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요6:1-15) 2022.12.27

다이나마이트2 2022. 12. 28. 16:27

40일 새벽기도[16일차]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요6:1-15)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 아침에 어린 아이와 함께 찬양하는 걸 보면서, “참 행복하다.”고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우리가 행복할 때는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행복을 누리다가 갑자기 [불행]이 닥치면, “그 때서야 내가 살아왔던 것이 행복이었구나”라고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나에게 찾아온 불행이 나를 깨닫게 하여,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고,
상처와 아픔이 감사와 기쁨으로 변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40일 새벽기도]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심을 확신하기 위해서,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휩쓸려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고, 거기에 ”검증된 약속“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역사 속에서 분명히 검증되었고, 이루어졌기 때문에 [진리]“입니다. 
 
누군가 ”그 존재가 어떤지?”를 알려면, 그 사람이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소개했는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소개]가 “그의 삶과 말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이 다 정확하게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고, 그러한 표적도 동일하게 일치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역사의 중심]이시고, 또한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삶 속에 놀라운 변화를 나타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책]을 한 권도 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많은 책의 주제가 되셨고, 예술 작품도 하나도 남기지 않으셨지만, ”가장 많은 주인공“이 되셨습니다.
 
이 세상에 만들어진 음악이나 예술이나, 법과 제도도 성경에 나타난 것을 보면,
”하나님의 역사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니까,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것입니다. 
 
역사상 이렇게 많은 영향력을 끼친 인물은 [오직 예수님] 한분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기념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메모리얼 데이]는 남아 있지만, 그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고, 계속 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분이 육신으로 살아계실 때보다도,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에,
역사에 미친 영향력이 훨씬 더 크고, 그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탁월함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유일한 길이요, 유일한 진리요, 유일한 생명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사람들에게 성경을 읽으려면, ”[요한복음]을 먼저 읽으십시오.”라고 권면하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을 바로 알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요한복음]에 “예수님의 자기소개”와 “그 표적에 대한 의미”가 잘 설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요한복음 6장에 있는 우리가 잘 아는 [오병이어]의 표적입니다. 
예수님은 6장 전체를 통해서, 이 사건에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1절에서 15절에 보면, 예수님은 세 마디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 장소에 모인 사람은 5천여 명이고, 그 많은 사람을 먹이시려면 아주 어렵습니다.
 
오늘날에도 5천 명이 모이려면 어마어마한 숫자인데, 그 당시에 5천 명이 모였다고 하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1) 거기서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우리가 어디서 빵을 사서, 이들을 먹이겠는가?”라는 질문에, [빌립]은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빌립]은 이 많은 사람들을 다 먹으려면, 200 데나리온 어치가 있어도 부족할 거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잘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지금 어디에서“라고 질문했는데, [빌립]은 ”얼마나 될지?“를 대답했어요.
그러니까 [동문서답]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죠. 
 
예수님은 ”어디에서 빵을 사 서 먹이겠느냐?“고 물었는데,
빌립은 ”얼마나 듭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묻는 말씀에 ”엉뚱한 답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답]을 듣기도 전에, ”그것은 안 될 거야, 불가능한 일이야“라고 부정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2)두 번째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이 모든 사람들을 앉게 하라.“는 것입니다.
 
[빌립]이 사람들을 다 먹이려면 ”200 데나리온 이상이 듭니다.”라고 했으면, 
예수님은 “그래, 그러면, 이 사람들을 모두 다 돌려보내라.”고 말씀을 해야 옳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래, 모두들 앉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때에, 어느 한 소년의 도시락으로 가지고 온 [오병이어]가 등장합니다. 
 
이 [상황]은 정말 제자들에게는 “너무나 난감하고 황당한 상황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 [오병이어]를 가지시고,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에,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했을 때,
그 때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기적]은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그것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들었고, 
그 사실이 역사에 남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능력이 알려졌다.”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세 번째 말씀은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모두를 배불리 먹이신 이후에 하신 말씀에 “그 앞에 모든 기적의 의미가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6장 12절의 말씀을 우리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이 모두 배불리 먹은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은 것은 하나도 버리지 말고 모아 두라.”(요6:12)
 
우리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배불리 먹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그것은 엄청난 놀라운 기적보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설명해 주는 말씀이기에,
더 많이 놀랐고, 다시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두가 배불리 먹은 뒤에, 이제 여기저기 먹다 남은 음식들이 널려져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도 남기지 말고, 남은 것은 다 모아두라.“고 말씀하십니다.
 
