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성령 안에서의 자유 (롬8:1-11) 2022.09.18

다이나마이트2 2022. 9. 18. 22:16

FA 9명 파송 2022.09.18

성령 안에서의 자유 (롬8:1-11)  말씀: 이재훈 목사님
 
[로마서 8장]의 말씀은 로마서 전체 말씀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서신서 중에서 “보석 중에서 진주와 같다.”고 비유했기 때문입니다. 
음악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로마서 8장의 말씀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의롭게 된 자들에게 영원한 안전함이 있다.”는 주제를 가지고, “예수, 나의 기쁨이라”는 [칸타타]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구원]이 단순한 추측이나 소망이 아니라, [구원]은 영원하고 완전하며, 최종적인 구원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절에,  ”그러나 이제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롬 08:01)는 말씀이 있습니다. 
 
▶왜, 정죄 받지 않습니까? 그것은 2절에 그 [대답]이 나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죽음의 법]에서 여러분을 해방했기 때문입니다.“(롬 08:02)
 
이런 확신은 [로마서 7장]에서 살펴본 ”성도의 탄식“과 대조를 이룹니다. 
우리는 로마서 7장에서 ”죄 아래 탄식하는 성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로마써 6장]에서 ”죄에 대하여 죽은 자“와 ”율법에 대해 죽은 자“를 보았지만, 7장에서 여전히 옛사람의 영향력으로 인하여 신음하는 성도의 탄식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의 개인적인 탄식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거룩함에 이르면 이를수록, 더 죄를 민감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옛 사람의 실체를 보게 됨으로 ”거룩한 탄식“을 하게 됩니다. 
[로마서 7장]에서의 ”거룩한 탄식“이 [로마서 8장]에서 ”성도의 안전함“으로 나가게 됩니다.
 
이런 대조에, [시편 23편]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이것은 [로마서 7장]에서 “거룩한 탄식”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고, [로마서 8장]에서는 성도의 “영원한 안전함”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산다.“는 고백과 연결이 될 수가 있습니다.
 
[시편]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시고, 안위하시고, 결국 영원히 여호와의 집에 산다.“는 것은 [확신의 고백]입니다.
 
오늘, [로마서 8장]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의 영원한 안전을 위해서, 특히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을 ”성령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간략하게 나열해 보면, 
①2절에, 성령님은 죄와 죽음의 법에서 자유케 하십니다. 
②4절에, 성령님은 율법의 육신의 행실을 죽이도록 도우십니다. 
③12절에, 성령님은 하나님의 입양된 자녀가 상속자임을 질문하십니다. 
④16절에, 성령님은 성도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기도를 도와주십니다. 
⑤26절에, 성령님은 모든 성도가 영화롭게 될 것을 보증하십니다. 
⑥30절에, 이렇게 모든 성도들 각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이 영원히 안전함을 체험할 수 있게,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11절을 정리하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죽음의 법]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는 진리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 [복음]의 핵심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하여, 옛 사람이 그분의 죽음인과 함께 죽고, 그분의 부활과 함께 연합하여 “부활의 생명으로 존재하는 이들에게 정죄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런 사람은 ”예수를 믿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율법적인 생활에 빠져서, ”그저 [종교 생활]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랑과 감사와 기쁨이 없는 삶“을 살아가므로, ”스스로 나는 예수 안에 있는 존재인가?“를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이 정죄 받지 않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닙니다. 
[구원]은 정죄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체험해야 합니다. 
죄가 실체이고, 그 죄의 영향력이 실체인 것처럼, 그 [성령의 능력]이 또한 실체인 것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란 무엇입니까? 
여기서 [성령님]이 생명의 창조자이고, 또 우리에게 생명의 능력을 공급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생명의 성령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성령의 법”은 우리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어떻게 성령 안에서의 자유가 어떻게 주어졌습니까? 3절에서 말씀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얽매고 있던 죄와 죽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인해 연약해져서 할 수 없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는 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죄를 속량해 주시려고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보내셔서, 육신 안에서 죄를 심판하셨습니다.”(롬 08:03)
 
그러니까 “성령 안에서의 자유”는 [십자가의 대속]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이 [출애굽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백성을 이끌어내실 때,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좌우에 바르도록 했습니다. 
 
