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하나님의 심판 (롬2:1~11) 말씀: 이재훈 목사님
▶왜,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불의로 [진리]를 막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않았고, 감사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인간의 마음은 어두워지고, 상실한 마음을 달래려고,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왔다“는 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로마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기 전에, [하나님의 진노]를 먼저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읽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만한 죄인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사람이 나오리라고 예상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깨끗하고, ”도덕적으로 흠 없이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도덕]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절대적으로 선하신 하나님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그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도덕의 기준이죠.
그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삶은 아닐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나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 있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변명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람이여?“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오는데, 그것은 ”어떤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말합니다.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거나, ”자신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2장 1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여, 그대는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남을 판단하는 그것으로, 그대 스스로를 정죄하고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그대가,
똑같은 일들을 행하기 때문입니다.“(롬2:1)
여기에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여“는 누구를 가리키는 건지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그 이후에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 ”어떤 사람을 [가상의 인물]로 설정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도덕적으로 의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며,
타인의 죄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로, 자기 자신을 의롭게 여길수록 다른 사람의 문제에 대해서는 예리하게 말할 수가 있는 것이죠.
도덕적으로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의 공통적인 약점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성향으로 나타납니다.
자기 [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수치스러운 행위에 대해서는 분을 내기까지 하지만,
자신이 그런 행위를 하면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요즘에 유행하는 [내로남불]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가상의 인물]을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누군가“법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 말을 듣게 되면,
“내가 얼마나 정직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고 저런 말을 할까?”라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인간적인 의로움으로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어떤 착함도, 인간 자신에게서 나오는 [의]로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 남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의 자기 의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조차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오래 참고 인자하심으로 용납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 스스로 깨끗하고 의롭게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는 공정한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왜, “[의로운 심판]이라“고 할까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첫째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은 ”진리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로운 심판입니다.
오늘의 본문 2장 2절의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우리는 그런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진리대로 하나님의 심판이 내린다.“는 것을 압니다.(롬 02:02)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진리대로 심판합니다.“
이 단어 앞에 한 단어를 넣는다면, 그것은 ”절대적인 진리“라는 말을 넣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는 [진리]를 상대화하고, 진리를 공적 진리와 사적 진리로 나누고,
진리를 자신의 소견에 따라 바꾸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라는 단어 자체를 ”거부하는 시대“로 변했습니다.
[진리]는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하는데, ”절대 기준은 없다.“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살아있고, 변함없는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하신 성품이고, [하나님]은 그분이 [절대 기준]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절대 평가]라는 게 있지만, 그것이 꼭 합당하진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어떤 계산에서 9 곱하기 9는 81입니다.
그런데 어느 학생이 [80]이라고 하고, 어떤 학생은 [70]이라고 썼다고 한다면, 그건 틀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하심의 기준에 미달한 것은 모두 다 [죄]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것은 모두 다 [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마땅히 올려야 될 영광과 감사로 충만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모두 [죄]인 것입니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선하고 의로운 분이라도 고난이 닥쳐오면, 인간은 [죄성]이 나옵니다.
겉은 금으로 보이지만, 긁어서 속을 보면 그 안에 금이 아닌 다른 금속이 나오는 것과 같아요.
그것을 [욥]의 고난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욥]이 얼마나 의인이었습니까?
동방의 의인이요, 하나님이 ”지상에서 가장 의롭다.“고 여겼는데, 엄청난 고난이 오니까,
”나의 가는 길은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고 고백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 ”나의 신앙을 [도금]이 아닌, [순금]으로 바꾸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공정한 것은 “절대적인 진리대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2)둘째는 하나님의 심판이 “행한 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로운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6절에서 10절을 요약하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갚아주실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의 영혼에 환란과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함대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말과 행위의 모든 것을 “다 기록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녹음기]를 메고 다니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자신의 모든 삶이 녹음이 되고 있으니, 그 기록이 마지막 심판 때,
“하나님께서 그 녹음기와 레코드를 다시 트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때에 “보이지 않는 녹음기를 틀어 주신다.”면,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하나님은 우리 자신이 모르는 기준에 의해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2절의 말씀에, “생명의 책에 그들의 행위가 기록되어 있다.”고 했어요.
이와 같이, 우리의 모든 행위는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단지 육체적인 탄생에서 육체적인 죽음까지 지속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에서, 영혼이라는 은행에 저축되고 있으니,
우리의 삶은 우리가 죽을 때 끝나지 않고, “하늘에 무엇을 쌓아두는가/”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3)셋째로, 하나님의 심판이 공정하고 의로운 것은 각자가 소유한 계시를 기준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로운 심판입니다.
12절의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율법 없이 죄 짓는 사람은 모두 율법 없이 멸망하고,
율법 안에서 죄 짓는 사람은 모두 율법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롬2:12)
여기서 ”율법 없이”라는 것은 [이방인]을 말하는 것이고,
“율법 안에”라는 것은 [유대인]을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주어진 [유대인]과 율법을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이방인]을 같은 기준으로 심판한다면, 불공정하겠죠.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전혀 알지 못했던 기준에 의해서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아프리카 아마존의 밀림에서 율법을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너 왜 신명기의 말씀을 중요하지 않았냐?”고 하나님은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전혀 읽지 못했던 사람에게도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가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자연이건, 사람을 통해서이건, 양심을 통해서이건, 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계시를 하나님은 충분히 주십니다.
그래서 고대 [페르시아]에게는 별, 그 당시 사람들이 이 별을 보면서 우주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메시아의 출생을 “별의 징조를 통해 주셨다.”는 거예요.
그럼, 그 사람들에게만 주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각양각색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계시]”를 분명히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동일한 계시의 기준으로 심판하지 않기 때문에, 공정하신 겁니다.
유대인에게서 범죄한 사람은 [율법]이 기준이 되고, 율법이 없는 이방인에게는 [양심]이 기준이 되는 거죠.
▶ [하나님의 심판]의 원칙은 무엇이고,“왜, 의롭다“고 할까요?
①”공정하고, 진리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로운 심판입니다.
②”행한 대로” 이루어 주니까, 의롭다고 하는 것입니다.
③“각 자가 소유한 계시”를 기준으로, 이루어지니까 의롭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의로운 심판이고, [하나님의 진노]는 정당한 진노입니다.
하나님이 진노하고, 심판하는 것은 우리를 잘 살리기 위한 방법이므로,
그런 하나님은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그것을 깨닫게 하시는 과정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덧입혀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더욱 간절히 사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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