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율법에서 벗어나,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롬7:1-14) 2022.09.04

다이나마이트2 2022. 9. 4. 20:41

 율법에서 벗어나,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롬7:1-14)   말씀: 이재훈 목사님
 
▶[바울]이 [로마서]에서 알려 주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 안에서 일어난 변화”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①로마서 5장에서는 “하나님의 의로 의롭다 함을 받은 우리”라고 표현했고,
②로마서 6장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라고 설명했고, 
③로마서 7장에서는 “율법에 대하여 죽은 우리”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표현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정리해 보면, 
①로마서 5장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로 의롭다 함을 받은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②로마서 6장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되었으므로,
“이제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 생명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③이제 로마서 7장에서 이 죄와 관련된 이 율법에 대하여도 우리가 죽은 자들이 되었다. 
그래서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어느 한 가지만을 떼어서 설명할 수 없고, 다각도에서 일어난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고,
이제는 죄를 짓지 않는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본질은 [종]입니다. 이 말은 ”인간은 의존적인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무엇인가를 섬기고, 의존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는 죄에 이끌려 죄에 종속되어 살아갔다면, 
이제는 [의]에 이끌려, [의]에 종속된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쉽게 비유하자면, “다른 나라에 들어가는 [비자]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나라에 합법적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비자]가 필요합니다.
 
이제 로마서 7장 4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이여,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해 율법에 대해 죽은 자가 됐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른 분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분에게 속해 하나님을 위해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입니다.”(롬7:4)
 
이 구절 속에 오늘 말씀의 [주제]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에 대해 죽은 자가 되었는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신 분에 속해, 하나님을 위해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분”은 누구입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해, “하나님을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법]이 필요한데, 과거에는 문자로 된 [율법의 법]이 있었지만, 
이제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라, “새로운 법에 따라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율법에서 벗어나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정했습니다. 
 
▶그게 뭡니까? 
[법]은 [법]인데, “[성령의 새로운 법]에 따라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7장 1절에서, “형제들이여, 내가 율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율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들은 [유대인]들이겠죠. 
 
그러나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이들에게 율법의 기능을 하는 것이 있다.”고 말하며, 
그것은 [양심]이고, 또한 어느 나라 민족에게도 있는 “어떤 도덕적 규범“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어느 민족이나, 밀림 지역에 있는 공동체에도 ”그들 나름으로 [규칙]“이 있습니다. 
개인에게는 [양심]이 있기에 죄책감을 느끼듯이, 이런 [규칙]이 바로 ”율법의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결혼 관계]를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결혼 관계]는 살아있는 동안에만 구속력이 있습니다. 살다가 배우자가 죽게 되면,
그 [결혼의 법]에서 벗어나게 되어, 재혼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럴 경우에, 더 이상 율법 아래에 있지 않고, ”율법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었다.“는 논리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실제로 행하지 않으면서도, ”지킨 것처럼 [합리화]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문자를 가지고, 인간의 마음을 [합리화]하려“고 합니다.
 
지금도 예루살렘에 가면, ”금요일 저녁에는 호텔에 방이 없다.”고 해요. 
그것은 안식일을 호텔에서 지키면 적용이 되고, 집에 있으면 안 되는지,
그래서 다들 주말은 호텔에 와서 산다는 것이니까, 이상한 사회가 되어 버렸어요.
 
과거는 율법과 결혼한 상태에서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생활을 했지만, 
이제는 남편 되신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려는 마음으로 생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통해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율법주의]나, 혹은 율법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에,
”율법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 같이 잘못된 생각입니다.
 
죄가 있기에 율법이 필요했고, 그 죄를 깨닫게 하고, 그 죄를 드러나게 하고, 
또한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게 하는 통로로서 율법이 “하나님의 도구의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8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죄가 개명으로 인해 기회를 타서 내 안에 각종 탐심을 일으켰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은 것입니다.”(롬7:8)
 
▶이것은 어떤 뜻일까요? 
인간의 내면에는 여러 가지 [탐심]이 있습니다.
[율법]에는 여러 가지로 ”하지 말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에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의 영혼 속에 이런 [삐딱함]이 들어 있어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주신 [금지 명령], ”먹지 말라.“고 하니까, 
늘 그걸 보면서 ”왜, 먹지 말아야 하지?“라는 [의문]을 사단이 장악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운전하다 보면 느끼는 일인데, [제한 속도]가 너무 낮을 때는 “내가 꼭 이 속도를 지켜야 하나?”를 생각하게 되어, 이럴 때, “[죄성]이 있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신학자의 [고백록]에도, ”자신이 청소년 시절에 과수원에서 배를 도둑질 했다.“는 고백을 합니다. 
 
그때 ”나는 도둑질을 하고 싶었고, 또한 했습니다.
도둑질을 하게 된 건, 배가 고파서도 아니고, 궁핍해서도 아니고, 또한 착한 일을 무시하고 싶어서도 아니라,
죄를 짓고자 하는 강한 충동에 어찌할 수 없어 범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내가 이미 더 좋은 것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훔치게 됩니까? 내가 즐기고 싶었던 것은 훔칠 물건이 아니라, ”도둑질 그 자체였다.“는 거죠.
 
이것이 [인간의 죄성]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이 훌륭한 이유가 ”자신의 영혼을 정직하게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율법은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정의해 주고, 드러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죄가 율법을 이용해서 오히려 증폭시켰다.“는 것입니다.
 
[율법]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율법의 한계로 인하여, ”죄는 그 율법을 돌려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도구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그것은 율법을 지향하던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능력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율법에 대해는 죽은 자이고,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 열매를 맺는 귀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