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부요한 지혜 (롬11:25-36) 말씀: 이재훈 목사님
하나님께서 죄인인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놀라운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역사 속에서 언제나 [일]을 하고 계십니다.
역사가 [BC]와 [AD]로 나누어진 것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구분“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그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비밀]이라는 단어로 표현하였습니다.
▶여기서 [비밀]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비밀]이란, 영원히 감추어져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소수의 사람들만 아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 [비밀]이라는 것은 한 때는, 모든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감추어져 있었으나,
이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도록 “공개된 공적인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비밀]이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로 만들어진 구원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로마서 11장]에서, 3단계의 사슬처럼 나타나는 역사의 움직임을 설명합니다.
[9장]을 시작하면서,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가지고 안타까워하며,
자신이 저주를 받을지라도 동족 이스라엘이 구원받기를 바랐습니다.
[10장]과 [11장]을 시작할 때도 동족 이스라엘을 향한 간절한 구원을 기도하고 열망했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의문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이 불리하신 것 아닌가?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인가?
”하나님의 선택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어떻게 되는가?“라는 [의문]을
사도 바울은 ”성령 안에서 세 단계의 사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부여하신 [지혜]를 나타냅니다. 지난주 말씀을 다시 복습하면,
(1)첫 번째 축복의 사슬은 이스라엘에서 이방인에게로 이 복음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원가지들이 부러졌는데, ”이방인들이 돌 올리브 나무에 [접붙임]을 통해,
감람나무가 되어 원가지로부터 영양공급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이스라엘에 불신앙이 있었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스라엘의 완악한 불신앙으로 인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2) 두 번째 축복은 “이방인에게서 다시 이스라엘에게로 복음이 전파되는 일”입니다.
그 가운데 유대인들 가운데 [시기심]을 일으키고, 이 [시기심]은 부정적인 죄악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선한 시기심이라”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땅한 축복이고, 받아야 하는 은혜를 다시 갖고자 하는 것이기에 [거룩한 시기심]입니다.
(3)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세 번째 축복의 사슬은 “이스라엘에게서 다시 이방인에게로 퍼져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아직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려운, “미래에 대한 예언적 고백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에서 먼저 시작된 [복음의 역사]를 먼저 택함을 받은 민족이 불신앙으로 인해 넘어져 있을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확산되게 하시고,
또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확산되므로 다시 유대인들에게 복음이 들어오게 하시고,
그들이 구원을 받음으로 다시 이방인에게로 확산되는 “역사의 발전 단계”를 나타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고, “놀라우신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인해서 실패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택한 모든 사람은 구원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인해, “결코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완악함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단지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도 남은 자들만 하나님이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의 결코 실패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이스라엘 넘어짐으로부터 시작해서 이방인의 충만한 구원으로 이루어지고,
다시 그 이방인의 충만한 구원은 이스라엘의 부유함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 11장 25절 후반부에서 26절 전반부까지 말씀에 나타나는데, 우리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 [비밀]은 이방 사람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 가운데 일부가 완악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롬11:25-26)
이방 사람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일부가 완악하게 되어 있지만,
“그 과정을 통과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분명한 것은 [사도 바울]은 지금 현재, “이스라엘의 완악함이 계속해서 예수님 오실 때까지
그렇게 고착되어서 불신앙 가운데 대다수가 구원받지 못하는 그런 민족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23절의 말씀 보시면, ”또한 그들이 불신앙에 머물지 않는다면, 다시 접붙임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접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롬11:23)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장차 이스라엘의 구원의 때가 있을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24절에서 26절을 보면, ”원가지들이 [접붙임]을 받아,
장차 이스라엘에 구원의 때가 있을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가능성]만이 아니라, [개연성]을 넘어 [확실성]으로 말하는 것은
”여기에 성령의 감동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온 이스라엘]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이것은 인종적으로 이스라엘의 전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죽으셨지만,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는다.“고 성경은 말하지 않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왜, 그런가요?
그것은 인간의 완악함 때문입니다.
인간은 ”끝까지 거부하는 이들“이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옥이 있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모든 사람이 다 믿지는 않고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온 이스라엘이 구원 얻으리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태어난 모든 유대인들이 다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니라는 거죠.
그렇게 [완악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긍휼로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32절의 말씀에,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가운데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를 베푸시기 위함입니다.“”(롬 11:32)
이스라엘이건, 그 밖의 이방인이건, 모든 사람들은 불순종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불순종하는 이들에 대하여 긍휼로 대하십니다.
심판과 형벌은 이 [하나님의 긍휼]을 “끝까지 거부할 때”, 주어지는 겁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지만, 긍휼을 베푸시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 [긍휼]을 영어로는 Mercy, [은혜]는 Grace입니다.
▶이 차이는 무엇입니까?
[긍휼]은 마땅히 받아야 할 대가를 치르지 않게 해주시는 겁니다.
인간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게, [은혜]가 아니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입니다.
그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거두시도록 해주는 것이 [긍휼]입니다.
▶그렇다면, [은혜]란 무엇입니까?
마땅히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 이전”에 우리에게 먼저 주어지는 것이 [긍휼]이고,
하나님의 긍휼이 있기에, 우리가 은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죄를 정복하실 수 있게 하셨다.”는 거예요.
[은혜]는 [죄]에 정복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는 [은혜]에 정복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불순종이 긍휼하심을 입고,
우리의 죄가 은혜에 정복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36절의 말씀은 너무나 중요한 신앙 고백입니다.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인해 있고, 그분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분에게 영광이 있고, 영원토록 있기를 빕니다.“(롬 11:36)
만물이 그분으로 인해 있고, ”그분이 세상을 통치하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말씀이므로,
그러므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이 돌려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의 삶과 역사에 적용한다면,
“나의 삶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 재능이건 외모건 성품이건 재물이건 어떠한 그 모든 권한도
모두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께서 유지하고 계신 것이며,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어야 한다.”라는 것이 [로마서 11장]의 결론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과 덧붙임을 받아서,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우리의 삶이 이어져야 하고,
우리의 모든 삶의 목표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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