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성령께서 이끄시는 교회 (롬8:12-17) 2022.10.02

다이나마이트2 2022. 10. 2. 17:12

(온누리교회 37주년 기념 주일: "다시, 선교에 목숨 걸겠습니다"

2022년 10월 2일 온누리교회 신문 이다. 아침에 이 사진을 보는데 그렇게 눈물이 날 수가 없다. 

이런 보석 같으신 분들이 계셔서 오늘 온누리교회가 37주년 기념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너무나 감사하다.

나도 한남동 기도 모임에 여러번 참석을 했지만 이런 감동이 있는 날도 있다.

김낙웅 목사님, 황종연 목사님, 이동훈 목사님, 황재규 장로님, 최선수 장로님, 김제은 목사님, 고이을용 장로님, 이시영 장로님, , 주홍종선교사님/ 최희선 선교사님, 전용국 선교사님/ 아내, 아이둘 (아마 전 선교사님 필리핀 파송 기념으로 사진을 찍으신 것 같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교회 (롬8:12-17)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은 우리 교회의 창립 37주년을 기념하는 [창립 기념주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동안 지난 교회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손길을 발견하고,
또 미래를 향하여 새롭게 헌신하는 주일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교회”의 비전이 있는데, 요즘 [로마서] 강의 중에
이어지는 본문이 “교회의 정체성과 비전을 잘 보여주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로마서 8장 14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롬8:14)
 
예수님께서 꿈꾸시고,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교회“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교회가 성령께서 이끄심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여는 그런 순간들이 소개하려고 합니다.
 
창립기념 주일을 맞이하여, 과거 신문사에 있는 과거의 사진들을 되돌아보면서,
그런 순간들을 뒤 돌아 보면, ”1992년 하용조 목사님께서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오셔서, 성령사역을 선포할 때,
그 때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고, 성령 충만한 성령의 임재를 느끼게 해준 시절이었다.”고 회고합니다.
 
그후, 1994년에 하목사님께서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2천 명 선교사를 파송하고, 1만 명의 사역자를 키우자.”는 [2천1만 비전]을 선포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도 본당에 성도들이 꽉 차는 그런 상황도 아니었는데,
“한 교회가 이천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자”는 음성을 들으셨을 때,
사실 인간적인 생각으로나, 이성적인 계산으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2018년에 누적 선교사 파송 숫자가 2천 명이 넘어섰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시며, 성령께서 이끄시는 교회가 될 때,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뛰어넘는 역사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함께 경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인 [니고데모]에게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삶”을 [바람]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8절의 말씀에,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듣지만,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한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도 모두 이와 같다.”(요3:8)
 
흥미롭게도 [바람]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영]이라는 단어와 동일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바람]으로 번역하고, 때로는 [영]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바람]은 “영적 생명력”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님께서 강림하실 때도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람 같은 성령의 역사”는 우리가 저항할 수 없는 그런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바람]은 형체가 없고,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바람]은 어떤 장벽을 쌓아도 바람의 진행을 막을 수 없습니다. 
[바람]은 바다를 건너기도 하고, 지나가는 바람을 막을 수 없고, 묶어둘 수 없습니다. 
 
과학이 발전한 이 시대에도 바람의 흐름을 따라가며 관찰할 뿐이지, 이 지구 대기에서 부는 이 바람을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바람의 자유함]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은 아무 하는 일 없이 부는 것 같지만, 바람의 유익한 면은 ①시원함을 주기도 하고, ②공기를 정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③바람으로 인하여 많은 꽃들이 수정하기도 하고, 씨앗이 숙성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④바람은 넓은 밭에 이삭을 여물게 하고, ⑤소나무의 솔방울을 굵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설명해 주는 단어로 예수님께서 [바람]을 선정하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자유롭게 역사하시나, 아무렇게나 일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이루시고자 하는 법칙에 따라 인도하시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살 때, 
우리는 바람처럼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어, 어디로 갈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성령의 바람]이 우리를 인도하실 때,
때로는 우리가 알지 못하여 불안해 할 수 있지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온누리교회의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면, “바람처럼 움직이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존재했다.”고 회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또 [성령의 바람]이 움직이시는 대로, 성령님이 이끄시는 대로,
“성령과 함께 움직이는 공동체”로 나가야 합니다. 
 