▶왜, [양의 피]를 문에 바르도록 했을까요? 
그것은 잘 눈에 띄도록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여기서 [양의 피]라는 것은 재물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죽음의 형벌이 집행되었다.”는 싸인으로, “[양의 피]가 그 집에 이미 심판이 집행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집행되었기 때문에, 넘어가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죄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심판받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의 법]에서 자유케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집행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육신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 죄인을 대신한 대속 제물이 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이 시행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즉, 내가 받을 하나님의 심판이 그리스도 안에서 집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아직도 죄가 있는데, 어떻게 뻔뻔스럽게 죄가 없는 것처럼, 살 수 있습니까?“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아직 복음을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 분들은 ”겸손한 사람“이 아니라, ”무지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 안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해방시켰다.”는 것을 아직도 체험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아직도 그런 [확신]이 없으신 분들은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를 다시 읽으셔야 합니다.
 
8장 5- 6절의 말씀을 우리 같이 읽어볼까요.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만,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의 일을 생각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죽음이지만,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롬 08-05-06)
 
어떤 분들은 “내가 언제 하나님을 대적했습니까? 저는 그저 안 믿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만왕의 왕이고, 천지를 창조하고, 마땅히 영광 받으셔야 하는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8절에서도, “육신 안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롬 (08:08)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복종할 수도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들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바꾸는 정도가 아니고,
육신을 따라 사는 인생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인생”이 되도록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살도록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9절의 말씀에,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여러분은 육신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롬 08:09)
 
▶그리스도 안에서 얻어진 이 [자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자유입니다. 
그러니까 진정 자유를 경험하려면,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최고의 [자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령님께 온전히 사로잡혀 사는 것”이 최고의 자유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성령의 법에 따라, 살아야 가능합니다.
그것은 [성령의 법]이 [죽음의 법]보다 더 강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10절 11절의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몸은 죄로 인해 죽으나, 영은 의로 인해 살아 있습니다.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자기 영으로 인해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롬 08-10-11)
 
현재 일어나는 일이 10절의 말씀인데,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현재 몸은 죄로 인해 죽으나 영혼으로 인해 살아있다.”는 말씀은 “현재, 몸은 죽었으나 영은 살아있다.”는 말씀입니다.
 
[몸]이라는 단어는 [Body]는 “우리의 몸”을 의미하지만, 여기서 [육신]은 “몸 안에 살아있는 옛 사람의 영향력 잔재”를 의미하고, 모든 사람의 몸은 나이가 되면, 죽습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성장하지만, 사실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다 [사망의 본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우리 안의 새로운 생명으로 인하여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거듭남]이고, 현재 “우리가 성령 안에서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몸]은 죽으나, [영]은 의로 인해 살아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11절에서,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자기 영]으로 인해,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롬 08:11)
 
▶여기서 “성령 안에서의 [미래의 상태]를 뭐라고 말합니까?
예수께서 ”성령 안에서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몸의 부활]을 확신하는 말씀입니다. 
현재는 [몸]은 죽으나, [영]은 살아있는 상태이고, 미래에는 “우리의 죽을 몸도 살아날 것이다.”는 말씀이고, 이 말씀은 “우리 몸의 부활을 확신하는 말씀”입니다. 
 
▶성령 안에서의 [자유]는 어떻게 누립니까? 
몸의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들은 이 땅을 살 때, 성령을 따라 살며, 성령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성령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원인은 뭘까요? 
그것은 몸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할 때, 자유를 잃어버리는 거예요. 
우리의 [몸]은 죽으나, [영]은 살아있고, 또한 우리 몸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체와 같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몸을 입으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의 몸을 입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렇게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은 자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자유 할 수 있게 되는 성령을 따라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닐지라도,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죽은 몸도 다시 살릴 것이니, 우리는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이런 자유를 누리며 사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