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예정 신앙 (롬9:1~18) 2022.10.30

다이나마이트2 2022. 10. 30. 19:49

예정 신앙 (롬9:1~18)  말씀; 이재훈 목사님
 
[신앙]은 언제나 극단으로 치우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런 극단적인 신앙에 빠지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에 대한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예정에 상관없이,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도께로 올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복음을 전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동족 이스라엘 민족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동족 이스라엘의 불신함으로 인하여, “마음속에 큰 근심과 끊임없는 고통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을 ”성령 안에서 자신의 양심이 증거하고 있는 진실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고 할지라도,
소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 받으신 예수님의 마음과 같습니다.
바울이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인하여 고통을 느낀 이유는 ”단지 혈연관계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통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토록 영광을 받으실 그리스도께서, 동족 이스라엘을 통해 태어나셨지만,
정작 그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한 이 사건은 많은 의문을 만들어 냈습니다. 
 
▶동족 이스라엘은 이렇게 버림받은 민족으로 끝날 것인가? 
▶왜, 먼저 선택을 받은 민족이 이러한 불신앙에 처하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가? 
이렇게 불신앙에 빠져 있는 동족 이스라엘에 대한 의문을 두 가지 던지면서, 
그 대답을 통해서 하나님의 [예정 신앙]을 세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질문]이 나옵니다. 
그 [질문]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이 파괴되었는가? 
----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다.“라는 대답입니다. 
 
9장 6절의 말씀이 그 [대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파괴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이스라엘이 아니고,“(롬9:6)
 
여기에 ”이스라엘에게서 난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이스라엘이 아니다.”라는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이스라엘의 불신앙“의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파괴된 것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상황이 이루어진 것입니까? 
 
그 [대답]은 ”이스라엘에게서 난 사람이라“고 해서, ”다 이스라엘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폭넓게 사용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어떤 의미일까요? 
때로는 동족 유대인만 가리키고, 때로는 이방인까지 포함하고, 때로는 교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두 가지 역사적인 사례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서 난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이스라엘이 아니다.”라는 대답을 보충하여 설명합니다. 
 
(1) 첫 번째 사례는 아브라함의 두 자녀, “[이스마엘과 이삭]의 예”입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모두 아브라함의 육신의 자녀이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진정한 후손으로 칭한 것은 [이삭]뿐입니다.
 
그것은 [이스마엘]이 여종의 신분에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약속을 따라 태어난 자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윤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스마엘]도 분명히 아브라함이 육신의 자녀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책임 있는 아버지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약속을 따라 태어난 [이삭]만이 아브라함의 자녀라고 불릴 수 있었습니다.
 
[이삭]이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삭]이 태어났기 때문에, 약속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이삭이 태어난 것이므로, [이삭]은 “약속으로 인해 태어난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해서, 다 이스라엘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고,
▶진정한 이스라엘은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그것은 ”약속을 따라 태어난 자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 두 번째 [사례]로, “이삭의 두 자녀, [에서와 야곱]의 예입니다. 
 
10절에서 13절의 예입니다.
①첫 번째 예는 ”약속을 따라 태어난 자녀들이 진정한 이스라엘이다.”는 것이고, 
②두 번째는 “약속과 또 다른 차원의 중요한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11절- 12절의 말씀에, ”그 자식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고, 또 어떤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인하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분으로 인해, 서게 하시려고
리브가에게 말씀하시기를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롬9:11-12)
 
중요한 것은 “택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선택을 통해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①첫 번째는 “약속을 따라 태어난 자녀들”이고,
②두 번째는 “하나님의 선택을 통해 부르시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예]로서, 리브가의 배 속에 태어난 쌍둥이 자녀, [에서와 야곱], 
한 어머니의 한 배 속에서 태어난 [에서와 야곱] 가운데서,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13절에,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미워하셨다.“는 말을 문자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이 말은 ”감정적인 미움“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미움]이라는 부정적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 밖에 영역은
”마치 미움처럼 여겨지도록 우선순위 밖에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택 이전에,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의 결단 이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리브가]의 두 자녀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그들이 어떤 선이나 악 어떤 행실을 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이 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정 신앙]이 나오는 겁니다. 
▶ 그럼, [예정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나의 구원이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따라,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과 부르심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나의 선함과 의로움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에 근거하기 때문에,
”우리가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 
최근 저도 기억력이 급격히 쇠퇴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분명히 내가 해놓고도 ”안 했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따라,
”내가 부름을 받았고, 택함을 받았고, 구원받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나를 부르신 분이 나를 미리 정하셨고, 
”미리 아시는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선택과 결정과 판단을 마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더 의미 있게 중요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정 신앙]이란? 
세상의 중심이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어떤 선택이 돼야 합니까? 
그것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분,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도 전에 나를 향하여 가장 좋은 길을 아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가는 것이 참된 인생이라고 믿는 것“, 이것이 [예정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예정 신앙]은 무엇입니까?
세상은 내가 하기 나름이 아니라, ”하나님 하시기 나름이라는 걸, 믿는 것“입니다. 
나의 선택과 판단 이전에 나를 미리 아시고 택하시고 부르신 분이 계시기에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이며, 그리고 그것이 ”나의 인생의 의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예정 신앙]인 것입니다. 
 
세상의 중심이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세상의 중심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모든 것을 아시고,
나를 부르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걸 인정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정 신앙]이란, 
하나님의 완전하신 성품을 따라, ”일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선택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하심에 따라 좌우된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예정 신앙]이란? 
하나님께서 완악한 자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시고,
“그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신다는 걸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책임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완약한 인간을 하나님은 구원하시고, 이끌고 계십니다. 
 
지금 [바울]이 동족 이스라엘을 향해서 내가 저주를 받을지라도,
“그들이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간절한 [선교적 열망]을 품고 있으며,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고통스러워하고, 헌신하는 모습을 배울 수 있습니다.
 
[로마서 9장]에 나타난 바울의 신앙 고백은 우리의 선택 이전에 하나님의 택하심이 있었고,
우리의 믿음 이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고, 그리고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선택을 통해서 하나님이 뜻을 이루어간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정 신앙]은 “운명론”이 아닙니다. 
[예정 신앙]은 우리의 모든 자율권과 선택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정 신앙]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모습이고,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이런 [예정 신앙]을 마음에 품고,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서 우리가 함께 헌신하고 더 결단하는 모습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