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사는 즐거움 (시16:1-11) 말씀: 이재훈 목사님
▶[참된 믿음의 생활]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이 참된 [믿음의 근본]입니다.
우리의 생활에 “믿음이 있는 삶”에는 [즐거움]이 따라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즐거움]은 이 세상에서 누리는 즐거움이 아니라,
어떠한 고난과 환경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 어려움을 이기는 “내적인 즐거움”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실 때에도, 그런 [즐거움]이 있었고,
그런 [즐거움]을 “우리가 매일매일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1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이것이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고,
이어서 17장 13절에서도, “그러나 이제 나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내가 세상에서 이것을 말하는 것은 내 기쁨이 그들 속에 충만하게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예수님 안에 있었던 그 영원한 기쁨을 “우리에게 나눠주시기 위함”이고, 그분이 부활하심으로,
“주님이 가지셨던 그 기쁨”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방탕한 아들의 비유]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방탕한 삶을 살다 돌아온 아들을 기뻐하며, 잔치를 베풀어 주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즐거움]을 함께 나누기를 원했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런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들어갈 때, 그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일]을 시키려고,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일을 맡기셨지만,
그 [일]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을 우리와 함께 나누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유명한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이 바라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두 [종]에게는 “잘 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한 것은
“무엇인가 남겼다.”는 성취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내가 주인의 즐거움에 동참한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달란트를 맡긴 [주인의 목적]은 “그것을 가지고 얼마를 남겼는가?”가 아니고,
“무엇을 하든지 간에, 주인은 ”주인의 즐거움에 함께 참여하는 종“이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땅에 파묻어버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가 없었기에, 그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질책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근본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참으로 인간답게 사랑하는 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즐거움에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조에, ”사람의 제일 되는 의무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되기 위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①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고, ②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영화롭게 하라.“고 명령하시며, 우리가 그분을 즐거워하도록 초청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해드리는 때는 언제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즐거워할 때”입니다.
[다윗의 믿음]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시편]을 통하여, 자신의 믿음을 고백했는데, “[시편]은 평탄한 세월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광야 속에서 도피 중에 쓰여진 시(詩)들입니다
[시편] 가운데,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9편 2절에,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가장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양하겠습니다.“라는 기록은
언제나 고난과 역경 가운데 있었을 때의 고백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하나님 앞에 사는 즐거운 이유“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다윗은 고난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즐거워하는지?“, 그 이유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1)첫째로/ ”하나님의 온전한 소유가 된 사람“은 항상 기쁘고, 행복합니다.
시편 16편 2절에, ”내 영혼이 여호와께 고백합니다.
‘주는 내 주시니, 주를 떠나서는 어디에도 내 행복이 없습니다.“(시 16:2)
한 마디로, ”하나님 없이는 내 행복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온전한 소유가 된 사람“은 항상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런 사람은 그 마음에는 갈등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갈등이 있는 사람“은 ”두 마음이 있으므로, “마음이 갈라졌다.”는 뜻입니다.
▶왜, 우리가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완전한 소유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완전한 소유가 되시기 바랍니다.
(2)두 번째로/ 하나님 앞에 사는 즐거움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삶이 안전한 삶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8절 9절의 말씀을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셔둡니다. 주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내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뛸 듯이 즐거워하며, 내 몸도 안전할 것입니다.”(시16:8-9)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는 것은 ”내 앞에는 항상 기쁨의 이유가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또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언제든지 마음과 귀는 너에게 열려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사람들이 언제 즐거워합니까?
그것은 자신이 가장 안전할 때, ”안정감을 느낄 때“가 즐거운 거예요.
반대로, ”영혼의 안정감이 없을 때”가 가장 불안한 것입니다.
안정감을 찾지 못하면, 불필요한 행동으로 자신의 안정감을 찾으려고 노력을 해요.
영혼의 안전함이 없는 사람은 끊임없이 방황하고, 죄악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3)셋째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삶”을 믿었기 때문이죠.
오늘 본문 10-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내 영혼을 지옥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주의 거룩한 분께서 썩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주께서 내게 생명의 길을 보여주시리니, 주 앞에서는 기쁨이 항상 넘칠 것이요,
주의 오른손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을 것입니다.”(시16:10-11)
[다윗]은 죽음의 위기를 여러 번 경험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죽음의 위험 앞에서, “생명의 길이 있음”을 성령 안에서 보았던 거예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영]이 다윗 안에서 미리 역사하였기 때문에,
“주 앞에는 기쁨이 항상 넘칠 것이고, 주의 오른손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라는 고백을 하게 되었어요.
이 말은 “평탄한 삶에서 나온 고백”이 아닙니다.
왕이 된 이후에 한 고백이 아니고, 고통 속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은 절대로 안전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길로 걸어가지 않으면, 결코 안전한 삶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활절을 지낸 후에, 내년에 다가올 또 다른 부활절만 기억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영원한 생명을 믿을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앞에 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어떻게 이기셨습니까?
히브리서 12장 2절에서, 그 [비결]이 나옵니다.
그것은 “그는 자기 앞에 놓여있는 기쁨을 위해,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 편에 앉게 되셨습니다.”(히 12:02)
▶여기서 [십자가] 너머의 즐거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는 영원한 기쁨이고, 그리고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을 나누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 즐거움에 참여하시는 즐거움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그 [즐거움]을 바라보시며, “고통을 참으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 [즐거움]을 누리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고, 날마다 새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즐거움]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을 느끼며,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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