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홀로된 시간에 (창32:24-31) 2022.07.10

다이나마이트2 2022. 7. 10. 22:12

홀로된 시간에 (창32:24-31)  말씀: 김영배 목사님
야곱은 오늘 말씀에서 홀로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4절에, “야곱은 홀로 남아있었는데,”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말씀은 “야곱이 홀로 외로운 밤을 지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굉장히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표현입니다.
▶야곱이 지금 홀로 있을 수밖에 없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야곱은 [에서]의 두려움을 피해서, 도망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찌 보면, 이렇게 “홀로 있는 시간에” 야곱에게는 전에 말로만 들었던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2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야곱은 홀로 남아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동틀 때까지 야곱과 시름했습니다.”(창 32:24)
 
야곱은 지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얍복 강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곳, 저 편에는 고향이 있는데, 그 고향 땅에 먼저 두 아내와 열두 아들, 또 짐승과 많은 재산들을 건네 보냈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는 막상 고향을 가지 못하고, 그 곳의 동향을 살피면서 남아있는 야곱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너는 이제 고향 땅으로 돌아가라.”고 말을 했지만, 그는 어찌된 일인지
그 땅을 밟지 못하고, 두려움 가운데 혼자 남아 있습니다. 
 
▶야곱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야곱]은 자기 안에 욕구가 있으면, 챙겨야 되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형, [에서]의 장자 권과 또 축복 권을 빼앗았고,
그런 다음에 그는 스스로 자처한 고립 가운데로 빠져들었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었는데, 그것은 “고향 땅으로 돌아가라.”고 그렇게 명령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홀로된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이런 홀로된 시간은 각양각자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홀로 된 시간]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홀로 있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현대 문명의 속도 가운데서 “쳐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①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고, 무가치한 것처럼, 느껴질 까봐, 두렵기 때문이지요. 
②또 다른 이유는  홀로 있으면 무능력하고 도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홀로 있으면 TV를 켭니다. 
③또 한 가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죠.
 
그러나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홀로 된 시간을 통해서, 당신의 사람을 만들어가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 동안을 그가 원하는 꿈 가운데서 홀로된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체험한 다음에, 바로 사도가 된 것이 아니고,
삼 년 동안 사막에 거하면서, [홀로된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처럼 이들에게 [홀로된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습니까? 
말 그대로 잃어버림의 시간이거나,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고, 그들은 [힐링 타임]을 가졌습니다.
 
어찌 보면 그들에게는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킬링 타임]일 수도 있지만,
크리스천들에게 [홀로 된 시간]을 통해서, [힐링 타임]으로 활용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의 이야기를 25절과 26절을 좀 더 읽어보겠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하는 걸 알고는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습니다.
야곱이 그 사람과 씨름을 한 사이에, 야곱의 엉덩이뼈가 어긋나게 됐습니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동이 텄으니, 나를 보내주어라’ 야곱이 대답했습니다. 
‘저를 축복하지 않으면 못 갑니다.’ (창32-25-26)
 
