]이 지나도 새 차를 보면서 싱글벙글하는 분들은 ”[정신 상담]을 받으셔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주는 기쁨에는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유효기간]은 어떤 거는 일주일이고, 어떤 거는 육 개월이나, 길어야 일 년이라”고 해요.
 
그런데, 오늘의 말씀처럼, 강도 만난 이웃에게 베풀었을 때, [내가 받는 기쁨]에는 “따로 유효기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2006 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동네 아이들에서 [여름 캠프]를 하고 있는데,
올 여름에 저희 캠프에 처음 온 여자 아이가 있었어요.
제가 매주 수요일 날 아이들을 데리고 수영장에 가는데, 저희가 스쿨버스를 가지고,
아이들을 한 시간 떨어진 [주립공원]을 데려갑니다.
 
그런데 이 아이의 표정에는 “그냥 수영장에 가나 보다.”이지만,
막상 수영장에 도착하면, 입이 딱 벌어지고, 눈이 동그락게 뜨면서 아주 기쁜 표정을 하는데,
저는 그것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기쁜 미소]와 [밝은 표정]은 “자기가 상상한 것보다도 더 좋은, 너무 좋은 곳이라“ 놀래는 것입니다.
저는 평생 이 아이들의 표정을 떠올릴 때마다, 힘이 생기고, “이게,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구나”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어느 날에는 [투명 인간]들이 있는 거 아시죠.
여기서 [투명 인간]이란 투명해서가 아니라, 내가 관심이 없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눈]이 “나보다 잘 사는 사람”에게만 향하고, 나보다 성공한 사람에게만 맞춰주면, 
우리 틈새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런 분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 분들이 어떤 사람인가요? 그들은 ①새터민들, ②중국 동포들, ③외국인 노동자들, ④일용직 사람들,
⑤쪽방 촌 사람들, ⑥서울역 인근에 있는 노숙자들, ⑦독거노인들, ⑧싱글 맘들 ⑨장애우 들을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들이 보입니다.
 
여러분이 영생을 얻고 싶으시다면, 새해부터 [주님의 말씀]과 같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십시오.”
그때, 내 삶의 한가운데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