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022 새벽기도회 36일차 “비판하지 말라” 이재훈 목사
1 너희가 심판받지 않으려거든 심판하지 말라.
2 너희가 심판하는 그 심판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며 너희가 저울질하는 그 저울질로 너희가 저울질당할 것이다.
3 어째서 너는 네 형제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네 눈에 아직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네 눈에 있는 티를 빼 주겠다’라고 할 수 있느냐?
5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런 후에야 네가 정확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너희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그러지 않으면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뒤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 모른다.
(마태복음 7:1~6, 우리말 성경)
죄가 우리 영혼을 얼마나 심각하게 망가트렸는가?
이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부분에서도 나타납니다.
3 어째서 너는 네 형제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네 눈에 아직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네 눈에 있는 티를 빼 주겠다’라고 할 수 있느냐?
(마태복음 7:3~4, 우리말 성경)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편견, 교만, 미워하는 마음이 죄의 영향력입니다.
이런 비판에 대하여 예수님이 말쑴 하셨습니다.
1 너희가 심판받지 않으려거든 심판하지 말라.
2 너희가 심판하는 그 심판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며 너희가 저울질하는 그 저울질로 너희가 저울질당할 것이다.
(마태복음 7:1~2, 우리말 성경)
이 심판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군림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동기에 대하여 최악으로 추정하여 판단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욥을 심판합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주셨기에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최악의 경우를 추정하고 하나님께 욥의 죄악을 주장합니다.
이런 사탄의 관점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주신자도 가져가는 자도 하나님이라 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입술로 하나님을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은 욥의 죄를 추정하여 그가 죄를 범 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또한 까닭없이 하나님은 고난을 주지 않는다며 하나님을 잘못 추정합니다.
그러나 욥은 사탄의 관점이 100%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욥은 다만 하나님이 그런 고난을 허락하신 것을 깨닫기 위해 몸부림 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고난에 대해 동기를 추정 하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관계없는 일을 가지고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판단하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다르게 선택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자신의 판단이 100%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의 심판자의 자리에 오르는 교만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선호에 따라 교회를 어렵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 됨만 가지면 될 문제들을 다툼과 분열로 발전시키는 것을 많이 봅니다.
로마 교회에서도 먹을 것에 대해 다툼이 있었습니다. 서로를 정죄하고 멸시 경멸하였습니다.
결론은 사도 바울이 먹을 수도 있고 막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르침을 줍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동료를 배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올바른 관계속에서 화평을 누리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사도 바울은 주었습니다.
같은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 교회의 다툼에 대하여 바울은 사람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문제의 공통점은 이럴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는 사항에 대하여 자신의 고집을 부릴 때 발생하였습니다.
위선적으로 잣대를 들이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려면 3가지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1. 자신이 동일한 기준으로 심판을 받을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2.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먼저 빼 내어야 합니다.
5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런 후에야 네가 정확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7:5, 우리말 성경)
회개하고 끊임없이 거룩을 체험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 눈의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입니다.
섬세하게 다루어야할 일입니다. 심판자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있는 티를 조심해서 빼는 자세로 다가가야 합니다.
3. 온유한 마음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판단하고 정죄할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여야 할까?
3 내가 여러분에게 판단을 받든지 사람의 법정에서 판단을 받든지 그것은 내게 아주 작은 일입니다.
사실 나도 나 자신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4:3, 우리말 성경)
자신의 선한 동기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악하게 판단받을 때 바울은 이를 아주 작은 일이라 말하며
자신도 자신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고백을 합니다.
모함을 받을 때 해명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가르쳐 줍니다.
모함 받을 때 그것을 작은 일로 여기고 지나가는 하목사님의 모습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문제가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인디안들은 그 사람의 죄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한 일 중 가장 좋았던 것을 각 사람들이 말하게 한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아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므로 다시 일어날 수 있으며 그 문제에서 벗어나 새롭게 되라는 격려의 풍속이었습니다.
세상에는 두종류의 세상이 있습니다.
회복시켜 주는 공동체와 판단하여 죽이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살리고 회복시켜 주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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