[개정 번역]에서는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주시려고 할까요? 
①첫째로/ 예수님의 기적으로 만들어진 빵과 물고기는 [기적]이라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서 나타난 빵과 물고기지만, ”자연과 하나가 된 빵과 물고기“라는 겁니다. 
 
이 [재료]들은 버려두면 썩어 없어지는 것이지만,
지금 5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 만들어진 빵과 물고기는 신기루처럼
그냥 사람들의 마음이 육신을 잠시 배부른 것처럼 만든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가 자연 속에서 경험하는 빵과 물고기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모든 표적은 “자연 법칙을 무너뜨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기적을 일으키려면, “자연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만,
이런 [초자연의 기적]에도 예수님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법칙을 무너뜨리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연과 하나가 되어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기적, 그 자체”는 [초자연]이지만, “초자연이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기록되어 있는 모습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탄생]을 보더라도 그 해산의 과정에서 모든 생명들이 어머니의 모태에서 그 생명이 자라나듯이,
똑같이 경험하게 하시고, 아기 예수가 탄생했습니다.
 
또한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을 때, 똑같이 [물]의 성분인 “H2O 성분”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니까 [모래]를 가지고 포도주를 만드시거나, “[돌]을 가지고 [빵]으로 만들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보시는 것 같이, ”빵을 빵으로“, ”물고기를 물고기로“ 만드셨습니다.
그 모든 것에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시고, 하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담겨 있습니다. 
 
버려지는 것이 썩어 없어지고, 만드신 것들을 버리지 않게 하는 그 [절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초자연적인 기적 너머에,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목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행을 바랄 때는 ”심지 않고 거두는 것“을 추구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법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심은 대로 거두는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하나도 남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배부름 속에 찾아오는 [영적 위험]을 경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배부름]을 주시기 원하지만, ”그 배부름이 주는 풍족함 속에는 위험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에도 제가 어릴 때에, [새마을 운동]이 있었고, 그 노래가 마을에 울려 퍼졌어요. 
”잘 살아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인데,
정말로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절실한 부르짖음”이었어요.
 
또 한편으로,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세“라는 노래를 부르며,
그렇게 열심히 [가난]을 극복하던 시대가 있었는데, 어느 덧, 그런 노래는 다 사라져버리고, [노사갈등]만 남게 되었어요.
 
지금의 젊은이들은 잘 모르지만, 우리나라에도 60년대 말에, ”그런 [배고픔]으로 국민들이 하나로 뭉친 시대“가 있었어요.
 
그런데 사실 그때부터 위기가 온 것이죠. 
나라가 [배고픔]은 이겼지만, [배부름]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호세아 13장 5-6절 말씀도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권고하였거늘 저희가 먹이운 대로 배부르며,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호13:5-6)
 
이 말씀은 “배부름이 주는 영적 위험과 교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배부름]으로 하나님을 잊는 것이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을 지적합니다.
 
이것은 [배부름]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자기의 능력으로 되어졌다.“는 교만한 생각이고,
”그 결과로,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홀로 사는 사람“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의 마무리에, 6장 15절을 보면, ”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강제로 왕을 삼으려 했다.“는 말씀이 나오니까
예수님은 말없이 혼자서 다시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사람들이 왜, [왕]으로 삼으려고 합니까? 
사람들의 생각에는 예수님만 있으면 농사지을 필요도 없고, 공장 지을 필요도 없고, 
이런 기적을 일으키신 분이라면, ”이런 분이 왕이 되면 걱정이 없겠다.“고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6장 26절에서 이렇게 지적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까닭은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요6:26)
 
이렇게 ”예수님을 찾는 동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진정 유일한 길이요, 진리이고, 생명이시기 때문에, 믿고 찾는 사람도 있지만, 
예수님을 [요술 램프]처럼, 마술의 방망이처럼,
내가 원하는 걸, 채워주는 그러한 도구로 예수님을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9절에 보면,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그들의 신은 [배]요. (여기서 [배]는 육체의 욕망, [배부름)을 가리킵니다.) 
그들의 영광은 자신의 수치에 있으며, 그들은 땅의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빌3:19)
 
그들은 잘못된 신앙으로, “[내 문제], [내 필요], [내 욕심]만을 해결해 주는 예수님”을 찾고 있으니,
확실히 그들은 “땅의 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고, 구세주가 되어야 하고, 나의 길이고, 나의 진리이고, 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우리는 “배부름이 주는 영적 교만”을 생각하면서, 올바로 믿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