야곱이 지금 그 사람과 씨름하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그 사람은 ”구약의 하나님“이고, [엘로 힘]이라고 표현합니다. 
또 이 단어는 구약에서 [천사]라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야곱]은 지금 홀로 있는 그 시간에, 그 사람과 겨루어 싸우는데,
바로 그 사람은 [하나님]이었고,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저를 축복하지 않으면 못 갑니다. 저를 축복해 주십시오. “라고 그렇게 때를 쓰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27절과 28절에서 ”그 사람이 물었습니다.  ‘내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했습니다.
[야곱]입니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제 내 이름은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내가 하나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기 때문입니다.“(창32-27-28)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사람의 이름]에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게 되고, 그 성품 까지를 알게 되고,
사람의 인격이 그 이름 안에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야곱]이란 이름 안에는 어떤 이미지가 있습니까? 
먼저 [야곱]에는 인간적인 냄새가 다분히 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지,
어떤 방법을 취하든지, 얻어야 만이 하는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이 이름을 바꾸어 주십니다.
그것은 [야곱]이 아니고, [이스라엘]이라고,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새로운 [이스라엘]의 이름은 어떤 이름입니까? 
그것은 철저하게 하나님 은혜 안에 있는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더 이상 어떤 욕망을 쫓기 위해서, 목마른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 공급해주는 것으로, 넉넉함을 취할 수 있는 그런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 안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이름에는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고, 지지하고, 응원하고, 인도한다.“는 의미가 그 안에 담겨있는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홀로된 시간]을 준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믿음의 족장으로, 하나님이 세워야 되는데, 야곱이란 이름을 가지고는 걸맞지 않아서,
새 이름을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본의 아니게, [홀로 있는 시간]을 지내는 분들을 많이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코로나 때문에, 어떤 직장의 길이 막히거나, 갑자기 사업이 망하게 되거나,
때로는 어떤 관계 가운데서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있을 때, 홀로 있는 그런 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그런 분들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길은 의미가 있는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하용조 목사님께서 젊은 시절에 선교단체에서 일하시며, 세계 선교의 꿈을 안고,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런 그가 폐병을 앓게 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그 때, 그가 인생의 큰 터닝 포인트를 경험하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젊은 대학생을 섬기던 간사“로서가 아니라, ”목회자의 길에 대한 도전“을 받았습니다.
 
하용조목사님은 [그 홀로된 시간]을 통해서, 사역의 길을 바꾸게 되어, 신학교에 가게 되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또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서 선교단체에 가서 훈련을 받았는데, 문제는 몸이 여전히 안 좋은 상황이라,
”선교 단체에서는 그를 파송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려서, 선교사로 떠나지 못하고 있을 때, 그때 기도하다가, 
 
”하나님, 한국에 교회가 이렇게 많이 있는데, 어떤 교회가 필요합니까?“라고 기도할 때,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마음을 주었던 것이 ”선교를 하는 교회를 세워라.“는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같은 [미셔널 처지]인 온누리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홀로된 병상에서 하나님이 하용조 목사님에게 주셨던 비전입니다.
 
▶야곱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클라이막스는 언제일까요?
그것은 창세기 49장에 나오는 12지파를 축복하는 그 모습이 나오는데, 창세기 49장 1절을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자기 아들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모여라 앞으로 너희에게 일어날 일들을 내가 말해주겠다.
’야곱의 아들들아, 함께 모여 들으라.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의 말을 들으라.“(창 49:01)
 
이 말씀은 창세기의 마지막 장면이고, 이 축복을 한 다음에 야곱은 주님 나라로 돌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기록된 것과 같이, ”야곱의 아들들아, 함께 모여 들으라.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의 말을 들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야곱]이 자기의 정체성을 들으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말을 들어라,”는 말씀으로,  그는 열두 지파를 향해서, 하나님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 열두 지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지파가 된 거죠. 
여러분, 만약에 야곱에게 [홀로 된 시간]이 없었다면, 12지파를 축복할 수 있었을까요?
 
이스라엘 민족의 그런 조상의 [족적]을 남길 수가 있었을까요?
그 모든 것은 “야곱의 홀로된 시간에” 주님과 더불어 기도하면서 탄생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 [홀로 된 시간]은 “두 가지가 있는데, 
①한 가지는/ 야곱과 같이 ”타의적으로 만들어지는 홀로되는 시간“이 있고,
②두 번째는/ 자기 스스로 자기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 홀로 된 시간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그 가운데 대표적인 분이 [예수님]입니다.
 
야곱 같은 경우에, 자기 가족들은 다 보내고, 그 시간은 처절했지만,
그러나 야곱에게는 그 시간에 주님을 만났으니, [홀로 있는 시간]은 외로움이 아니고,
”주님이 나와 함께한다.“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홀로 있을 때, 어떤 시간을 보내십니까? 
그런 외로움 속에서도 과거를 돌아다보고, 자책하는 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그 홀로 있는 시간]에 ”자신을 만들어 가는 창조의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