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영광에 이르는 소망 (롬8:18-25) 2022.10.09

다이나마이트2 2022. 10. 9. 21:08

 영광에 이르는 소망  롬8:18-25,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인]을 설명하는 또 다른 표현이 나옵니다.
그것은 앞으로 영광스럽게 변화될 사람들이라.는 표현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받은 구원을 미래적인 측면에서 설명하는 말입니다.
 
[구원]을 세 가지 [시제]로 설명을 한다면, 
(1)첫째로, [과거적인 측면의 구원]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는 “칭의의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로마서 1장 18절에서 4장 25절의 내용이 “의롭다 함을 받는 구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2)둘째로, [현재적인 측면에 구원]을 설명한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성화의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로마서 5장 1절부터 8장 17절까지의 내용이 바로 [성화의 구원]에 관한 내용입니다.
 
(3)셋째로,  세 번째로 [미래적 측면의 구원]은 영화롭게 되는 영광스럽게 되는 “영화의 구원”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에 해당되는, 18절부터 25절까지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 영광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영광스럽게 되는 그 영광은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나타나는 그 영광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허락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영화의 구원”입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영광을 가진 존재”였는데,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그 영광을 상실하여,
영광스럽지 못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본래 영광스러운 존재”였기에, 인간의 마음속에는 “이 영광에 대한 굶주림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추구하는 [명예]인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 자신이 느끼는 [자존심]이나, 또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우리가 느끼는 어떤 [비참함]의 근원은
우리가 영광스러운 존재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고,
그러므로 인간은 [비참함]을 느끼고, 때로는 자존심이 상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뿌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영광에 대한 굶주림“ 때문에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잃어버린 영광에 대한 굶주림“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그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만 다시 채워질 수 있습니다.
그 [영광]을 우리 스스로 만들려고 할 때, 우리는 잘못된 길을 가는 겁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고, 우리가 살아갈 때,
”우리에게 이 영광이 회복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의 시작]은 사망의 형벌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고, [구원의 끝]은 ”우리가 영광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그저 타락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는 차원만이 아니라, 탈락 이전보다 훨씬 더 영광스러운 상태에 이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는 [구원]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 영광에 이르는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모두가 죄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8장 24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 소망 가운데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소망하겠습니까?“(롬8:24)
 
지난주 본문 8장 17절에서,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 “그분과 더불어 고난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영광에 이르는 길”에는 언제나 [고난]이 따릅니다. 
이것이 “[구원의 여정]에서 받는 고난“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신앙의 위기]는 ”성도들이 받는 고난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희생이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바라보지 않고,
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영광“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18절에서는 [현재의 고난]과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비교합니다. 
 
▶이 세대의 중요한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고난]이라는 것이고, 그리고 다가올 세대의 특징은 [영광]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18절의 말씀에서, ”현재의 고난은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현재의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또한 ”머지않아 이 고난에서 자유케 되고 해방될 것이다.“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이 세대가 ”더 선해지고, 더 훌륭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도리어 정반대로, ”이 세대는 더 악해질 것“이고,
”사람들을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할 것이다.“고 성경의 평가는 어둡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께서 ”이 세대의 마지막 종말에 대한 전망“을 주셨는데, 더 어둡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은 고난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바보처럼 취급되는 시대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도리어 소수자가 되는 그런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소망은 바로 ”영광에 대한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소망은 바로 이 ”영광에 대한 소망”뿐입니다.
 
이런 [소망]이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는 위축되고 무너지고 도피하고 타협하고, 그리고 휩쓸려 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 “영광에 이르는 소망”이 우리의 마음속에 불타오르는 믿음으로
우리가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무엇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영광스런 위대한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기다립니까? 
피조 세계에는 [죄]에 연결되어 있으니까, [영광의 순간]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태는 인간의 죄와 연결된 죄의 결과이기 때문에 탄식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광스럽게 되는 그때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 피조세계가 어떻게 탄식하는지?“를 잘 알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가 성령 안에 있을 때“는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 있을 때, ”피조 세계가 신음하고, 고통스러워하는지?”를 조금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망]은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때”, 그 때에 온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령 안에 있을 때, 온전한 영광에 이르도록 날마다 소망하며 기다리며 탄식합니다.
 
이 때 탄식은 [절망의 탄식]이 아니라, [소망의 탄식]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탄식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스러운 몸의 구속이 이루어질 것을 소망합니다. 
우리도 영광에 이르는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하며, 
아까 부른 407장 찬송을 우리가 함께 부르고 마치겠습니다.
 
“구주와 함께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나 살았도다. 
영광의 그날에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