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모두가 죄인입니다 (롬3:9-20) 2022.07.03

다이나마이트2 2022. 7. 3. 22:48

모두가 죄인입니다  (롬3:9-20)   말씀: 이재훈 목사님
198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대화 왕“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1954년 작품인데,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하여, 영국의 남자 아이들이 비행기로 피난하는 도중에,
무인도에 추락하여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년들은 무인도에서의 한계 상황을 만나서, 처음에는 나름대로의 질서를 만들어가며 공동체를 결성하고,
또 구조하는 노력을 계속합니다.
 
그런데 리더십을 가진 아이들의 의견 대립이 일어나고,
또 두 패로 나누어서 서로 죽이려는 끔찍한 야만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한계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 [죄의 야만성]으로 ”어떻게 무너져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흔히 죄 짓고 살아가는 사람을 우리는 ”동물적인 인간이라“고 말하지만, 실상 동물은 본능을 따라
움직일 뿐, 본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한 죄성]은 본능적일 뿐만 아니라, 본능 이하로도 추락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 이후에, 이런 [죄]와 [구원]에 대한 문제를 말씀하는 분이 [어거스틴]입니다.
[어거스틴]은 죄와 관련하여 인간을 4가지 단계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 첫 번째 단계는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단계는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상태”입니다.
 
② 둘째로, 타락한 이후에 인간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이 단계는 “죄 가운데 빠져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③ 세 번째 단계는 “죄를 안 지을 수 있는 상태“를 말해요. 
   예수를 만나고, 구원 받은 후에 죄를 안 지을 수 있는 상태를 말해요.  
   성령의 능력 가운데 있으면 죄를 짓지 않는 상태에 해당됩니다.
 
④ 마지막으로 네 번째 단계는 “영화롭게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느 단계에 속해 있나요?
두 번째 단계는 아직도 십자가의 능력과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십자가의 능력]을 아는 사람이므로, 예수를 믿은 우리들은 2-3단계에 있고, 
진정한 크리스천은 3단계로 성령이 마음속에 있으니까, 죄를 짓지 않는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4단계에는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인간의 상태에 대하여, 세 가지 견해 중 하나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①첫째 견해는 인간은 조금 부족할 뿐이고, “날로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견해입니다. 
②두 번째 견해는 인간에게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라는 견해입니다. 
③세 번째 견해는 인간은 완전히 부패하여 죄 아래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성경의 견해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 번째 견해를 우리에게 설명해 주면서,
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의]가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 있는 인간의 타락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장 18절부터 ~ 오늘의 본문 마지막 3장 20절까지가 그 주제입니다.
 
요약하면, ”인간은 죄인이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 있으며, 인간 스스로 그것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때로는 이방인들의 뻔뻔스럽고 끔찍한 [죄악]들을 열거했고,
또 도덕주의자들의 위선적인 불의함을 열거했고, 또 유대인들의 자기 과신에 빠진 [선민의식]을 지적했습니다.
 
또 율법을 의지하는 그들의 모습을 순서대로 열거했던 것입니다. 
이제 결론에 이르러,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라는 의미입니다.  
 
3장 9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면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더 낫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했습니다.”(롬 3:9)
 
▶여기서 “죄 아래 있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이것은 단순히 “죄를 짓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죄의 세력에 의해, “노예 상태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죄의 권세에 종속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죄로부터 해방시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는 ’죄 아래에 있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10절에서 12절의 말씀에는 “기록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
모두 곁길로 행해, 다 쓸모없게 됐다.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다.”(롬 03-10-12)
 
여기에서 인간을 사로잡고 있는 죄의 세력을 설명합니다. 
여기에 “없다”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됩니다. 
 
▶“무엇이 없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마땅히 있어야 될 [의]가 없다.”는 것이며, 그 [의]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의]는 없으니, “하나도 없으며, 모두 곁길로 인해 다 쓸모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인간의 모든 부분이 다 죄로 가득하여,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가 그러하다.”는 선언입니다.
 
이 말은 사도 바울의 주장이 아닙니다.
이 말은 “사도 바울이 자신을 설명하기 위하여, 구약의 시편의 말씀을 인용해서, 특이하게 설명하는 말입니다.
 
▶[죄]는 어디서부터 출발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없다.“라는 어리석음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말씀을 자세히 보면, ”의인도 없고, 깨닫는 자도 없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깨닫지 못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영적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세상적인 물정과 과학적인 사실에 대한, 이해력은 잘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계산도 잘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깨달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결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 자신에 대한 이해도 없다“는 것입니다.
 
[헨리 주엣]이라는 목사님은 [죄]를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죄]는 시각을 손상시켜 맹목적으로 일하게 만든다. 청각을 마비시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한다.
죄는 미각을 왜곡시켜 단 것을 쓴 것으로 혼돈 시킨다. 촉각을 마비시켜 과거의 느낌만을 갖게 한다.
그러므로 [죄]는 영적인 모든 좋은 감각을 막아버리고 질식시킨다. 그리고 [죄]는 무감각을 만들어 낸다.
영혼을 짓밟음으로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실상을 낱낱이 드러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이 절망에 사로잡혀 포기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정반대로 인간에게 소망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 아래 있는 인간의 실상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인간은 자신 안에 있는 죄를 결코 경시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죄]가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복음]이 놀라운 소식이 될 수 없습니다. 
[복음]이 기쁜 소식이 아닌 사람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모른다면, [해결책]도 필요 없는 것이죠. 
[복음]이 죄에 대한 해결책인데, ”[죄]를 모른다.”고 하면, [복음]은 기쁜 소식일 수가 없습니다.
 
[질병]을 알아야, [치료]가 가능한 것입니다.
이 말은 “내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해야,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죄 아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은혜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죄] 아래 있다.”는 것은 “율법 아래에 있다.”는 말이고, “심판 아래 있다.”는 말과 연결되는 말입니다.
 
19절에서 20절의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율법이 말하는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이는 모든 입을 다물게 하고,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육체가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입니다.”(롬3:19-20)
 
▶인간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셨나요?
①“죄 아래에 있다.”는 것은 인간의 상태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율법 아래에 있게 하셨고, 
②그 율법 아래 있게 하심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어요.
 
▶왜,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습니까? 
그것은 죄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어떻게 깨닫게 됩니까? 
그것은 율법 아래 있을 때, 깨닫게 됩니다. 
 
▶그 모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 안에 있는 인간을 깨닫게 하시려고, 율법 아래에 있게 하셨어요.
 
▶심판 아래 있게 하신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은 단절이 아니고, 영혼으로 연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실상”을 깨닫지 못하면, 구원의 은혜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로만 캐톨릭]이 왜, 지금까지도 온전한 복음을 깨닫지 못할까요? 
[아퀴나스]라는 신학자가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인정하지 않는 신학 체계를 중세 교회에 퍼뜨렸기 때문이지요. 
 
한 사람의 신학자의 영향력이 그토록 오랫동안 수많은 교회와 수많은 성도들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전적으로 온전히 완전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길 원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구미에 당기는 그들의 심리에 맞는 신학을 펼쳐주니,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십자가]는 죄 아래에 있는 인간들이 “은혜 아래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이런 인간의 실상을 깊이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