[교회]는 기관이 아니라, 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기관]은 문화를 보존하지만, [운동]은 문화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문화를 창조하는 교회”로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가 보지 못하고, 이 시대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보여줄 수 있는 교회로 존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저는 “교회의 세 가지 특징”에 대해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첫째로/ 교회는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훈련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8장 12절- 13절의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아야 하는 육신에 빚진 사람이 아닙니다.
만일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지만,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롬8:12-13)
 
▶우리가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몸의 행실을 따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은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몸의 행실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던 햇수가 “나의 성숙을 보증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때, 반드시 있어야 되는 것은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육신의 영역”에서 “성령의 영역”으로 옮겨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모든 양육은 곧 [훈련]입니다. 
그리고 그 [훈련의 목표]는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이런 시각에서 보면, [교회]는 “영적인 체육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육체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 몸을 강하게 훈련을 하듯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 ---- 옛 성품을 끊어내기 위해서, [훈련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거듭해서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 위에서, “거룩한 습관이 형성되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훈련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 모든 양육과 모든 만남을 통해, 우리의 목표는 “죄를 죽이는 것”입니다. 
 
역사상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몸의 행실을 죽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①첫 번째 부류가 “수도원 운동”이고, 사회와 벽을 쌓으며 단절하고, 분리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가 발견한 것은 “그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②두 번째 부류는 [율법주의]적인 여러 규칙을 만들어서, “고된 규칙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경건한 신앙]은 기쁨을 거부하고, 웃어도 안 되고, 박수 쳐도 안 되고,
심각한 표정으로 있어야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율법주의]에 빠진 것입니다.
 
▶여기서 “죄를 죽인다.“는 게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죄로 향했던 ”우리의 마음의 동기가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죄]가 재밌지 않고, ”없어도 되는 것“으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성령의 일]을 생각하며, 죄를 짓지 않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1대 1 교육], [큐티 나눔방], [예수 제자학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훈련해야 하고, 이런 사역들이 한마디로 요약하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훈련“입니다. 
 
(2)두 번째는/ [교회]는 ”아버지와 친밀함을 나누는 [가족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15절- 16절의 말씀을 우리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다시 두려움에 이르게 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 [영]으로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롬 08-15-16)
 
[성령]은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라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우리는 [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들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아바]라는 단어인데, “그냥 [아버지]가 아니라, [아바 아버지]라는 친밀한 관계”를 말합니다. 
 
▶[아바, 아버지]가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말로는 [아빠]라고 부르는 [가족 공동체]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이는 [가족 공동체]입니다.
 
▶교회에서 “자녀 됨의 축복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친밀함을 누리는 곳입니다. 
 
“단지 하나님을 믿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아무 거리낌 없이 도움을 청하는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친밀한 관계]가 되려면, 혼자서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이 가족 공동체 안에 돌봄이 없이 자라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고아일지라도 가족과 같이, 기댈 수 있는 어떠한 관계가 있어야, 그 영혼이 건강해 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립 37주년을 맞이해서 우리 성도들에게 제가 권고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은 반드시 어디든지, [소속]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조직적인 관리]를 위해서 속해 있으라.”는 게 아니라, 
“함께 [아바 아버지]를 경험하는 영적인 공동체“를 경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3)세 번째로,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는, [선교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17절의 말씀에, “우리가 자녀이면서, 또한 상속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그분과 더불어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가 됩니다.”(롬8:17)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고난이고, 또 우리에게 상속된 “예비 된 고난이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선교 공동체]로 성장해 왔습니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하는 [두란노 선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는 대부분이 온누리교회 성도들입니다. 
 
그렇게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배경에는 ”온누리 교회가 사도행전적인 교회의 모델을 보여 주었고,
온누리교회의 성도들의 선교적인 헌신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온누리교회가 몸집만 커지는 교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로 존재하면, 안됩니다.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복음을 전하는 선교공동체로 존재해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37년의 역사를 간직하였지만, 그래도 30년 전에 [두란노 선교회]를 세웠기 때문에,
우리의 교회 비전이 가능했다“고 생각하며, 우리 모두가 계속해서 [선교하는 교회]로 매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