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도우시는 성령님,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8:26-30)2022.10.16

다이나마이트2 2022. 10. 22. 20:45

도우시는 성령님,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8:26-30)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요즘 우리가 공부하는 [로마서 8장]은 성도들이 받은 ”구원의 확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완전한 구원이며, 하나님께서 그 구원을 보증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종교개혁자]들은 “성도의 견인이라”고 하고, 교회의 [교리]로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로만 캐톨릭은 이 [교리]를 강조하지 않고, 믿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만일 캐톨릭에서 이 [교리]를 강조하고,
이것을 알리면, “어쩌면 캐톨릭의 체제가 위협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성도의 견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진정으로 [거듭난 성도]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도록, 떠날 수 없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는 이를 증거하기 위하여, [성령님]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받는 [구원의 확신]에서 성령님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8장에서 구절마다 [성령님]이 등장합니다. 2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오고,
5절에서는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이 나오고, 9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영”이 나오고,
11절에는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 살리신 분의 영”이 나옵니다.
 
이렇게 “우리가 받은 구원”이 [완전한 구원]임을 확신할 수 있도록,
“성령님이 도우시고,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 [성령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심으로, 우리가 받은 [구원의 확신]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 십니다. 
 
▶여기서 ”우리의 연약함“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많은 영역에서 나타나는데, 육체의 질병이나, 마음의 아픔과 낙심도 우리의 연약함이 지만,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연약함]이란 ”마땅히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모르는 [연약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한 이성은 기도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묶여서 기도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비록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마땅히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우리는 기도할 수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을 살피셔서,
”우리가 마땅히 구해야 할 것을 구하도록, 도와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잘 모른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고, 
이런 [연약함]이 도리어 “하나님의 자녀 됨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셔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 것”이고, 진짜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을 돕는 두 분이 계시는데, 한분은 [예수님]이고, 또 다른 한 분은 [성령님]입니다. 
 
①먼저,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곁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돕는데,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도우시는 분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지 않도록,
우리를 변호하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심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②그리고 [성령님]은 “우리 마음속에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엄밀히 말하면, [성령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도우시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대신하여 도우시고, 
[성령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도우심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가 마땅히 구해야 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심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가 고난 가운데 기도할 수 없을 때, 또 무엇을 기도해야 될지 모를 때,
성령님께서는 친히 탄식하시며 간구하십니다.
 
마치 스스로 호흡할 수 없는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끼고 호흡을 염려하듯이,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을 때,
그저 하나님의 이름만 부르고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그 신음까지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읽으시고, 들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이 지상에 계실 때, 많은 기도를 통해 아버지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도하셔야만 했다면, 우리는 얼마나 기도가 필요한 존재일까요. 
이와 같이 우리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기도함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을 누림으로써 “구원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8절의 말씀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그분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는 줄 압니다.”(롬 8:28)
 
이 말씀은 아주 유명한 구절이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그 말씀 자체가 위안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은 결코 아닙니다. 
 
그 앞에, 특정한 [대상]이 규정되어 있는데, ▶그 [대상]은 누구입니까?
그 [대상]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다 보면, 잘 될 거야”라는 [낙천주의]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지금은 어렵지만 다 좋게 된다.“는 세상적인 긍정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에게만 ”모든 것이 합력할 선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문장만으로 보면,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인생의 모든 일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깔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저절로 선을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곳에서만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선]은 뭘까요?
여기서 의미하는 [선]은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이 모든 것 안에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완전한 믿음]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현재에서 불투명한 미래로 가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미래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소망은 ”현재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지만,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소망은 ”확실한 미래에서 현재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을 체험하도록 도우시는 분은 [성령님]이고, 그 성령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도우심으로,
우리 안에 거룩한 역사가 만들어 지고, 날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나고,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기도 가운데서 이런 [구원의 확신]을 느끼며,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더 깊이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