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믿음으로 얻는 의 (롬4:13-25)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우리는 [믿음]에 대한 오해가 있는데, 그것은 믿음이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에는 많은 경우에 증거가 있습니다.
때로 증거 없이 믿음을 요구할 때는 이미 쌓여진 믿음을 사용하도록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삶의 영역에서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수술 할 때는 [의사]를 믿어야 하고, 비행기를 탈 때에도 [조종사]를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아무 근거 없이 그냥 믿는 것이 아니고,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맹목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통해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필요한 믿음을 선물로 주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사용하신 방법이 [약속]입니다.
성경의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진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약속을 통해 믿음을 주는 은혜의 통로가 된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그의 생애 자체가 [믿음의 여정]이었습니다.
▶그가 왜 [믿음의 조상]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 약속을 그에게 재차 확인해 주시고, 그 약속이 그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과정을 통해,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하나님의 약속]은 자신에게 바랄 수 없는 약속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자신에게는 스스로는 꿈꿀 수 없는 그런 약속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약속이었습니다. 그것은
①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주고,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며,
②모든 족속에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주에 이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본질]이라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말씀은 지난주 말씀에 이은 [후편]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읽으십시오.
“아브라함이나 그의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약속은 이라고 말씀은
율법으로 인해 된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의]로 인해 된 것입니다.”(롬4:13)
이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사도 바울이 해석하여 표현한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그 약속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본문 13절에서 “아브라함이나 그의 후손에게”라고 할 때, 단수를 쓴 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로 그분이 세상에 유일한 상속자이며, 우리는 그분을 믿고, 그분 안에서, “상속자로 함께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3장 29절에도,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을 따른 상속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①우리는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며,
②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약속을 “우리도 함께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세상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이러한 상속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약속을 통해 얻는 믿음에 결코 더해질 수 없는 것 그것은 바로 율법의 행위입니다.
사람들은 오직 은혜로 주어진 이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는 것“에 대하여 불편해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먼저 주시고,
모세의 율법을 그 후에 400년 후에 주신 것은 이 약속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무엇이 나옵니까?
아브라함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보면, ”내가(= 하나님이) ◯◯하리라“는 것이고,
[율법]에는 ”너는(= 인간이) ◯◯해야 한다.“는 것이 [율법]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 3절에 보면, ”내가 너로 하여금 ◯◯을 하고, 내가 너로 ◯◯을 하리라.“는 주어가 여러 번 반복이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합니까? ”
[율법]은 “너는 ◯◯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니까, “내가 해야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별]은 캄캄한 어두운 밤에 빛이 나듯이, [율법]은 철저하게 행위만을 요구합니다.
[율법]은 어떤 종류의 타협도 받아들이지 않고, 철저하게 “오직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2) 두 번째로, 약속을 통해 얻는 믿음에 반드시 “더 해져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소망]입니다.
오늘 본문 18절에서 22절의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망이 없는 가운데서도 소망을 갖고 믿었습니다.
‘이는 내 후손이 이와 같을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나 돼, 이미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고, 도리어 믿음이 굳건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롬4:18-22)
▶여기서 “소망이 없는 가운데, 소망을 가졌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불가능한 약속]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이 “죽은 것과 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신의 절망적 상황과 정반대되는 약속을 어떻게 믿고 확신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사도바울의 시각에서는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소망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자신의 꿈을 믿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만드시는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런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정에는 많은 흔들림이 있었어요?
▶왜 흔들렸을까요? 그것은 약속만을 바라봤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시험이 아브라함에게“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따라 주신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딜레마를 만들어 냈어요.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약속을 믿는 것과 약속하신 분을 믿는 것을 구별했다.“는 거죠.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는 약속을 믿는 것을 뛰어넘어, 약속하신 분을 믿고, 그분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것은 약속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약속하신 분이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25절의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범죄로 인해 죽음에 넘겨지셨고, 우리의 의를 위해 살리심을 받았습니다.“(롬4:25)
사도 바울은 이제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따로 떼어놓고, 우리 위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이 우리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 넘겨지셨고,
그분이 다시 살리심을 받은 것은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그 약속을 믿는 믿음은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주신 약속을 믿었던 믿음과 같은 믿음“입니다.
[마틴 루터]도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설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가 죽은 것이고, 그의 부활은 의가 살아난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죄를 만족시켰고,
그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그의 의를 가져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죄가 해결되고,
그분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이 완전히 이루어졌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에 가장 중요한 [믿음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허황된 개념이 아닙니다.
맹목적인 비이성적인 비합리적인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삶입니다.
죽은 자와 같았던 아브라함과 사례에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소망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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