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손 내미시는 하나님 (롬10:14~21) 2022.11.20

다이나마이트2 2022. 11. 20. 18:10

손 내미시는 하나님 (롬10:14~21)  말씀: 이재훈 목사님
 
[로마서 9장]은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에 대한 말씀이고,
오늘 [로마서 10장]에서는 그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인간의 책임, 곧 [믿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불신앙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응답하지 않는 불신앙을 안타까워하면서,
그들이 구원받기를 바라는 [바울의 소원]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소개할 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하나님”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러나 은혜와 진리가 인간의 경험과 판단으로는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은혜 없는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 없는 은혜만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습관이며,
“인간의 생각으로는 그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 마련이다.”라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진리가 하나가 되듯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예정하심과 인간의 책임은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인간이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적인 인간의 책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심판받아 마땅한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이루어주셨기 때문이고,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믿음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이기에,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인간 자신의 책임인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럴까요?
인간은 스스로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의]를 거부한다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주 본문의 마지막 말씀인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것이다.”(롬10:13)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며 나아간다면,
“의에 이르고,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사람들은 [자기 의]를 내려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데, 그 이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첫 번째로/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자 되시는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여기서 “부른다.”는 것은 믿음의 가장 중요한 표현입니다. 
그것이 [믿음]인데,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상황은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시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우리 자신이 해야 합니다. 
 
(2)두 번째로/ “들어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들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누구나 “듣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이 말씀에 감추어진 의미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신다.“는 겁니다. 
 
성경의 말씀에는, ”빨간색으로 강조하여 표시한 것“이 나오는데, 그것이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빨간색 글씨가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으로, 우리가 그 말씀을 믿을 때, 
”주의 이름을 부르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을 알았던 사람들이 “예수님에 관하여 자기가 경험한 예수님에 관하여 기록한 전기”가 아닙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으로,
그 말씀을 대할 때는 [경외심]을 가지고, “나에게 하신 말씀”으로 받아 드려야 합니다.
 
그 말씀을 믿을 때, 우리는 놀라운 [구원을 경험]하고, 
그 말씀 앞에 믿음으로 응답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들음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어떤 사상이나 철학 체계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예수님 자신을 믿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성경을 통해 직접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납니다.”(롬 10:17)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경외심을 가지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려고 할 때, 살아계신 예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되기 위해서는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들려지도록 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때, 우리에게 전파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일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의 구원을 “우리가 책임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책임은 단지 “전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운명을 우리가 좌우한다.”는 생각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또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보냄을 받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누가 보냅니까? 보내는 분은 [하나님]이 보내십니다. 
 
그런 분들을 [사자], [메신저], [대사]라고 하는데, 자기 스스로가 임명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느냐?”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공동체]입니다.
 
“어떤 공동체에서 보냈느냐?“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분별해 줄 수 있습니다. 
복음 증거를 위하여 파송하는 일이 교회의 중요한 책임이므로, 교회가 선교사를 보내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파송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누군가 ”나에게 말씀을 전해주는 이“가 있었기 때문에, 그 [복음의 말씀]이 나에게 들렸기 때문이고,
또 ”그 말씀을 전해준 이“가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올림픽의 하이라이트가 [마라톤]인데, 이것은 ”승리의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 군대가 페르시아 군대와 싸워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
그 전투가 벌어졌던 도시, ”[마라톤]이라는 지역“에서 [아테네]까지 달려와서,
그 소식을 전하고 죽었던 그 병사를 기억하는 경기입니다.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세상에 구원이 임하였다는 그 승리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보냄 받은 선교사님]들이 복음의 마라톤을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포기하지 않고, 손을 내밀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그 하나님의 손을 잡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의 손]을 잡지 않는 것은 “인간의 완악함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구원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인간 자신의 책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손을 계속 내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제, 그 손이 거두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인간의 [완악함]은 무엇일까요? 
①들려와도, 듣지 않으려고 하고, 
②들려와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③받아들이는 것 같아도, [자기의 의]로 그 말씀을 거부하는 경우이지요.
 
그러므로 인간이 구원받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고, 
또한 구원받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인간 자신의 책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해야 하고, “손을 내미시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하나님의 통로가 되기 위해, 헌신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